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서른 번째 흄세레터
님은 언제 연말이 되었다는 걸 실감하시나요? 이번 레터는 편집자 랑의 가장 작고 내적인 시상식에 대한 얘기로 시작하려 합니다. 저는 이번 주 내내 '올해 읽은 책 Top5', '올해 본 영화 Top5', '올해 본 영상 Top5' 등등 혼자 여는 시상식이 많아 박수 그칠 날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답니다. 머릿속에 깔아둔 레드카펫에 작품을 하나씩 세워둘 때면 자연스럽게 그 작품을 감상하던 날의 날씨나 기분이 떠오르고, 그 기분으로 2022년을 돌아보는 중이에요.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는데요. 연말이기도 하고, 또 제가 출판사에서 일을 하니 그런 것 같아요. 한 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책으로 《폭풍의 언덕》을 가장 많이 추천하고 있어요. 삼대에 걸쳐 벌어지는 복수와 사랑. 모든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황야. '《폭풍의 언덕》만큼 이 계절에 잘 맞는 책이 또 있을까.' 속으로 온갖 호들갑을 떨면서요. 황유원 번역가도 해설에 비슷한 말을 적어두셨네요! (호들갑+1)


"인생에서든 문학에서든 진짜 정적을 맛보려면 반드시 소란을 통과해야 하고,

진짜 평화에 이르려면 어쩔 수 없이 모진 싸움을 치러야만 한다는 것을

《폭풍의 언덕》은 알려준다."


오늘은 편집자 세&랑이 뽑은 《폭풍의 언덕미리보기추천 콘텐츠를 소개해드릴게요.

《폭풍의 언덕》 미리보기 1


캐시가 말했어요. “아빠와 엘런이 떠나고 혼자 남겨지면 나는 어떡하지? 엘런이 한 말이 잊히질 않아. 언제나 귓가에 울리는걸. 아빠와 엘런이 죽고 나면 내 인생은 얼마나 변할 것이며, 이 세상은 또 얼마나 적적해지는 걸까.”

“아가씨가 우리보다 먼저 죽을지 누가 알겠어요.” 제가 대답했어요. “나쁜 일을 예견하는 건 옳지 않아요. 우리 셋 중 누구 하나라도 죽으려면 아직 오랜 세월이 남았길 바라야죠. 나리는 젊고, 아직 마흔다섯도 되지 않은 저는 이렇게 튼튼하잖아요. 제 어머니는 여든까지 사셨는데 마지막까지 활기가 넘치셨답니다. 그리고 린턴 씨가 예순까지만 산다고 하더라도, 그러려면 아가씨가 지금까지 산 세월보다 더 긴 세월이 흘러야 해요. 20년도 더 후에 있을 불행을 지금 미리 슬퍼하는 건 어리석은 일 아니겠어요?” (중략)

캐시가 대답했어요. “나는 그 누구도 아빠보다 더 소중히 여기지 않아. 그리고 나는 내가 제정신인 한 절대로, 아아, 절대로 아빠를 짜증 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을 거야. 엘런, 나는 나 자신보다 아빠를 더 사랑해. 그렇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면, 나는 매일 밤 아빠보다 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든. 왜냐하면 아빠가 비참한 것보다 차라리 내가 비참한 게 나으니까. 그게 나 자신보다 아빠를 더 사랑한다는 증거야.”(391~393쪽)

세's pick

캐시가 사랑의 증거라며 내놓은 마음이 제게는 제법 그럴듯하게 여겨졌어요.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를테면 먼저 떠나버린 마음이요. 더 오랫동안 사랑하는 쪽이 되는 것과 먼저 마음이 식어버리는 쪽, 둘 중 하나가 돼야 한다면 저도 전자를 택하겠어요. "차라리 내가 비참한 게 나으니까"요. 철없고 제멋대로인 캐시지만, 이번에는 캐시에게 한 수 배웠습니다.

《폭풍의 언덕》 미리보기 2


‘이제는 참는 것도 지쳤어요.’ 내가 대답했어. ‘그 보복이 나에게 되돌아오지만 않는다면, 나도 기꺼이 보복하고 싶어요. 하지만 배반과 폭력은 양날의 창이에요. 그것에 의지하는 사람은 자신의 적보다 더 큰 상처를 입게 되는 법이죠.’
‘배반에는 배반, 폭력에는 폭력으로 갚아주는 게 정의로운 거요!’ 힌들리가 외쳤어. ‘히스클리프 부인, 당신은 뭘 할 필요도 없이 그냥 잠자코 있어주기만 하면 돼요. 어서 말해봐요, 그럴 수 있소? 저 악마가 끝장나는 꼴을 보면 당신도 나만큼이나 큰 기쁨을 느낄 게 분명하오. 당신이 저자에게 선수를 치지 않으면 저자가 당신을 죽이고 말걸. 그러고서 저자는 나까지 파멸시키고 말 거요. 망할 놈의 악당! 벌써 이 집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문을 두들겨대는군! 입 다물고 있겠다고 약속하시오.(301쪽)

랑's pick

"배반에는 배반, 폭력에는 폭력으로 갚아주는 게 정의"롭다는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이야기가 얼마나 큰 비극으로 달려가고 있는지 직감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갚으면서' 살아가야 할까요. 선의든 악의든요. 잘 맺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편집자의 추천 콘텐츠👍

《세상의 모든 최대화》
《폭풍의 언덕》의 번역을 황유원 시인이 했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시인뿐 아니라 번역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시는데요. 편집자 랑이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소개하고 싶은 시가 너무 많지만, 제가 다이어리나 노트를 사면 꼭 앞에 적어두는 문장을 소개할게요. 이 시집의 표제작인 〈세상의 모든 최대화〉에 나온답니다.

"현실도피는 없어
현실의 최대화만이 있을 뿐"
4개월마다 만나는
하나의 테마, 다섯 편의 클래식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3. 질투와 복수
011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 황유원 옮김

012 동 카즈무후

마샤두 지 아시스 | 임소라 옮김

013 미친 장난감

로베르토 아를트 | 엄지영 옮김

014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보리스 비앙 | 이재형 옮김

015 밸런트레이 귀공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이미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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