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9월15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펼쳐진 인천상륙작전의 대성공으로 단번에 한반도의 허리 부분을 장악한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북진합니다. 

   한 달 뒤인 10월15일부터 20일에 걸쳐 '평양탈환작전'이 전개됩니다. 누가 먼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심장, 평양에 깃발을 꽂을 것인가. 

   한국군 제1사단과 미국 제7기병사단이 북한군 17사단과 32사단 잔류병과 접전을 벌입니다. 미 7기병사단 5기병연대 소속 F중대가 10월18일 11시를 즈음해 동평양에 최초 입성합니다. 한국군 1사단은 10월 19일 새벽 1사단의 주공 12연대가 최초로 동평양에 입성한 데 이어 15연대가 본평양으로 밀고 들어갑니다. '평양 입성' 순서를 놓고 여러 얘기가 있지만, 전쟁사는 최초의 '평양 입성부대'를 한국 1사단으로 기록합니다. 

   평양탈환작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던 10월20일 평양에 '인디언 헤드' 마크를 부착한 미군들이 들어옵니다. 평양 시가지를 선점한 1사단장 백선엽의 증언입니다. 

   "20일 아침, 미2사단 '인디언 헤드' 마크를 부착한 한 미군 중령이 약 100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나를 찾아왔다. 자기들은 GHQ(미 극동군사령부) 문서수집반인데 평양 시가지에 들어가 활동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허락하자 그들은 즉각 평양 시내 공공건물들을 수색해 수많은 문서를 노획, 도쿄 GHQ로 실어 갔다."(《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에서) 

   '인디언 헤드(Indian Head)' 특수임무 부대는 그렇게 전장의 한복판에서 북한 정권이 제대로 파기하지 못하고 남겨놓은 문서들을 훑어갔습니다. '인디언 헤드 작전'은 미국 대외정책 수립을 책임진 국무부 정책기획실의 지시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국무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소련 위성국의 성립과정과 지배 양태를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특수부대를 조직해 북한 내부로 투입하도록 극동군 사령부에 지시합니다. 

   워싱턴 훈령에 따라 극동군 사령부는 북한문서 수집 임무를 미8군 사령부에 지시했고, 인디언 헤드 부대가 편성됩니다. 인디언 헤드는 미2보병사단 부대 마크입니다. 백선엽이 만난 미군 중령이 바로 인디언 헤드 부대장인 미2사단 정보참모 포스터 중령입니다. 

   인디언 헤드 부대는 평양 시내에 산재해있던 북한 정권의 주요 시설물을 샅샅이 뒤져 '가치 있는 문서들'을 대거 일본 도쿄의 극동군 사령부로 후송했고, 이 문서들은 다시 워싱턴으로 공수됐습니다. 

   2012년 6월, 기자는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주 칼리지 파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를 방문했습니다. 신분증을 제출하고 소정의 절차를 거쳐 자료실에 입장해서 평소 꼭 확인하고 싶었던 1950년 6월의 한반도와 관련된 '사료(史料)'들을 열람했습니다. 사서에게 자료요청서를 건네면 통상 그 다음날 문서들을 찾아 박스째로 전해주곤 했습니다. 

   일주일가량을 출근하다시피 했지만 제가 살펴본 자료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습니다. 세계최강, 미국의 힘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기록의 세계'에서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보관소가 미국 각지에 17개나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2차 대전의 패전국 일본과 독일의 문서가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습니다. 북한노획문서(RG 242, Records Seized by US Military Forces in Korea)의 전체 추정 분량이 192만여 쪽에 달하며 인디언 헤드 부대에 의해 수집된 게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NARA의 깊숙한 곳에서 잠자고 있던 이 사료들이 한국전쟁을 놓고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해묵은 논쟁을 잠재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북한노획문서 중에는 ▲1950년 6월 24일 인민군 사단장들이 공격 개시일과 시간을 하달받은 문서 ▲6월 25일 05시 춘천 정면 인민군 제2사단이 전차를 선두로 해서 38선을 넘는 과정을 담은 문서 등이 있었습니다. 

   또 북한군의 구체적인 작전계획은 물론이고 북한군의 교육훈련용 책자 및 걸개(교안), 공문, 각종 선전포스터, 북한 땅에서 통용됐던 지폐, 인민군 신분증, 인민군 병사의 편지 등이 망라됩니다. 

   한국어로 된 것만 있는게 아닙니다. 러시아어로 된 문서는 북한의 남침계획에 소련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문서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6·25 전쟁을 앞두고 만주에서 대거 입국한 연안계 인민군들이 편하게 읽었을 중국어로 된 무기 사용법과 관련된 것들도 있습니다. 

   북한노획문서의 존재는 1980년대 미국에서 활동하던 사학자 방선주 박사의 노력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러시아로부터 넘겨받은 '극비문서'와 함께 '북한노획문서'는 한국전쟁이 북한에 의한 남침임을 보여주는 '역사의 증언'입니다. 

   6·25 전쟁 70년을 맞아 잠시 눈을 감고 메릴랜드 NARA의 고즈넉함을 떠올려봅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기억 저편의 문서'들이 연구자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북한도 적극적인 금연운동 나서  조선중앙TV  05.31

전 사회적으로 금연 활동이 활발히 벌여지고 있는 속에 지금 여기 금연연구보급소에서는 금연을 장려하기 위한 연구와 상담, 그리고 치료와 방자 등 다양한 사업들이 활발히 벌여지고 있습니다. 그럼 금연을 위한 첫걸음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우리 함께 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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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에서 금연활동 적극적으로 진행  메아리  06.02
공화국에서 금연활동이 적극적으로 벌어지고있다.

평양시 서성구역에 자리잡고있는 금연연구보급소에서는 금연과 관련한 상담 및 봉사, 담배가 인체에 미치는 해독적영향과 후과에 대한 연구, 금연제품 및 건강식품개발 등을 진행하고있다.

최근년간 이곳에서는 우리 나라의 명산들에서 나오는 천연약재들로 만든 황경피너삼음료, 주염차 등 10여가지의 금연제품 및 건강식품들을 내놓아 사람들의 인기를 모으고있다.

금연연구보급소와 각 도에 있는 산하분소들에서는 사람들에게 금연의 필요성에 대하여 해설해주는것과 함께 새로 개발한 약들을 보급해주고있다.

이와 함께 담배통제법에 대한 설명도 해주고있으며 흡연이 인체에 미치는 해로운 작용과 담배를 끊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들에 대하여 알려주고있다.

금연연구보급소 소장 리희경은 보급소에 찾아오는 금연희망자들이 계속 늘어나고있다고 하면서 그들이 많이 요구하는것은 우리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천연약재로 만든 금연영양알이다, 이 건강식품이 개발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금연효과와 함께 흡연으로 인한 장애증상들을 호전시키는것으로 하여 사람들의 커다란 호평을 받고있다고 말하였다.

금연연구보급소에서는 세계금연의 날(5. 31)을 맞으며 《담배산업의 영향과 담배 및 니코틴사용으로부터 청년들을 보호》라는 올해 주제에 맞게 담배의 해독성과 금연의 효과성 그리고 금연활동이 우리의 건강을 담보하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는것을 인식시키기 위한 다양한 선전사업을 진행하고있다.

통일부는 2일 북한이 최근 유튜브를 활용해 새로운 방식의 선전 선동 전략을 펼치는 것과 관련, 유튜브 동영상은 남북교류협력법의 규정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북한이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선전 선동하고 있는데 대한 정부의 대응 방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유튜브에 나오는 북한 관련 영상은 남북교류협력법에서 규정하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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