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 딜리버리 vol.5
연극이 끝나고 난 뒤 ⌛
 2023. 8. 23. 

*c-lab 7.0 프로그램과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무더운 7월, 숨 가쁘게 지나간 한 달이 끝나고 혼자 전시장을 정리하다가 무의식적으로 노랫말을 흥얼거리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이 노래는 1980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연극이 끝난 후>라는 노래입니다.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라는 가사로 이어지는 노래는 화려했던 공연이 끝난 후 헛헛한 마음과 쓸쓸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연극이 끝나 어둠이 내리고, 정적이 흘러도 무대에는 리프트, 조명, 영상 장비 등 각종 장치가 남아있습니다. 무대 위 배우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어둠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공연을 가능하게 했던 '매체'로서 말이죠. 


*c-lab 7.0의 화려한 시간은 끝났지만, *c-lab 7.0은 매체-신체를 가능하게 했던 물질적, 이론적 무대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번 리서치 딜리버리에서는 랩메이트의 리뷰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후니다 킴, 전보경, 권태현의 추천 리서치 자료를 공유합니다. 앞으로 공개될 프로젝트 영상과 프로그램 & 프로젝트의 뒷이야기를 담은 자료집까지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랩메이트는 *c-lab 7.0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연구 주제를 발전시켜 나가는 연구 동반자입니다. 2023년 6월 선발된 8명의 랩메이트는 인간의 지각 능력 변화나 신체의 소멸 가능성, 기술에 의해 경계가 흐트러지는 몸, 하위 주체의 신체, 인터페이스 등 각자의 질문을 품고, 7월 한 달 동안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그 후기를 남겼는데요. 아래 링크에서 랩메이트만의 관점을 살펴보세요!

리딩투게더 <글쓰기의 매체-신체>는 손으로 쓰는 것과 타자기로 쓰는 것에 대한 차이를 철학적으로 풀어낸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의 글을 다 함께 낭독하며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리딩투게더에서는 핸드폰 사용을 지양하고, 오직 손으로 쓰는 글로만 기억을 남길 수 있었는데요. 랩메이트는 과연 어떤 부분을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고, 무엇을 다시 표출해 냈을까요?


핸드폰 전원을 끄고 원고지 한 장과 펜 한 자루만 손에 쥔 채, 김남시 교수님의 음성과 나의 문장에만 신체 감각을 소비하였다. 들려오는 생소한 단어를 글자로 적는 찰나, 세계의 메커니즘이 좁은 품을 비집고 들어왔다. 자아의 부재와 실재를 동시에 자각하며 나의 세상은 한 칸 더 채워졌다. (신혜인_랩메이트)

돋보기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한 환경 인지 장치 '데이터스케이프Datascapes'까지. <파인튜닝되는 신체 감각>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의 인지 과정을 아우릅니다. 기술의 개입 정도는 다를지라도 이 모든 과정에는 매체가 필요합니다. 퍼포먼스에서 관객은 사물과 세상을 감각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감각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파인튜닝'에 대해 깊게 고민하며 오늘날의 기술 환경을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본 공연 하루 전, 리허설에 참여했던 랩메이트의 후기를 살펴보세요. 

<팔 아님, 발 아님, 말>은 3부로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 인간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분절된 말, 두 번째, 인공지능의 방법으로 재산출된 몸, 마지막으로 발 없이 허공으로 퍼지는 몸짓에 각각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가 몸과 만났을 때를 상상하며 매회 퍼포머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다른 몸의 진동을 만들었습니다. 랩메이트 리허설과 토크에서는 일반 관객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던 퍼포머의 규칙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더욱 세심한 관점으로 작성된 랩메이트 리뷰를 통해 그날의 몸짓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후니다 킴, 전보경, 권태현은 주제를 깊게 이해하기 위해 *c-lab과 함께 많은 자료와 서적을 읽고, 또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참여 아티스트 & 연구자가 선정한 리서치 자료를 공유합니다.

구보타 아키히로Akihiro Kubota, 『타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Otherness』 (2017)


일본 타마 미술대학 정보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구보타 아키히로바이오 아트, 라이브 코딩, 사운드 퍼포먼스, 디자인 교육 등 다양한 영역을 횡단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티스트이자 교육자입니다. 후니다 킴은 무사시노 미술대학원을 재학 중일 때, 구보타 아키히로 교수와 함께 사운드 아트 퍼포먼스를 기획하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전했는데요.


