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호
(통권 33호) 2021. 4. 8
👈 지난 세미나 갈무리 👉

<탈진실시대의 진실연대자들>2주에 한 번씩 주최하는 SNS 문자토론회 <열린세미나>에서 지난 41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시민봉기에 대한 토론이 열렸다.

토론자들은 현재 미얀마 상황과 군부의 성격을 진단한 뒤, 미얀마 군부 쿠데타의 성격을 국제자본과 군부 세력의 카르텔인 국가자본집단의 쿠데타로 보았다.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모델과 영미식 신자유주의 모델의 세계 자본주의 신냉전 내부의 열전으로 미얀마의 쿠데타를 보는 것이다.  

다음은 열린세미나 논의 내용 일부를 주제별로 간추린 것이다.

국가자본주의 쿠테타로서의 미얀마 군부 쿠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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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군부는 누구이고 무엇일까요? 군인들의 집합체일까요? 반군부라고 하면 무엇에 반대한다는 것일까요?
미얀마 군부는 사회주의적 국유화 조치 후 근년에는 신자유주의적 민영화를 통해 대자본가집단으로 전화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해외자본투자를 유치하여 일종의 국가자본주의적 발전을 주도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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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일 쿠데타로 권력은 민 아웅 흘라잉 국방군 총사령관에게 이양됐다는 것이 공식 설명입니다. “민주주의를 짓밟고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의 돈 줄은 한국의 모습을 하고 있다. 미얀마의 도심에 지어진 롯데호텔은 수익이 그대로 군부의 자금이 되는 형태이며, 포스코C&C와 포스코제철이 미얀마에서 합작투자를 하고 있는 군부 기업 MEHL의 회장은 이번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훌라잉 최고사령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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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미얀마를 무대로 국제 자본들이 전쟁을 치르고 있고 이것이 내전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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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해체기에 공산당이 신자유주의적 민영화를 주도했는데 미얀마의 경우는 군부가 그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자본주의에서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모델과 영미식 신자유주의 모델, 독일식 사회자유주의 모델이 경쟁을 벌이고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식과 영미식의 대립이 오늘날 신냉전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비교적 잘 조직되어 있는 버마의 군부는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선호하고 수치의 경우는 군부와 타협해 왔기 때문에 분명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군부보다는 영미식을 선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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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다중에게 영미식 신자유주의냐 중국식 신자유주의냐 이외의 다른 길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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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찾는 것이 관건이고 오늘날 다중의 공통장, 코모니즘(commonism)은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내놓은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군부는 1)독재 2)소수민족억압 3)자본주의 등을 표상하고 있는데 현재 민주항쟁의 반군부는 1)과 2)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3)에 대한 반대는 잘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미얀마를 통해 본 
한반도의 자본주의 신냉전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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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질문이 들었는데요. 하나는 신냉전이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라는 질문입니다. 두 번째는 이 말씀과 관련해서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가 결정적이라면 지금 어떤 구호를 외쳐야 하는 것일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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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국가자본주의를 거쳤고 그 유산으로 재벌 카르텔이 건재하므로 아직 어떤 국가자본주의 버전의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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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대결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한국전쟁이 남북전쟁이었던 것만큼이나  미·중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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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북은 경제협력으로 긴장 완화를 하게 될 텐데, 시장 쟁탈전이 가중되면 한반도도 무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갑자기 남 일이 아니고 무서워지네요.
민중은 독재와 소수민족 억압에 반대하지만, 자본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도 독재와 소수자 억압은 반대하지만, 민중은 자본주의를 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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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자본주의를 정말 ""할까요?
자본주의에 대한 절망이 깊은 만큼 자본주의 외에는 길이 없다는 모순적 감정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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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요. 중국식이든 미국식이든 신자유주의 안에서 안정적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불안한 삶을 피하기 위해 더 자본주의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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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역사적으로 지금처럼 깊은 때는 없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다른 모든 전통적 대안들(특히 사회주의)에 대한 실망도 오늘만큼 큰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실효적 대안을 발명하지 못한다면 자본주의와 함께 멸종하는 것이 인류의 운명일 것입니다.
점점 이 암울한 경로가 실제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미얀마 민중의 투쟁은 민족, 종교 간의 반목을 딛고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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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저항들과 현실의 저항들. 즉 사빠띠스따나 쿠르드 투쟁, 아이티 노예들의 저항 등과 미얀마 다중의 투쟁이 연결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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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미얀마 시민운동은 자발적이고 자율적이며 우리의 연대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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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나 소수민족억압은 자본주의와 별개의 것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의 중요한 구성요소이기도 합니다.
다중의 민주주의가 반독재, 반소수자억압이면서 반자본주의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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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억압은 자본주의가 인종 성별 분할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까요?
지금 현재 인종 분할은 아시아인 혐오로 나타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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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간 경쟁과 차별, 혐오가 극단화될수록 군부자본주의는 자신을 향한 아래로부터의 항쟁적 예봉을 피하면서 화살을 다른 민족에게로 돌릴 수 있겠지요.
종교차별과 종교 간 경쟁도 그렇습니다. 미얀마에서는 불교가 군부와 손잡고 무슬림 탄압에 나서고 있잖아요. 그럴수록 군부자본주의는 안전하게 도피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수치가 로힝야족 탄압에 묵시적으로 동의했던 것, 군부가 미얀마 발전의 중요한 축이라고 지지한 것은 버마족=불교=군부라는 지배블럭의 지지를 받지 않고는 권력 유지가 어려웠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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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미얀마나 소위 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 이야기를 할 때 제국주의/식민지역사에 대한 논의가 꼭 있어야 하는데 자주 누락된다는 생각했습니다. 갈등의 씨앗이 거기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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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로힝야족을 버마식민통치의 마름 장치로 활용했고 그것이 민족갈등의 불씨로 남았지만, 지금은 반로힝야 감정을 거꾸로 군부(+수치)가 자신의 독재의 마름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힝야족은 영국 지배 당시 관료지배집단으로 활용되었는데 오늘날은 반제국주의 역사를 가진 군부와 버마족을 비롯한 다수민족이 반로힝야 감정을 자신의 지배 지위를 유지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행위집단은 바뀌지만 구조는 연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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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갈등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하는 것은 관료나 지배집단이 아닌 일반 민중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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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이 정말 "무고"한지는 의문입니다. 희생당할 이유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군부를 키운 것도 결국 민중들(국민들)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키우고 희생당한다면 무고라기보다 역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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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가  미·중의 대리집단들 사이의 대립 갈등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라면반쿠데타 투쟁은 민중의 역량이 상승하는 계기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임시정부의 연방제적 성격이라든가. 평등권 강화 내용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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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역량들이 상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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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반쿠데타 투쟁과 국제사회의 연대 속에서 어떤 답이 나오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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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여 지지를 구하지 않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지지할 것은 지지하면서 자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해 나가면서 새로운 대안을 내놓을 때는 민중 역량 상승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양자택일의 길로 갈 때는 엄청난 고난과 출혈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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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시리아가 사례라고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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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반도의 상황이네요. 자율적이지 못하고 미소를 선택한 대가를 지금도 치르고 있으니까요.  

