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_버틀러 #타임슬립 #장일호 기자

시사IN북 뉴스레터 #20

제게는 여름에만 읽는 장르가 있습니다. 추리소설과 SF가 그렇습니다. 마니아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얘기지만 다른 계절에는 이쪽 계통에 별로 손이 가질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이들 분야 책을 가벼운 심심풀이로 여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시리즈를 읽으며 보낸 일주일은 제 생애 최고의 서늘했던 여름 휴가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야.” 영화 <올드보이>에 나왔던 유명한 대사죠. 저는 한여름 장르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 말을 실감하곤 합니다. 책에 나오는 온갖 묘사며 상황 설정이 영상과는 또 다른 힘으로 사람을 휘몰아치니까요.
 
문득 궁금해지네요.  님의 여름 책 취향💎은 무엇일지. 아무쪼록 올 여름 새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킬 나만의 책 리스트를 준비하는 데 [주말에 뭐 읽지]가 작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주말에 뭐 읽지]가 어느덧 20호를 맞았습니다. 팬데믹 시기를 맞아 급하게 준비된 뉴스레터라 아쉽고 부족한 점도 많았을텐데 꾸준히 읽어주신 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 책 소개해주어 고마웠어요” “독서 편식을 막는 데 도움이 됐어요같은 메일을 받을 때면 편집자도 뿌듯한 보람을 느꼈답니다. 뉴스레터 편집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언제든 말 걸어주세요. 하단의 좋았어요👍  별로였어요👎 중 하나를 클릭한 뒤 의견을 적어주시면 됩니다.

                                                                    Image by Pixabay


이런 기막힌 타임슬립이라니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이수현 옮김
비채 펴냄    
  
모든 걸 다 알 수 없고 전부 다 알 필요도 없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것도 당연하다. 그래도 이런 책을 만날 때면 괜히 투정을 부리게 된다. 이렇게 좋은 작품과 대단한 작가를 지금까지 몰랐다니. ‘헛살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 아닐까. 이내 생각을 고쳐본다. ‘지금이라도 알게 됐으니 정말 다행이야’라고.

타임슬립은 SF 장르의 클리셰(흔히 쓰이는 소재나 이야기의 흐름)다. 새로울 것 없다는 소리다. 타임슬립물의 주인공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미끄러진다. 주인공은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유리한 지점을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흑인’ ‘여성’이고, 그가 향한 곳이 아직 노예제가 존재하는 미국 남부라면?
 
소설 〈킨〉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주인공 다나는 이삿짐 정리를 하던 중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진다. 잠시 후 메릴랜드 주의 숲속에서 눈을 뜬다. 호수에 빠진 소년을 발견하고 구조하면서도 다나는 자신이 1976년에서 1815년으로 거슬러왔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단순 현기증이나 착시인 줄 알았던 일은 반복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 여행도 점점 길어진다. 결국 다나는 살기 위해 ‘노예의 삶’을 익힌다.
저자는 다나가 경험한 폭력이 얼마나 끔찍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서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다나가 얼마나 분투했는지를 보여준다. 마음의 풍경이 변하는 모습은 약자가 저항 대신 순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드러낸다. 그 덕분에 소설은 ‘야만’을 보여주면서도 증오 위에 서 있지 않는다. 시대와 사람에 대한 애증을 이만큼 강렬하고 우아하게 펼쳐놓는 작품을 나는 이전에 만나본 적이 없다.

단편집 〈블러드 차일드〉도 놓치지 말자. 특히 책 말미에 실린 두 편의 자전적 에세이(‘긍정적인 집착’ ‘푸로르 스크리벤디’)는 저자와 글쓰기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다.


장일호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사계절 펴냄  

“이 책은 죽은 자와 산 자를 모두 포함한 사람과의 만남이다.” 

장르를 규정하기 어려운 책이 있다. 대표적인 자이니치(재일 한국인) 지식인인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가 쓴 이 책도 여행기와 에세이, 논픽션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일본 교도통신에 연재하던 여행기를 묶은 이 책에서 저자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의 흔적을 하나하나 훑어간다.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부터 최북단 홋카이도까지 종횡무진 현장을 들여다본다.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은 조국 근대화의 시작점이다. 원고를 쓴 2018년 당시, 일본은 유신 150주년을 떠들썩하게 기념했다. 그러나 유신 이래 후쿠시마(쓰나미), 미나마타(질병), 오키나와(미군기지) 등지에서 떠밀려나간 약자들의 역사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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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리에서 생각합니다  
노야 시게키 지음, 지비원 옮김, 메멘토 펴냄  

“말을 제대로 연결하는 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기도 해.”  

