들쥐 여럿이 겨울을 대비해 곡식을 모읍니다. 분주한 들쥐들과는 다르게 가만히 고개를 떨구고 앉은 또 한 마리의 들쥐. 그에게 바쁜 친구들이 묻습니다.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 그는 매번 다른 대답을 하죠. "나도 일하고 있어. 난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색깔을 모으고 있어. 겨울엔 온통 잿빛이잖아." "난 지금 이야기를 모으고 있어. 기나긴 겨울엔 얘깃거리가 동이 나잖아."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에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자기만의 방식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들쥐, 프레드릭이 나옵니다. 가을 동안 친구 들쥐들이 모아둔 곡식은 겨울을 나는 데 반드시 필요했으나, 열심히 먹고 나니 이내 동이 나버리죠. 친구들은 프레드릭을 찾습니다. 웅크리던 프레드릭은 모두가 자길 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올라가요. 그간 모아둔 햇살, 색깔, 이야기를 꺼내어 기꺼이 친구들과 나누기 위해서 말이죠.

팩토리2는 곧 33명 작가의 140여 점 작품으로 채워집니다. ‘전시’는 팩토리2로선 예술을 전하는 중요한 언어이자 또 하나의 체계이기에, 관례로 여러분께 ‘작품’이라 소개하지만, 본 전시를 준비하며 우리는 이들을 ‘천사’라 칭합니다. 마음이나 머리가 헛헛한 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가득 품었거나, 그냥 익숙한 모습과 위치만으로도 위안이 되기 때문이죠. 전시장에서 이들은 조용히 웅크린 듯 보이나 사실은 이야기를 모으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 전시  내 책상 위의 천사

2023년 팩토리2의 기획 전시 <내 책상 위의 천사>는 누군가의 책상 위에 놓일 법한, 의미를 부여한 작은 주체를 ‘천사’에 비유합니다. 33인의 예술가가 공들여 매만진 140여 점이 넘는 ‘천사’들이 이 전시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이죠. 예술가의 손과 마음을 거친 천사들이 어깨를 마주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전시장을 가득 채웁니다. 구매를 거쳐 작가에서 다른 이의 ‘천사’가 되어 거처가 달라져도, 이들 천사는 새로운 환경 안에서 또 다른 고유한 관계를 쌓아갈 것입니다.

전시는 1부와 2부로 나뉩니다. 140여 점의 천사들이 모여 새롭게 만드는 관계와 지형은 아주 조금씩 천천히 매번 모습을 달리할 예정이고요. 이 중에서도 큰 전환점을 기점으로 천사와 천사 사이, 천사와 관객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에 많은 기대를 바랍니다. 또한 2부에서는 참여 작가와 관객이 천사를 매개로 직접 대화하고 전시에서 확장한 워크숍을 가지며 우리 속 천사 이야기를 다양하게 저마다의 책상 위에서 펼쳐보고자 합니다.

 (왼쪽 위부터) 문이삭, <디딤돌 #1> / 이은우, <물건4 (나의 개)> / 이담, <mmm rectangle>

허정은, <사물(死物) 콜라주 시리즈>

차승언, <(48)ppdt> / 송지현, <Pearl murex>

기획의 글

누군가의 공간이나 품에 들어온 물건은 일상에서 용도를 갖춘다. 하지만 특정한 쓰임이나 목적이 없음에도 가까이 두고 자주 바라보거나 소중히 여기는 것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어느 사이 그만의 '천사'가 되어 둘만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친밀한 관계로 발전한다. 생명이 있고 없음은 중요치 않다. 천사는 내 삶의 친구이자 수호자이며, 우정과 사랑을 구분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그는 나의 마음을 애지중지 담아주는 밀함이자, 가치와 생각을 단단한 땅 위의 삶으로 끌어 올려 주고 이어주는 연결고리이다.  
인디언은 쓰임의 유무나 유기와 무기를 분리하지 않고 이 모두를 하나의 언어 체계 안에 넣는다고 한다. 비록 쓰임이 없는 물체더라도 마음을 나누는 사이라면 자체로 의미가 충분하다. 책상 위의 ‘천사’는 누군가의 삶에 자리를 잡는 순간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변모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별나거나 특별한 점이 없어 보여도 천사는 그 자체로 작은 주체가 되어 함께하는 사람과 삶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  

(* 전시명 '내 책상 위의 천사'는 1990년 제인 캠피온 Jane Campion 감독의 동명의 영화에서 빌려온 것인데, 그보다 앞서 이 영화는 뉴질랜드 작가 자넷 프레임 Janet Frame의 자전적인 소설을 영화한 것이다.)