구보타 아키히로의 저서 『타자를 위한 디자인』은 디자인의 사회적, 인문학적 접근을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컴퓨터 음악과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 3.0: 디지털 머티리얼리즘 서론', '음향과 영상의 메타미디어 즉흥 연주', '숫자와 지각의 인터페이스 디자인', '라이브 코딩의 가능성' 등 컴퓨팅과 예술의 융합론을 소개한 책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타자'는 기계 또는 컴퓨터인 것이지요. 저자는 인간과 기계의 공생을 위해 인간이 가져야 할 메타 인지적 관점을 강조합니다.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모든 창작자에게 새로운 신체 감각이 요구되는 오늘날, 신체와 인터페이스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읽어볼 책으로 추천합니다.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컨택트Arrival> (2016)


- 언어는 문명의 초석이자, 사람을 묶어주는 끈이며, 모든 분쟁의 첫 무기다.

- 틀렸소. 문명의 초석은 과학이요.


'인간의 언어'와 '인간이 아닌 존재의 언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 <팔 아님, 발 아님, 말>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4개월 전부터 사이버네틱스, 인지언어학, 최근 인공지능이 언어를 인지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리서치와 토론에 기반하여 탄생했습니다. 전보경은 그중 가장 영감을 많이 받은 자료로 영화 <컨택트>를 꼽았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 종, 헵타포드heptapod는 선형성을 가진 인간의 문자와 다른 방식,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형태의 언어로 소통합니다. 작가는 영화 속에서 이미지를 통해 서로의 언어를 가늠하는 장면을 보고, 인공지능 언어 인식의 원리(텍스트의 이미지화)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영화에서 강조하는 메시지, "언어가 시공간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변화되어 온 매체"라는 점 역시 이번 프로젝트와의 중요한 연결 고리입니다. 발 없는 인공지능의 말을 퍼포머의 몸으로 코드화한 이번 프로젝트를 상기하며, 영화를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전은기, 「1990년대 이후 전자오락 문화의 변형에 대한 연구」 (2023)


권태현은 인터페이스에 따라 게임의 문화적 정체성 자체가 달라지는 현상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마주한 한 편의 논문으로부터 렉처 퍼포먼스 <인터-페이스-아나토미>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문화학과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연구자 전은기의 「1990년대 이후 전자오락 문화의 변형에 대한 연구」입니다. 연구자가 직접 촬영한 위 사진은 한국 오락실 문화와 게임 플레이, 청계천의 기술자가 하나의 환경이 되어 자연적인 진화를 이룬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는 조금 레버가 살짝 멍청하게 만들어져야 해. (...) 오차 범위를 줘서 어느 정도는 움직여도 동작을 안 하게 (...) 여기 오차 범위가 생기니까 이 오차 범위가 이렇게 넓어져 버리고 그러면 커멘드가 바뀐다는 거요. (서울시 영등포구 소재 전자오락실 업주 D씨, 2018년 8월 1일, p. 58-60.)


밀착적인 현장 연구를 담은 전은기 연구자의 논문에는 실제 청계천에서 조이스틱을 제작했던 기술 장인, 오락실 산업 종사자, 그 당시 활동하던 게임 플레이어 등의 생생한 목소리와 함께, 플레이어의 몸과 인터페이스, 이를 둘러싼 다양한 행위자의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담겨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① Akihiro Kubota, 遙かなる他者のためのデザイン ─久保田晃弘の思索と実装, Amazon 홈페이지 (링크)
② Arrival(2016) 스틸컷, IMDb 홈페이지 (링크)
③ 전은기, 「1990년대 이후 전자오락 문화의 변형에 대한 연구」 (박사학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2023), 60.

 추가 자료 더보기 👀 
① 장피에르 뒤피, 『마음은 어떻게 기계가 되었나』, 배문정 옮김, 지식공작소, 2023 (링크)
② 제임스 글릭, 『인포메이션』, 박래선, 김태훈 옮김, 동아시아, 2017 (링크)
③ 후니다 킴, 신예슬, 『바라보고 읽어내는 장치』,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 후니다 킴 <디코딩 되는 랜드스케이프> 기간 중 배포, 2021 (링크)
④ 전은기, "1990년대 이후 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미디어 고고학적 연구: 리듬액션게임을 중심으로"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22, no.1 (2022) : 77-86.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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