미얀마 민족 종교 간 경쟁과 차별, 혐오는 군부자본주의의 희생 메커니즘의 작동으로서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반복 확대되고 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 속에서 미얀마 민중은 세계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패권 경쟁 대치가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역시 미얀마 민중의 대안적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복면증언


💣👾💥
성폭력 피해자를 정쟁에 이용하려는 불순한 목적으로 엉터리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까판정치인을 고발합니다.  
<국민의 힘>의 이 의원이 지난 3월 28일 자신의 페이스 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 "정작 가짜 공익제보자였던 윤지오씨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셨던 안민석 의원님이 왜 인권위에서 피해자로 인정한 진짜 피해자에게는 이렇게 박절하신 것인가"

이 의원은 자신이 소속된 정당과 경쟁하는 상대 정당의 의원을 저격하기 위해 고 장자연 님 피해 사건을 용기 있게 증언한 윤지오 님을 '가짜 공익제보자'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박 전 서울시장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향한 2차 가해 세력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살아있는 장자연'인 윤지오 님을 공격하며 2차 가해를 저지르는 모순을 보입니다.
이 의원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여러 정치인이 각자의 진영에서 어떤 피해자는 진짜라며 옹호하고 어떤 피해자는 가짜라고 비난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윤지오 님과  박 전 서울시장 성폭력 피해 생존자는 모두 우리 사회의 적폐와 구습을 고발한 중요한 증언자입니다.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해 연대하고 지지해야 할 증언자들을 자신이 속한 정당의 이익을 위해 제멋대로 판단하고 이용하는 한심한 까판정치인을 고발합니다.


