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오, 오막아, 지금까지 중에 가장 역대급으로 전문가스럽다. 너무나 알찬 기타 공부를 하였구나.
 
016_숨만 쉬어도 예쁜 것들.
한아임 to 오막
2023년 4월
 
호오, 오막아,

지금까지 중에 가장 역대급으로 전문가스럽다. 덕분에 나도 너무나 알찬 기타 공부를 하였구나. 👏👏👏

네가 보내준 영상들을 나름대로 탐구해 보았다. 특히나 목재에 따른 기타 소리 비교 영상 말이다. 뭐랄까, 바로바로 비교해서 들으면 차이를 알겠는데, 따로따로 연주한다면 차이를 말로 설명하지 못할 것 같다. 완전한 막귀는 아니지만 막귀에 좀 가까운 한아임인 것 같다…
나에게는 네가 우리 동네에 놀러 오면 쓸 수 있는 기타가 있다! 무려 세 대가 있는데, 통기타 2, 클래식 기타 1이다. 그러나 아마 전부 네가 말하는 합판 기타인 것 같다. 입문용이거든. 후후…

통기타를 치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 그러나 그 줄은 정말이지 너무나 두껍고 손꾸락이 아팠다.

나는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했었단 말이지. 그래서 줄을 꾹꾹 누르면 굳은살이 어느 정도 박일 건 예상하고 있었어. 그러나 바이올린 줄과 통기타 줄을 비교하자면 느낌상으로는 거의 열 배 같았다. 그래서 연습을 좀 하다가 말다가… 또 하다가 말다가… 이렇게 반복하다가, 집에 클래식 기타가 있길래 그걸로 갈아탔다.

그래, 클래식 기타는 손꾸락이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 사실 거의 아프지 않다고 봐도 무방했다. 굳은살은 금세 박였지만 뭐, 그렇게 아프게 박이진 않았고, 괜춘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습을 계속하진 않았다. 그렇다. 애초에 통기타도 굳은살이 아파서 관둔 건 아니었던 것이다. 걍 연습을 할 마음이 없었던 게지… 사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야… 그냥 그저… 뭐랄까. 하하하하. 아무튼, 그렇지만 기타가 있긴 하다는 것. 그러나 또 그것이 음악인 오막의 음악을 만들어낼 만한 그런 기타는 아마 아닐 것 같다는 점.

여하튼, 오막의 간지 취향은 커트 코베인이구나. 머리를 길러보지 그러나, 자네? 커트 스타일처럼 커트… 쿨럭쿨럭…

(빠른 화제 전환.) 보아하니 오막은 장비를 좋아하는 스타일이로구나. 기타도 그렇고, 컴퓨터도 그렇고, 차도 그렇고. 나는 조사를 귀찮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너에게서 간접적으로 듣는 데에 의의를 두겠다.
오막에게는 기타 유튜브 시청이 곧 공부가 아니겠는가? 유튜브는 정말이지 축복이다. 유튜브에 중독되다시피 한 나는 꽤 잦은 빈도로 ‘유튜브를 보면 뭐 하나, 유튜브 보느라 내 삶은 안 사는데’ 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 싫다. 내가 적극적으로 활용하진 않더라도, 알게 모르게 내 의식과 무의식에 깔려 있는 그 많은 정보들을 몰랐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물론, 뭐, 크게 더 ‘못’ 살았을 것 같진 않다만… 그래도… 그래도 재밌지 않은가!

게다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보도 있긴 있단 말이야. 대표적으로는 매우 간단한 레시피라든지, 이런 영상이다:
한아임은 숱 부자다. 그런데 심지어 미용실 가는 걸 심히 귀찮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숱 좀 치려고 찾게 된 영상인데, 진짜 좋은 것…! 놀라운 것이, 이거대로 숱을 치면, 머리카락이 한가득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감고, 말리고서 상태인가 어떤가 보면, 똑같이 머리가 많은 것처럼 보여. 어떻게 이렇지? 아무리 속머리(?)를 숱 쳤다고는 해도, 어떻게 감쪽같이 무게감만 덜어지고 보기에는 거의 비슷해 보이는지. 뭐, 약간 가벼워 보이긴 하지만, 한가득 나온 머리카락의 양에 비하면 아직도 머리통에 엄청 많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야.

