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재발견: 코로나 시대의 도시와 행정
─코로나19 이후 행정의 변화 방향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코로나19가 아직 현재진행형인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앞으로 이렇게 변화할 것이니 무엇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들에 대해 정리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조금 더 빨리 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그 길에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고 봅니다
안전, 일상, 동네.

안전, 일상, 동네의 재발견

  ‘안전의 경우 이미 수많은 논의가 나와 있지요.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언택트(untact)’, 언컨택트(uncontact)’일 것입니다. 비대면, 거리 두기의 문화가 불가피하게 확산되겠죠

  ‘일상의 변화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집 자체에 대한 관심, 내 가족이 집에서 무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요. 또한 재택근무가 도입되면서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다 보니, 집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동네. 제가 이 자리를 빌어 이야기하고자 하는 변화는 동네의 변화입니다. 그간 전국 단위로 살던 동안에는 동네에 관심을 갖기 어려웠는데요. 이제 원거리 이동이 어려워지고, 출퇴근도 어려워지다 보니 집 근처에서 외식이나 쇼핑을 해결하게 되었죠. 그리고 많이 걷고 산책하면서 동네를 재발견하다 보니 동네가 굉장히 중요해진 것입니다

앞으로 행정이 해야 할 과제에 동네가 있습니다

동네가 중요해진 만큼 동네 공동체,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단순히 오프라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로컬 중심의 SNS나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중심의 지역 공동체를 일구는 것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동네가 재편되는 첫 번째 단계에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경쟁 양상을 띱니다. 언택트 문화와 배달 서비스를 주축으로 하는 온라인이 부상한 것은 당연한 일인데, 사실 우리가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오프라인 상권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오프라인 상권들끼리 경쟁한 이 변화의 양상을 두 번째 단계로 보는데요. 자연과 동네의 약진, 실내와 시내의 부진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큰 건물 안에 있는 식당을 피하고, 퇴근 후 바로 집으로 오기 때문에 시내나 업무지구의 업소가 부진한 반면, 야외에 있거나 테라스 자리가 마련된 음식점, 동네에 있는 음식점을 선호하는 현상이죠.

  이 단계가 끝나면 시작될 세 번째 단계의 변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세계화와 로컬화가 서로 경쟁을 하게 되죠. 예를 들어, 동네에 대한 관심이 지역에서 생산된 음식, 이른바 로컬푸드에 대한 선호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양상입니다. 다만,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언택트가 다가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큰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과 결별하고, 어떻게 변화하고, 무엇을 유지해야 할까?
  
  해외여행, 원거리 출퇴근, 대형 실내 공간과 우리는 결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하던 1000만 명, 2000만 명이 사는 메가시티, 전 세계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하는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이것을 가능하게 하던 세계화. 이것들 역시 결별 대상입니다.

  유지할 것으로는 우선 도시가 있겠습니다. 메가시티는 사라져도 도시의 중요성은 그대로일 것이고, 걸을 만한 거리가 많고 공원도 많고 자연과 가까운 전원도시가 그중 각광받을 것입니다

  높은 인구밀도 역시 유지될 것 같습니다. 어찌 생각해 보면 인구 밀도가 높아서 전염의 위험이 높았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가까이 있어서 생활 편의 시설이나 의료시설이 다 우리 주변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서방 국가들의 경우 주택들이 서로 떨어져 있다 보니 근처에 충분한 의료 시설이 없어서 더 어려움을 겪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인구 밀도를 잘 관리해야겠지만요

  앞서 언급한 오프라인 공동체 역시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방역의 과정을 보면 우리 동네, 혹은 우리 도시 등의 단위로 이루어지거든요. 보행과 자전거를 이용한 통행도 유지해야 할 대상입니다. 실제로 코로나19 기간 동안 자전거 판매가 굉장히 늘었거든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보다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또 늘어나야 합니다.

일, 삶, 놀이를 한 동네에서 해결하는 생활권 도시의 등장 

이러한 결별과 유지를 통해 일과 주거, 놀이를 한 곳에서 이루는 생활권 도시가 가능합니다. 저는 미래의 도시 모델이 바로 생활권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용어가 낯설겠지만, 사실 지난 30년간 우리가 이야기해 온 골목도시’ ‘사람 중심 도시’ ‘걷고 싶은 도시와 모두 연결됩니다. 실제로 , , 놀이를 한 군데서 하는 라이프스타일은 밀레니얼 세대가 선호하는 방식이라고도 하고요.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생활권 도시 모델로의 전환이 보다 빨리 이루어진 것뿐입니다.

