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토양 영양 과잉' 세계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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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보도 '연금공단 냄새' 곳곳 부실 축사들
하천 오염도 큰 문제… 인구 1억명 사는 꼴


한삼희 수석논설위원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한국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하려면 돼지 분뇨 냄새를 견뎌야 한다'고 보도했다. 전북혁신도시의 국민연금공단에서 7㎞ 떨어진 곳에 축산단지가 있다. 악취도 문제지만 이에 못지않게 시급한 것이 축산폐수로 인한 하천 오염이다.

전북혁신도시에서 불과 10㎞쯤 떨어진 곳에 익산천이 있다. 상류의 돼지 사육단지 때문에 오랫동안 전국 최고 오염 하천으로 알려졌던 곳이다. 2009년 4월엔 오염도가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으로 574ppm까지 올라갔다. 한강 하류의 100배 오염이다. 이번 WSJ 보도를 접하고 그곳 상황이 궁금해졌다. 검색해봤더니 익산천의 작년 오염도가 2.5ppm으로 떨어져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 개선이었다. '맑다'고는 하기 어려워도 제법 깨끗한 수준이다.

'574ppm→2.5ppm'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알아보니 2011년부터 2015년 사이 정부와 지자체가 1100억원 이상 투자했다. 상당수 축사를 매입해 사육두수를 줄였고, 저수지 바닥 축분(畜糞)을 걷어내고 생태습지를 만들었고, 축산폐수처리장을 보강했다. 축산폐수를 해결하자 시궁창이 맑은 하천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바꿔 얘기하면 축산폐수가 얼마나 시골 개울을 더럽혀왔는지 보여준 사례다.

하천만 아니라 토양도 문제다. 축산분뇨 퇴비 때문에 농경지가 과(過)영양화를 겪고 있다. OECD의 '국가별 농경지 양분 수지(收支)'라는 통계가 있다. 비료 성분인 질소 항목에서 한국 농경지는 '㏊당 초과량'이 248㎏으로 OECD 40국 가운데 1위였다. 인(燐) 성분 역시 46.4㎏으로 2위였다. 농가들이 작물 필요량보다 훨씬 많은 영양 성분을 축산퇴비나 화학비료 형태로 투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과잉으로 뿌려진 영양 성분들은 토양 입자 사이에 축적되거나 비가 올 때 하천으로 쓸려 내려간다. 이것들이 하천을 부(富)영양화시켜 조류(藻類)를 증식시킨다.

10만㎢ 넓이에 5000만명이 사는 것으로도 우리 국토는 과도한 환경 부하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 배출물은 그래도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다. 소 한 마리는 사람 11명분, 돼지는 2명분 분뇨를 배출한다. 국내 사육 소 300만 마리는 사람 3300만명, 돼지 1000만 마리는 2000만명분에 해당한다. 5000만명이 살지만 실제는 1억명 인구가 사는 것과 같은 환경 부하다. 인구 밀도가 ㎢당 520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인데, 가축까지 감안한 환경 밀도는 1000명이 넘는 셈이다.

축산분뇨의 90%는 이른바 '퇴비화' 처리를 거쳐 농지에 뿌려지고 있다. 정부가 축산분뇨를 자원화(資源化)한다며 장려해왔다. 그 퇴비의 상당 부분은 비가 오면 하천으로 쓸려 들어간다. 여름에 비 오고 나면 호수에 녹조가 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청호가 녹조로 악명 높은 호수인데, 소옥천이라는 지천 유역의 축사들 때문이라고 한다. 4대강도 축산폐수를 해결하지 않으면 보(洑)를 열고 닫는 것에 관계없이 물은 더러워진다.

소 키우는 농가가 9만6000가구 있고, 돼지는 4600가구다. 2015년 가축분뇨법을 개정하면서 무허가 축사들에 처리 시설을 갖추도록 3년 유예 기간을 줬는데, 올봄 시설 보완 계획을 제출하는 조건으로 시한(時限)을 1년3개월 더 연장해줬다. 형편 어려운 농민들 어깨에 '환경 비용'을 추가로 얹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국토의 보전을 위해선 현대적 폐수 처리 시설을 갖추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가축 사육 규모를 줄이면서 한우·한돈의 고급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종적으로는 국민이 그 비용을 부담하는 수밖에 없다.

[한삼희 수석논설위원 sh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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