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깊이 #가우디 #구엘공원

[주말에 뭐 읽지]  2021-05-29 #58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photo by pixabay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야겠다
정태종 지음/한겨레출판 펴냄


문득 해외여행을 못 간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코로나19 이전이라고 여행을 자주 다녔던 것도 아니지만 오갈 수 없는 세상이 되자 더 애가 타는 느낌이다. 유명 미술관이나 관광지를 다룬 책에는 한 번 더 눈이 간다. ‘세계 건축 기행’이라는 부제가 달린 〈도시의 깊이〉도 마찬가지였다. ‘건축’보다는 ‘세계’와 ‘기행’에 눈이 가서 읽었다.

책은 헤테로토피아, 현상학, 구조주의, 바이오미미크리, 스케일 5가지 테마로 세계의 건축물을 탐방한다. 지역이나 국가가 아니라 ‘추모 공간’ ‘빛의 활용’ ‘유리와 철’ 등 주제를 기준으로 삼아 빠른 호흡으로 각 건축물을 논한다. 두 쪽에 하나꼴로 커다란 그림이 있어 이해를 돕는다. 눈에 익은 명승지도 있지만 처음 보는 건축물도 적지 않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다룬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다. 안토니 가우디의 기이한 건축물들로 유명한 곳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카사 밀라 등 가우디의 다른 유명한 건축물이 아니라 구엘 공원을 대표 작품으로 꼽은 게 의외였다. 이유는 ‘유기성’이다. 자연과 인공, 외부와 내부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공간이라는 것. 몇 년 전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에 갔을 때 화려하지도 않고 별다른 조형물도 없어 실망했던 기억이 있는데, 건축의 미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에 대한 부분도 눈에 띈다. 신서울시청 주변과 주위의 건물을 함께 보면 전 세계 건축양식을 모아놓은 작은 테마파크 같다고 썼다. 엄밀히 따지면 어떤 건물도 주변 맥락을 고려하지는 않은 듯하지만, 이 또한 서울이 겪어온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 같다고도 평한다. ‘물리적 공간의 확장은 사회적 관계망의 시각화’라는 대목을 곱씹어보면, 종묘와 경복궁, 덕수궁 돌담길을 찬찬히 관찰하면서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원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아르덴 대공세 1944
앤터니 비버 지음, 이광준 옮김, 
글항아리 펴냄

“더 이상의 후퇴는 없다.”

첫인상은 ‘화려하다’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이자 종반부 하이라이트인 ‘아르덴 대공세’를, 〈스페인 내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등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전쟁사의 거장 앤터니 비버가 썼다.
아르덴 대공세는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 궁지에 몰린 히틀러가 대역전극을 노리며 모든 자원을 쏟아부은 승부수였다. 한 달여에 걸쳐 100만여 명이 얽힌 이 전투에서 연합군이 승리함으로써 독일의 패전은 더욱 앞당겨지게 된다. 비버는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문체로 각국의 정치적 이해관계, 다양한 개인들의 경험과 관점을 입체적으로 엮어냈다. 정치와 전쟁이 교차하는 복잡한 국면에 대한 일관적이고 세련된 묘사는 군사 역사학자로서 저자의 전문성 덕분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피에로 말베치·조반니 피렐리 엮음, 
임희연 옮김, 혜다 펴냄

“갈기갈기 찢겨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나마 진심 어린 사랑을 남깁니다.”

책 표지를 넘기면 바로 첫 장에 이렇게 쓰여 있다. ‘이 편지들을 쓴 이들은 주조공, 회사원, 판매 대리인, 정비공, 재단사, 지방관청 직원, 대학생, 가구공, 창고지기, 견습생, 육군 소장, 토지측량 기사, 운전사, 건축가, 의사 등의 직업을 가진 201명의 레지스탕스이다.’ 
짧게는 한두 줄, 길게는 여러 장에 걸쳐 쓰인 201명의 편지가 500쪽 넘게 이어진다.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이들은 진솔하고도 간결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쓴 편지에는 레지스탕스 동료들 사이에서 불렸던 활동명이 적혀 있다.
 