하여간 이러한 상황인데, 네가 기타 소리에 관한 얘기를 하자 이 영상이 생각났다. 미용실에 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미용실이 제법 소란스럽고 분주한 장소이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미용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리를 꼽으라면 그것은 가위의 사각사각하는 소리다.

그리고 약간 놀랍게도, 유튜브에서 ‘미용실’을 검색하면 내 경우에는 연관검색어에 ‘미용실 ASMR’이 가장 상위에 뜬다.
이 영상은 내가 주로 듣는 ASMR 영상들과는 완전히 스타일이 다르다. 이 영상에는 사람이 나오고, 얼굴도 나오고, 그러잖아. 그런데 내가 듣는 것은 대개는 이런 종류다 (ASMR 하면 슬리데린 커먼룸이지!):
아무래도 해리 포터 커먼룸과는 달리 미용하시는 분들이 실제로 존재하시니까 미용실 ASMR은 실제 사람들이 나오게 되는 건가 보다.

나는 이런 물소리도 좋아한다:
물을 보는 것보다, 물소리를 듣는 것이 더 안정이 된다는 생각도 한다. 왜냐하면 물이 모여 있는 모습은 대개 파란데 (간혹 투명하거나, 초록에 더 가까운 경우도 있지만), 그걸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울적해지기 때문이다.

예전에 언젠가는, 한강뷰 아파트에 살면 진짜 좋을까? 궁금증이 생겨서 한강뷰 아파트에서 보이는 풍경을 컴퓨터 배경 화면으로 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도 가지 않아 그 풍부한 파란색에 울적해져서 노란 해바라기 같은 걸로 배경 화면을 바꾼 적이 있다. 정말이지, 진짜 한강뷰 아파트에서 살았던들, 울적함이 안 느껴졌을 것 같진 않아. 이건 정말이다. 진짜야. 절대 내가 한강뷰 아파트를 사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니까.

시각적으로는 울창한 숲이 나에게는 가장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때로는 사막이나 미국의 거대 돌 (유타 이런 데에 있는) 풍경도 좋다. 그러나 물은… 물은 어렸을 때는 좋았으나, 왠지 점점 더 산이 좋아진다.

‘헤어질 결심’에 나오던데. 공자 왈,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자는 산을 좋아한다.” 나는 별로 지혜롭지도 않고 별로 인자하지도 않은데, 이 상황은 어쩌면 좋겠니?

참... '헤어질 결심' 음악도 킹 좋은 거 이미 알고 있겠지, 당신은?
다시 ASMR로 돌아가자면... 그것은 OST처럼 공식 버전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특정 드라마나 영화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주는 포털 같기도 하다:
정작 ‘호텔 델루나’ 드라마는 처음 부분만 봐놓고서, ASMR화된 영상은 즐겨 듣는다. 유튜브는 검색이 너무 좋으니까, 오디오도 유튜브에서 찾게 된다. 스포티파이며 애플은 대체 언제 검색이 좋아질 것인가, 대체 언제! 검색이 좋아지지 않는 한 유튜브한테 다 뺏기겠네!

요즘에는 비디오 팟캐스팅이 유행하면서 (사람 하나 혹은 여럿이 가만히 앉아서 말하는 형태면 걍 비디오 팟캐스팅이라고 묶더라), 팟캐스팅조차 유튜브가 제일 잘나간다고 한다. 스포티파이에도 비디오 팟캐스팅 기능이 있으나, 그건 크리에이터들이 유튜브에 올릴 걸 스포티파이에도 한번 올려주는 수준이고, 대체 스포티파이는 언제 검색을 제대로 만들 것인가?

뭔가를 계속 하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이를테면, 스포티파이가 한참 전에 산 anchor.fm이라는 팟캐스트 호스팅 플랫폼이 있는데, 거기가 이번에 Spotify for Podcasters랑 합쳐졌다. 이제 앵커에프엠은 그냥 없는 건가 보다. 스포티파이로 다 통합해 버린 건가 보다.