상대를 이해시키고 싶다는 건 절실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제나 이해보다 오해가 쉽다. 글과 말을 다루는 일이 특히 그렇다. 제목만 보고 심리학 서적인가 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말하기와 글쓰기 공부’라는 부제 앞에 자리를 고쳐 앉았다. ‘내’가 아닌 타인의 자리와 처지에서 말과 글을 골라야 한다는 이야기는 쉬우면서도 또 어렵다. 모니터와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익명의 상대라면 더더욱. 
저자는 어른들도 학생들처럼 평소 쓰는 말과 글을 다시 점검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책에 실린 예문 27개와 문제 68개를 차근차근 짚다 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과 글에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 체감할 수 있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말과 글이 변하면 삶도 변한다.  
 
 

나는, 나와 산다 
김민아 지음, 끌레마 펴냄  

“혼자인 지금, 안전한가요?”  

1인 가구의 진짜 걱정은 밥을 혼자 먹는 게 아니다. 사회제도가 3~4인 가구에 부합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제도권의 보호와 승인 바깥에 머무르기 쉽다는 게 문제다. 혼자 사는 저자가 각기 다른 조건을 가진 혼자 사는 사람 스무 명을 만나 ‘안녕’을 물었다.
국가가 외로움을 다루는 방식을 비롯해 혼자인 사람들이 하는 걱정을 살폈다. 혼자라서 불안한 게 아니라 사는 방식이 잘못됐다고 겁주는 사람들 때문에 불안한 이들. 1인 가구가 처하기 쉬운 ‘불안한 거처’와 혈연·혼인 관계가 아닌 ‘보호자’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다룬다. 저자의 말대로 한 존재가 고립에 처하는 건 관련 정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누더기 정책’ 때문일 수도 있다.  
 
슬픈 경계선  
아포 지음, 김새봄 옮김, 추수밭 펴냄  
 
“국경은 일종의 압박이고, 나아가 공포다. 드물기는 하지만 심오하게는 해방의 의미도 있다.”  

‘경계’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나 〈고지전〉에서는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한과 북한 군인들 간에 싹트는 증오와 연민의 감정을 그린다. 비단 38선만이 아니다. 어떤 경계든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슬픈 역사들이 공존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문화인류학자, 기자, NGO 활동가를 거쳐온 작가의 섬세한 통찰력으로 경계에 선 정체성들을 담아낸다. 중국과 홍콩 사이, 한국과 중국 사이, 오키나와와 류큐 사이, 아시아의 경계 지역을 넘나들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역사적 현장에서 저자는 매몰되지도 관조하지도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자신의 여행 태도를 ‘개입하는 방관자’라고 소개하는 이유다.  
 
동네책방에서 색다르게 영화 보기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전국의 동네책방 14곳에서 동시에 독립영화 상영회가 열린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독립영화 창작가와 동네 주민을 연결시킨다는 뜻에서 5~8월 #동네서점독립영화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행사에는 조은이책(서울_성산동), 좋은날의책방(경기_성남), 나비날다 책방(인천_동구), 진주문고(경남_진주) 등 시사IN 친구책방들도 참여하고 있다는데요.

잠 못 드는 여름날 밤, 가까운 동네책방에서 색다른 영화관람 겸 북캉스를 즐겨보면 어떨까요? 책방 다수가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에 최소인원만 받는다니 신청하실 분은 꼭 미리 예약하시고요.


 photo by 조은이책, 서울_성산동  


<시사IN>은 전국의 동네책방🏡 34곳과 함께 책 읽는 독앤독🐶(독립언론×독립서점) 콜라보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 동네가 살아나고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시사IN> 친구책방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독서모임과 북클럽이 궁금하다면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친구책방에 가면 [주말에 뭐 읽지]에 소개된 책📚과 <시사IN>도 만날 수 있습니다(동네책방에서 시사IN 구독을 신청하실 때는 해당 책방에 지원금이 갈 수 있게끔 책방 이름을 꼭 함께 적어주세요).

어느 날, 환자의 모니터에서 안 좋은 상황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직감에 간호사들이 하나둘 모였고, 
서로 손을 보태다가 환자가 안정을 찾은 뒤 제자리로 돌아갔다.

환자를 담당하던 동료가 말했다. 
“둘러보니 모든 동료가 와 있었어. 손발이 척척 맞아, 
너무 신기하고 감동적이야.”

                                       -나효정 간호사, 대구동산병원 의료지원 일지 중에서

시사IN 저널리즘북 <가늘게 길게 애틋하게-감염병 시대를 살아내는 법> 출간을 앞두고 텀블벅 펀딩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펀딩을 통해 책 선구매를 예약하신 분께는 나효정 간호사의 그림을 묶은 엽서북을 선물로 드립니다. 애틋한 마음으로 '컬러링'하거나 선물하셔도 좋습니다.

*텀블벅 펀딩은 이번 주말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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