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_지제크 #팬데믹 #이상원 기자

시사IN북 뉴스레터 #21

출퇴근할 때 이용하는 지하철 역에 ‘스마트 도서관’이라는 게 생겼습니다. 책을 빌릴 수 있는 자판기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역 공공도서관 대출증으로 이 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기에 바로 도전해 봤죠.
 
이용해 보고 놀랐습니다. 너무 편리해서입니다. 자판기에서 과자나 음료 사 먹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책을 검색하는 것도 너무 쉽더군요. 최근 나온 신간을 손쉽게 빌릴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아직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일반 도서관 같았으면 몇 달은 줄 서 기다렸어야 할 신간을 바로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더 놀란 것은 기기의 가격을 듣고 나서입니다. 대당 9천4백만 원. 순간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가더군요. ‘이 돈이면 15000원짜리 단행본을 6천 권 이상은 살 수 있을텐데….’ 
 
요즘 '희망도서 바로대출제'를 운영하는 지자체가 여럿 있더군요. 시민들이 동네책방에서 원하는 책을 빌려볼 수 있게 하고, 시민들이 이렇게 빌려본 책을 지역 내 공공도서관에서 사 주는 제도라지요. 물론 스마트한 기기에 비한다면 비효율적인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동네책방을 찾아가고, 책방 주인과 대면하는 일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죠. 그렇지만 시민들의 지적 허기와 동네책방들의 경제적 궁핍을 동시에 해소해 보려 고심했을 이들 지자체의 노력에는 기꺼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팬데믹을 겪으며 실감했듯, 스마트함이 우리를 궁극적으로 구원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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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ge by Pixabay


팬데믹의 답은 공산주의다  
-코로나19는 세계를 어떻게 뒤흔들었는가

  슬라보예 지제크 지음/강우성 옮김
북하우스 펴냄    
  
화장지 확보가 합리적인 전염병 대처법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슬라보예 지제크는 더 나아가, 이러한 공황(panic)은 사람들이 “실제로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적었다. 이 책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진지하고 합당한 대응이 무엇인지 논한다. 저자의 답은 공산주의다.

코로나19가 의료·경제·심리적 위기라는 세 겹의 상황을 불러왔다는 게 지제크의 진단이다. 여기 대응하는 국가 시스템의 두 가지 전형으로 그는 중국식 상명하달 통제와 ‘집단면역’ 접근법을 꼽는다. 전자는 더 많은 희생자를 불러올 수 있고, 후자는 야만적 도박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삼은 게 공산주의다.

지제크는 일종의 휴머니즘에 기댄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실행되는 공산주의”를 주장했다. 팬데믹에서 생존하는 것은 단순히 격리되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전기·수도·식량·의약품을 지속적으로 제공받아야 한다. 공공서비스 확충과 재분배 강화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저자의 논지다. “이윤 가능성이라는 논리를 과감히 건너뛰고 (…) 시장의 논리와 상관없이 직접 배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자원 동원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지제크는 특히 착취당하는 “새로운 노동계급”을 주목한다. 혹자는 ‘우리는 모두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모토를 내세우나, 전염병이 창궐하자 “계급 차별이 폭발했다”. 간호사와 집사, 더 넓게는 외국인 육체노동자까지 포괄해 그는 ‘돌봄노동자’라고 불렀다. 그들의 노동이 (더러는 존재 자체가) 선진국 사람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 이용되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이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기본욕구를 채우면서 각자 사회에 기여하는 “온건한 세상”이, 노철학자가 말하는 이상이다.

이상원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현대문학 펴냄  

“불길한 북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그녀는 피로 물든 손으로 귀를 꽉 막았다.”  

영상 매체로 쉽게 공포물을 즐길 수 있는 시대지만 활자로 적힌 이야기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극도의 공포는 저마다의 상상에서 나오는데, 귀신이든 괴물이든 모습이 보이는 순간 김이 빠지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는 이 단편소설집에서 활자의 강점을 십분 살린다. 이질적인 냄새, 촉감, 형상을 상세히 묘사해 기괴한 분위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공포의 대상은 대부분 더럽고 악취 나는 빈민층이다. 사회적 약자를 천대하고 배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두려워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에피소드마다 굵은 글씨로 적힌 클라이맥스를 읽을 때쯤에는 머리카락이 쭈뼛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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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마음들의 시대  
최강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질환의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어울릴 수 있는 사회가 ‘아픈 마음들’을 회복시킨다.”  