서방 선진국에서는 이미 미래 도시의 모델로 생활권 도시를 설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달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파리 시장 안 이달고(Anne Hidalgo)는 어디에 살든지 15분 안에 필요한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15분 도시개념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처럼 동네, 지역 단위로 산업 정책을 수립하여 경제를 활성화하는 도시들이 많습니다.

최근 언론에서 소개된 통계를 보면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우선 전체적으로 소비가 줄기는 했지만집 반경 500미터 이내의 가게에서 소비하는 이른바 홈 어라운드 소비의 경우 8.5% 증가한 것이죠. 
출처: 조선일보, "'언택트'가 아니었다...예상 밖 코로나 수혜 업종은"/하나금융연구소
출처: 제주관광공사
  여행하는 방식도 바뀌었어요기성세대들이 제주도를 여행한다 하면 버스 타고 제주도 한 바퀴 돌면서 구경하는 것을 떠올리지만요새 밀레니얼 세대들의 방식은 다릅니다한 지역에 가서그 동내에 오래 머무르는 여행을 하더라고요. 최근 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7개 지역을 허브로 삼고 있더라고요이러한 변화 또한 또한 동네 중심 문화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는 것도 동네 중심으로 살듯이여행을 가도 한 동네를 정해놓고 오래 머무는 것이죠실제로 작년에 작성된 또 다른 통계를 보면서울 내에서 같은 구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의 비율이 처음으로 50%를 넘었다고 합니다이 같은 로컬 지향동네 지향은 10년 전부터 이야기되어 온 개념입니다귀농이나 귀촌제주 이민골목 상권핫플레이스 등의 단어가 모두 로컬 지향의 일환이고고향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고 있죠.

이미 시작된 로컬 지향 트렌드

  사람들이 좋아하고젊은이들이 여행하는 골목 상권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문화 자원임대료기업가 정신접근성 공간 디자인정체성이 여섯 가지 키워드를 만족해야 합니다그러니까정부가 '활성화 정책'을 편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05년에 다섯 개였던 골목 상권이지금은 전국적으로 140개로 늘어났습니다서울뿐 아니라 광역시는 물론이요 기초단체단위에도 많이 형성되었죠이는 곧옛날에는 서울또는 서울의 특정 지역에 가야만 선망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겨졌던 것과 달리이제는 서울에 가지 않아도 전국적으로 형성된 근방의 골목 상권을 중심으로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어떻게 생활권 도시를 구축할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말씀드렸다시피 골목 상권은 동네 상권이기도 하지만동시에 사람들이 여행 가는 상권이기도 합니다골목 상권이 일반적인 동네 상권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뭐가 있을까요골목 상권은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여행 가듯이 먼 거리를 찾아갈 만한 독립서점베이커리커피 전문점 등이 모여 있는 골목입니다이렇듯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골목 상권들이 늘어나고 활성화되면사람들이 동네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겠죠.

결국에는 "사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 
  
  골목 상권을 기반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기 위해 정부가 할 일로저는 장인 대학장인 기획사도시형 관광단지지역 기반 산업 생태계를 꾸려야 한다고 제안합니다장인 대학을 설립해 지역 문화와 역사를 대표하는 장인 육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요그 장인 창업가를 발탁해서 양성하는 장인 기획사를 육성해야 하고요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관광 도시 사업을 펼쳐야 하고지역의 라이프스타일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동의 재발견─도시 재생의 새로운 주체

오늘 단 한가지만 강조할 수 있다면, 생활권의 범위가 좁혀졌다는 것을 꼽겠습니다. 앞서 홈 어라운드 소비에서 언급했던 500미터그 범위입니다서울도 크고구도 큽니다. 500미터 반경이라면 읍··동 단위가 되겠죠

  그런데 지금 읍··동이 행정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까요? 복지를 전담하고 등록증 배부 등의 일은 하겠지만동네 상권을 관리하고 낙후 지역을 재생하는 일은 시·· 단위로 이루어집니다이 기능을 읍··동 단위의 행정이 맡아야 합니다. 생활권이 좁혀진 데에 따라··동 단위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셈이죠상인회주민회 같은 주민 자치 단체는 이미 기능하고 있으니이를 지원하여 그 기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면 될 것입니다

  재난 지원금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동네의 정육점이나 수퍼마켓 등의 상점들이 대형마트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재확인하는 계기도 되었죠이처럼 우리가 동네에 관심을 점점 많이 갖게 된 만큼··동이 할 일도 점차 많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