전시 개요

전시명  내 책상 위의 천사 An angel at my table
참여 작가  강서현 | 국동완 | 김다움 | 김수 | 김용관 | 김정아 | 김종범 | 도한결 | 로와정 | 문이삭 | 민덕기 | 박찬신 | 밤구름 | 백경원 | 손정민 | 송지현 | 안데스 | 여다함 | 오유우 | 우소아 | 윤가림 | 윤향로 | 이담 | 이윤정 | 이은우 | 장준호 | 전지 | 정성규 | 조혜진 | 차승언 | 최고은 | 포 包º | 허정은
장소  factory2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15)
기간  2023.4.28.(금)-2023.6.18.(일)
1부  2023.4.28(금)-5.21(일)
2부  2023.5.25(목)-6.18(일)
오프닝  2023.4.28.(금) 오후 5시
관람 시간  목-일요일, 11-19시 (월-수요일 휴관)

기획 팩토리 콜렉티브 (김다은, 여혜진, 이경희) 

진행  김다인, 김보경, 김채리

자문  홍보라, 안아라, 서새롬

그래픽 디자인  김보경, 김다인 

공간 디자인  김보람 (제작 도움. 노준현)

주최  팩토리2 (factory2)

✉️ 리뷰  Transformertower Longings 변압타워의 모험

란디와 카트린의 변압타워가 누빈 한국의 풍경

란디와 카트린의 <Transformertower Longings>가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시를 마쳤습니다. 덴마크의 젠트리피케이션이 한창인 도시를 고요하게 걷던 변압타워는 한국으로 건너와 이곳의 서촌, 을지로, 광명, 함양 등을 거닐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여정을 영상에 담기 위해 비디오그래퍼로 변압타워와 동행한 아티스트 김다움, 윤재민 님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변압타워가 그리워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영상의 스틸컷으로 만나보세요.

연계 어린이 워크숍

봄이 성큼 다가온 주말, 팩토리2는 재잘거리는 어린이들의 발소리와 목소리로 일요일 오후를 가득 채웠습니다. <변압타워의 모험> 전시 일환으로 마련했던 어린이 워크숍은 란디와 카트린의 작업을 함께 감상하며 평면 워크숍과 입체 워크숍으로 나누어 5세~9세 어린이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가졌어요. 란디와 카트린이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변압타워의 도면 위에 그림을 그리고 색칠도 해보고, 재활용 플라스틱과 종이 등 다양한 재료로 입체 변압타워를 만들어 보기도 했어요. 어린이 한 명 한 명이 자신만의 세계를 다양하게 표현하여 팩토리 스텝들을 놀라게도 했고요. 팩토리2와 함께나만의 변압타워를 만들며 귀엽고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 준 어린이 친구들, 고마워요!

(이어지는 전시 <내 책상 위의 천사>에서도 어른과 어린이 모두를 위한 다양한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으니, 다음에 전할 레터와 팩토리2의 SNS도 기대해 주세요.)

사진. 김다인

✉️ 팩토리 친구들

새로운 형식과 태도로 곧 선보이는 <내 책상 위의 천사> 전시를 앞두고 부산한 팩토리이지만 든든한 ‘친구들’이 있어 함께 일하는 과정도 풍요롭습니다. 지난 레터에 이어 올해 새롭게 함께 하는 친구도 인사를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채리입니다. 2023년 문화예술 연수단원으로 지난 3월부터 팩토리에 새롭게 합류했습니다.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여 드로잉을 기반으로 한 직조, 판화 및 디지털 사진 콜라주,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 나라를 떠돌며 잠시 머무는 동안 그곳에서 눈에 띄는 사회 현상을 관찰합니다. 부업으로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함께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파티를 기획합니다. 최근 팩토리2에서 덴마크 아티스트 듀오란디와 카트린의 <Transformertower longings> 어린이 프로그램을, 을지로 ACS에서 <아나바다 마켓>을 진행했습니다.

프레드릭의 이야기가 그래서 어떻게 끝이 나느냐고요? 친구 들쥐들은 고요하게 눈을 감고 그가 하는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추웠던 겨울 속에서도 이들은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죠. 프레드릭이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어요. 놓치지 않고 눈으로 본 것들을 하나하나 알려주며 동시에 질문하는 것이었죠. 저희가 전시장으로 초대한 책상 위의 천사들도 이곳을 찾은 관객 여러분께, 그리고 훗날 새롭게 여생을 함께 할 이들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잠시 웅크리고 있는 천사들을 만나러 팩토리2로 자주 걸음 해주세요.

기획 팩토리2 
진행 김다인, 김보경, 김채리
디자인 김보경
에디터 뫄리아
디렉터 홍보라 
팩토리2 드림
팩토리2
factory2.seoul@gmail.com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15 02-733-4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