정신질환을 갖지 않은 현대인이 있을까. 저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스트레스 쌓이는 혼잡한 현실을 살다 보면 마음에 조금씩 병이 든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위로를 건네거나 조언을 하는 대신 실제 정신질환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따돌림 자살과 사회불안 장애, 날씬해지고 싶은 욕망, 쇼핑 중독, 우울장애 그리고 산후우울증 등 10여 가지 정신질환의 인과관계를 살피다 보면 ‘내가 어떤 질환에 가까운지’ 생각할 수 있다. 공황장애나 조울증 같은 정신질환은 면담과 약물치료만으로 회복하기 어렵다. 저자는 환자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병이 재발한다면서 ‘응원과 지지로 이뤄진 사회적 관계에서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리콘 제국  
루시 그린 지음, 이영진 옮김, 
예문아카이브 펴냄 

“실리콘밸리가 정부에도 눈독을 들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세계 기술 중심 네트워크인 실리콘밸리가 거버넌스와 의료, 교육을 장악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특히 정부의 역할을 대체하려 든다면? 기술 중심의 디스토피아 전망은 ‘너무 앞서간 생각’이라는 평가를 받기 일쑤지만, 이 책은 합당한 의심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무엇보다 거대 테크 기업의 ‘욕망’에 초점을 맞추고, 기성 시스템이 이런 욕망을 경계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테크 기업은 표면적으로 세련된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몇 년 사이 미국 금융을 떠받친 것도 이들 거대 테크 기업의 힘이었다. 기존 사업 영역을 넘어서는 테크 기업의 ‘무분별한 야심’을 지적하는 이 책을 통해 이들의 ‘영향력’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경험이 될 듯하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눈빛아카이브 사진, 눈빛출판사 펴냄  
 
“전쟁 사진은 전쟁을 찍지만 역설적이게도 전쟁에 반대하는 사진이다.”  

언뜻 보면 모래톱이 깔린 강줄기를 찍은 풍경사진 같다. ‘이게 왜 전쟁 사진이지?’ 유심히 들여다봐야 왼쪽 구석의 강변 풀숲 더미에 걸린 시체 한 구가 눈에 들어온다. 사진에는 다음과 같은 캡션이 달려 있다. “지옥은 바로 어제 여기였다: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더 이상 심문할 수도 없다. 그는 단지 지옥에 취해 있을 뿐이다.” 
1950년 버트 하디가 낙동강에서 촬영한 사진 한 장과 그가 적어놓은 문장 몇 줄을 통해 우리는 희미하게, 그러나 직관적으로 전쟁을 이해할 수 있다. 글씨로 가득 찬 페이지보다 사진 한 장만 실려 있는 페이지를 넘기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여유 있을 때 펼쳐 보기를 추천한다.  
 
제주도에서 책방 투어를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동네책방 14곳에서 동시에 독립영화 상영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지난주 뉴스레터에서 전해 드렸는데요. 

제주 서귀포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책방데이 행사가 열린다는군요. 7월 마지막 주 토요일(25일)의 경우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서귀포 9개 책방에서 릴레이로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진다는데요.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는 상황이라 이런 행사를 소개하기도 조심스럽습니만 김연수, 고미숙, 최현숙 작가를 온라인/오프라인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라니 일단 알려드리긴 해야 할 것 같네요😭 이들 책방 또한 공간별 사전예약제를 준수하고 예약 인원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행사를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제주는 요즘 괜찮은 책방이 많기로도 유명하죠. 행사 대신 조용히 책방 투어를 즐기고 싶은 분에게는 제주의 사회적기업이 제작한 #제주책방올레지도를 추천👍해 드립니다. 

 


<시사IN>이 전국의 동네책방🏡 34곳과 함께 책 읽는 독앤독🐶(독립언론×독립서점) 콜라보 프로젝트 페이지가 새로 오픈됐어요.

 
올 여름, 집 또는 휴가지에서 가까운 친구책방을 찾을 때 참고하세요. 친구책방에 가면 [주말에 뭐 읽지]에 소개된 책📚과 <시사IN>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동네책방에서 시사IN 구독을 신청하실 때는 해당 책방에 지원금이 갈 수 있게끔 책방 이름을 꼭 함께 적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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