※ 진실연대자의 제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제보자 '현군' 님 감사합니다.)
※ TAPic에 싣고 싶은 글이나 기사가 있으면 진실연대자들 지메일(truth.commoners@gmail.com)로 제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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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진실 찾기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공통진실 찾기> 세미나를 진행합니다.
철학자 질 들뢰즈의 개념을 자유로운 활동의 '무기'로 번역한 책, 조정환의 『개념무기들』을 읽습니다. 공통진실 찾기의 역량을 더해줄 개념무기를 장착하는 시간, 매월 1, 3주 토요일 오후 1시실연대자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4월 3일 세미나 참가자들이 뽑은 책 속의 문장들
🌹  이와 마찬가지로 들뢰즈의 소수자도 자신의 생존 혹은 구제를 위해 정체성을 선택하고 그것을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하며 그에 합당한 권리를 내세울 필요에 노출된다. 이 길을 선택할 때 소수자는 모델을 만들어 내고 그 모델에 종속되는데 그것은 다수자의 종속적 성분으로 기능하는 길이다. 다른 한편 소수자는 모델을 만들거나 그것에 종속되기를 거부하고 생성이라는 미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이때 소수자의 힘은 자신이 창조하는 것에 달려 있고 설령 그것이 어떤 모델 속으로 들어갈 때도 그것에 종속되지 않는 것에 달려 있다. 들뢰즈는 이 창조적 소수자를 민중people이라고 부르는데, 민중은 다수자가 되었을 때조차 창조적 소수자로 남아 있는 주체이다. 이렇게 소수자가 다수자이면서도 창조적 민중일 수 있는 이유는 이 두 성분이 동일한 평면에서 살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중은, 죽음, 굴종, 치욕과 수치에 저항하면서 자신에게 없는 민중을 불러내는 예술처럼, 자신에게 없는 민중을 창조하는 자, 꾸며내는 자이다. 꾸며내기fabulation는 이런 의미에서 예술과 민중이 공유하는 주체화의 기술이다. _『개념무기들』 조정환 지음, 갈무리 pp.170,1

🌹  소수적 주체성의 특성에 대한 이런 탐구 끝에 들뢰즈는 “다수어와 소수어는 두 개의 언어가 아니라 언어의 두 가지 사용 또는 두 가지 기능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 추상적 표준과 모델 속에 포함되어 실제로는 누구도 아니고 아무도 아닌 자인 다수자와는 달리, 소수자는 표준과 모델로부터 벗어나면서 모든 사람의 잠재역량을 갖게 되어 그 스스로 모든 사람, 즉 유적 존재로서의 전인全人 으로 되어 간다. 이것은 생성하는 것, 실재하는 것, 자율적인 것이 소수자와 그의 변용능력뿐임을 의미한다. _『개념무기들』 조정환 지음, 갈무리 pp.173,4

🌹  애매한 전구체는 후자(『안티 오이디푸스』)에서는 도처에서 온갖 동작으로 멈춤 없이 기능하는 기계들로, 그 나름의 짝짓기들, 그 나름의 연결들을 통해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욕망하는 기계들, 그리고 그 기계들의 기계들로 나타난다.  _『개념무기들』 조정환 지음, 갈무리 p.163

🌹  유목민은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동하지 않고 앉아 있다. _『개념무기들』 조정환 지음, 갈무리 p.176

🌹  들뢰즈는 이 창조적 소수자를 민중people이라고 부르는데, 민중은 다수자가 되었을 때조차 창조적 소수자로 남아 있는 주체이다. _『개념무기들』 조정환 지음, 갈무리 p.171

🌹  뷔히너가 재구성한 렌츠의 산책에서는 별들이나 무지개 같은 천상기계들, 알프스 기계들, 광합성 기계들, 렌츠의 몸의 기계들이 끊임없는 소음을 내며 서로 짝짓는다. 이 기계들의 산책, 난혼, 군무에서 인간과 자연은 구분되지 않는다. _『개념무기들』 조정환 지음, 갈무리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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