(원래는 앵커에프엠에 팟캐스트를 올리면, 그 RSS 피드를 애플 팟캐스트, 구글 팟캐스트, 스포티파이, 아마존 등등에 뿌렸다. 또한, 원래는 Spotify for Podcasters에는 스포티파이에서 팟캐스트를 듣는 사람들의 정보만 볼 수 있었다. 청취 국가, 나이대 등등의 정보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전부 Spotify for Podcasters, 앱 이름만 보자면 정확히는 그냥 Podcasters로 통합된 것이다. anchor.fm 사이트에 들어가려고 url을 치면 Spotify for Podcasters로 리디렉트 된다.)

이런 식으로 스포티파이가 뭘 계속 하고 있긴 한데, 검색이 안 되면 어쩔 것인가? 휴. 너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내 할 일이나 해야지…
소리 중에서 특히 내가 좋아하는 소리가 또 있다. 그것은 고양이 골골송이다.
고양이 골골송이 인간 건강에 좋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심지어 이런 영상의 댓글들을 보면, 아프거나 초조해하는 고양이에게 골골송 영상을 틀어주었더니 고양이도 기분과 건강이 좋아졌다는 증언들이 있다! 대체 골골송의 파워는 어디까지인가? 놀랍도다.

여기, 좀 더 오가닉한(?) 골골송, 심지어 고양님이 직접 출연하시는 ASMR이 있다.
숨만 쉬어도 예쁜 고양이. 소리만큼이나 시각 요소도 마음에 쏙 들고, 완벽하고, 흠잡을 데 없고, 세상은 아름답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고양이. 영상으로나마 고양이를 바라보며 골골송을 들으면, 세상이 따스하게 느껴지며,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고,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 오막아. 우리도 숨만 쉬어도 예쁠 수 있다. 요즘에 내가 ‘초연함’이라는 개념에 관심이 많은데, 그렇다고 초연한 건 아니고, 관심만 많다. 그런데 하여간에 초연함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뭘 해야만 좋은, 조건부의 나에 대한 존중’이 아닌, ‘그저 존재하는 나에 대한 존중’이라는 점이 자꾸만 등장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든, 철학적 관점에서 보든, 의학적 관점에서 보든, 다들 비슷한 소리를 하고 있단 점에서 이 요소가 ‘자꾸만 등장’한다는 뜻이다.

숨만 쉬어도 예쁜 고양이처럼, 우리도 숨만 쉬어도 우리 자신을 예뻐해 보자. 기타 연습을 좀 안 해도 예뻐해 보자. 아무것도 하기 싫어도 좀 예뻐해 보자.

그런데 약간 어려운 점이, 예뻐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여겨서 예뻐할 수 없는 스스로조차 예뻐해야 진정한 예쁨이라고 한다. 하… 역시 도 닦는 건 쉽진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또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려워짐으로, 어렵다고 여기면 안 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다고 여기는 나 자신도 예뻐해야 진정한 예뻐함의 길로 들어선다는, 참말로 심오한, 그런 얘기들이 세상에 있더라.
실용적인 얘기로 마무리를 하자면, 기타 매장 여행 너무 좋은데?! 생각지도 못한 테마야. 이거 이혜원 기획자에게 자세히 좀 던져 보겠어. (이쯤 되면 고막사람은 ‘오막과 한아임의 바다 건넌 펜팔 feat. 이혜원’으로 소개글을 업데이트해야 할 것 같음. 히히.)

너무 좋은 컨셉이야. 당신은 대단해. 멋져. 숨만 쉬어도 세상에 이로워.

고막사람 여러분? 그대들도 전부 대단해. 멋져. 숨만 쉬어도 세상에 이로워. 그냥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자고.
그럼 나도 숨 쉬러 이만!
- 아임.-
이번 편지를 보낸 한아임은...
아무 데에도 아무 때에도 있었던 적 없는 세상, 그리고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세상 사이의 해석자다. 원래도 괴란하고 괴이하고 괴상하며 해석함 직하다고 여기는 것도 여러모로 괴하다. 이런 성향은 번역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오리지널 스토리텔링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결과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뭐 하고 사나, 뭘 쓰고 뭘 번역했나 궁금하면 여기로.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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