변화는 어떻게 촉발되는가
캐스 R. 선스타인 지음, 박세연 옮김, 
열린책들 펴냄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의 메아리만 듣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사회규범에 맞춰 살아간다. 그게 곧 규범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형벌과 책임감, 수치심 따위를 감내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규범에 따르는 사람도 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의 성적 비위는 조용히 해결하는 게 낫다’는 생각은 꽤 오랜 시간 특정 집단 내에서 ‘규범’ 행세를 했다. 미투(me too)라는 무수한 개인의 저항 덕에 이 규범은 허물어졌다. 책은 이처럼 중대한 사회변화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다룬다. 선도자가 문제를 제기하고, 후발 구성원이 여기 붙으면서 ‘폭포’처럼 변화는 밀려온다. 이후 갈등 과정에서 생긴 각 집단은 내부 논의를 거치며 극단화되고, 좀처럼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한다. 사회갈등을 한발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책.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
김혜영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아직 이 말을 못했는데 네가 지금 내 곁에 없다.”

2016년 10월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일들과 비정상적인 노동환경을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남긴 유서 일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이한빛 PD의 부모는 기자회견을 통해 아들의 죽음을 공론화한 뒤 ‘한빛미디어노동인권 센터(한빛센터)’를 세웠다.
‘한빛 엄마’ 김혜영씨가 한빛센터 홈페이지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 펴냈다. 표지에 눈물인 듯 빗방울인 듯 낮은 곳을 향해 떨어지는, 빛처럼 밝은 노란 물방울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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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영토

한때 젊고 멋졌던 산양. 그러나 지금은 지팡이 없이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들게 된 늙은 산양. 
어느 날 죽을 날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한 그가 길을 떠난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 죽을 수는 없"다면서. 그는 과연 '죽기 딱 좋은 곳'에 도달했을까? 길 떠나는 그의 커다란 짐 보따리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죽기 딱 좋은 곳을 찾고 있나요' 전체 글 보기 >>

한번은 귀농한 친구를 만나러 남도에 간 일이 있습니다. 그 날 따라 차에 문제가 생겨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는데, 친구 집은 버스만 세 번을 갈아타야 하는 외진 곳에 있었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 소도시에 내렸더니 시외버스를 갈아타기까지 2시간 남짓 시간이 비더군요. 그 다음 시외버스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기까지는 1시간 가량이 비었고요.
 
덕분에 평소 같으면 차로 세 시간이면 충분했을 거리를 그 날은 여섯 시간 걸려 이동해야 했습니다. 중간중간 할 일이 없어 터미널 부근에 있는 시장을 돌아다니면서요. 시골 시장에는 호미, 쟁기 같은 농기구를 팔거나 모종을 파는 가게들이 많더군요. 즉석에서 튀겨주는 도너츠나 김 부각도 지천이었고요. 군것질거리들을 실컷 사 먹고 난 뒤엔 시장 인근 개울가에서 동행한 친구 아이와 함께 물수제비도 뜨고 놀았지요.
 
그 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친구 아이는 그 날을 그리워한다더군요. 그때가 정말 재미있었다면서요. 실은 저 또한 그렇습니다. 무정형․무규칙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꼈달까요. 코로나19 이후 닫힌 하늘길을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다지만 사실 여행이라는 게 꼭 머나먼 곳으로 떠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죠. 오늘의 책이 추천하는대로 내가 사는 도시, 내가 몸담은 동네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낯설게 보기’ 효과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테니까요. 

발길 닿는대로 골목탐방이든, 건축을 통한 인문기행이든 그 방식은 뭐라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시와 산책>이라는 산문집에서 한정원 작가는 이렇게 썼더군요.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라고요. 5월의 마지막 주말에는 님도 정해진 목적지 없이 떠난 산책길에서 뜻밖의 것들에 마음 뺏기고 감응하는 순간들을 잠깐이나마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기대지 않고 삶의 중심을 스스로 틀어쥐고 있나' 
......오래도록 맴돌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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