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_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그대의 팬이야

청개구리 같은 인간

요즘 들어 날씨가 선선해졌습니다. 벌써 9월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선선하게 부는 바람이 제 귀에 대고 "야! 벌써 올해가 서너 달밖에 안 남았어!"라고 소리치는 것 같네요. 뭘 했다고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렀는지! 이렇게 한 살을 더 먹을 수는 없다고 우기고 싶지만, 그런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대신 2020년을 처음 시작할 때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2020년 첫날에 썼던 일기의 일부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새벽 3시가 넘었지만 그냥 자기 싫어서 글이라도 써야지 생각했다. 마음이 소란해져서 그 소란함을 잊으려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다정한 말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하나하나 얼굴을 떠올리면서 적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다정함보다는 아무말대잔치에 가까웠지만. 2019년 하반기에는 빈말로 '언제 밥이나 먹자' 하는 게 너무 지쳐서, 딱히 밥 먹고 싶은 사이도 아닌데도 그렇게 약속을 잡고 집에 가고 싶어하는 내 자신이 싫어서, 사람들을 덜 만났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날짜를 잡고 장소를 정하고 만나서 무슨 말할지 고민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는 것보다, 그냥 혼자 영화관에 가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는 쪽이 훨씬 편했다. 단조로웠지만 그런 삶의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이 글을 보면, 작년엔 빈말만 남는 자리가 싫어서 자발적 거리두기(?)를 했었나 봐요. 사실 올해에 비하면 작년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는데... 작년엔 빈말이 오가는 관계들에 지쳤다면, 올해는 빈말이라도 보고 싶다고 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사실 진심으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기도 했습니다. 마음껏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 때에는 '아! 혼자 있고 싶어!' 생각하다가,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 떨기 어려운 시절에는 '아! 다들 보고 싶어!' 생각하고 있다니. 역시 인간은 청개구리 같은 존재인가 봐요. 그래도 여전히 혼자 보는 영화는 재밌네요.좋아하는 이야기들을 잔뜩 쌓아놓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겠어요! 모두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1주년 기념 링크👉 https://forms.gle/kSKdi36uktMaTSER9

집에서 혼자 영화 보는 재미로 사는

<망고네 슈퍼> 주인장 드림

이 주의 위스키 한 잔👢

BIAS - 실리카겔

얼마 전에는 실리카겔의 음악을 추천하더니, 이번에는 실리카겔의 인터뷰를 들고 왔다고? 가능한 한 다양한 취향을 소개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번 인터뷰가 너무 좋아서 꼭 나누고 싶었어요. 실리카겔의 음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팀플레이 음악이라고 말하는 그들. 이 친구들과 무언가를 하면 계속해서 좋은 게 나올 것 같다는 확신이 있다는 그들. 트와이스가 인스타그램에서 '너무너무너무너무 좋다'라고 추천한 실리카겔의 인터뷰! 다같이 봐요!

"나는 이제 미래를 그릴 때 불행을 최소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삶에는 백사장의 모래만큼의 불행이 있고, 가끔 보이는 돌멩이만큼의 행복이 찾아올 뿐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고.

그냥 우리는 우리의 돌멩이를 잘 찾아서,

조금의 행복이라도 잘 누리면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우리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니까."

-[BIAS] 실리카겔 인터뷰 中

이 주의 아메리카노 한 잔🌲

전고운, 만날 수 없는 나의 딸에게

엄마는 밖을 나가기도 싫어. 나가면 뭐해. 한 발짝 뗄 때마다 돈인데, 돈 낭비지. 엄마 나이쯤 되면 머리숱이랑 친구들이랑 하나둘씩 사라지는데, 둘 다 참 안타까운 일이야. 엄마에게 친구란 것은 서로의 상태가 궁금하고, 그래서 듣고 싶고,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존재인데, 이제는 흉금을 터놓지 못해. 겉도는 이야기를 하거나 다들 자기 이야기만 하기 바빠. 다들 엄청 열심히 사는데 그만한 보상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거든. 어쩌다 만나게 되도 웃지만 웃기지 않고, 슬프지만 울지 않아. 얼마나 재미가 없니. 재미만 없는 게 아니라 모든 게 괜찮은 척 연기하는 것도 지쳐.

-[채널예스] 전고운, 만날 수 없는 나의 딸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라는 안부 인사에 답하기가 싫어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막상 만나면 "잘 지내", "그럭저럭 지내" 하면서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가겠지만, 그건 하나마나 한 대답인 것 같았거든요. 그렇다고 지금의 나는 어떻다고 구구절절 이야기하자니, 그 사람도 바쁘고 힘든데 굳이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을 것 같고. 반대로 상대가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면, 나 역시도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해줄 만한 여유가 없는 것 같고. 모든 게 괜찮은 척, 진심으로 공감하는 척 연기하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가끔은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벅차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청 열심히 사는데 그만한 보상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 그렇게 조금씩 멀어지는 것을 인정하고 '그땐 그랬지' 하면서 넘어가는 게 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흉금을 터놓고 한 대화는 언제였을까요. 가장 최근에 서로의 상태가 궁금하고,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사람은 누구였던가요. 이 질문을 들었을 때, 길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주의 사과쥬스 한 잔🌴

가을방학 - 사랑없는 팬클럽

9월의 첫날, 5년 만에 가을방학의 정규 앨범이 발매되었습니다. 질투하는 마음을 멈추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가만히 앉아 가을방학의 새로운 노래들을 들었는데요. 너무 좋아서 그런 마음을 단숨에 잊게 되고, 너무 좋은데 어떻게 하면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많은 것들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랑에 빠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또 과거에 열렬히 좋아했던 것들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그대의 팬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사랑없는 팬클럽>이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읽으면서 내내 공감했던 곡 소개도 함께 덧붙입니다.

요 몇년간 뜻하지 않게 K-Pop 아이돌 쪽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의뢰받은 부분만 기술적으로 납품하는데 그치고 싶지 않아, 시간을 들여 해당 아티스트의 작품 세계와 발자취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이돌과 팬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찬찬히 따라가다보니 이런 깊고 고운 마음들을 '유사연애'로 치부하는 것이 지독한 편견과 무지에 불과하다고 실감했습니다. 비록 먼발치에서일 지언정, 누군가를 오래오래 뜨겁게 사랑하고 응원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이별 노래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가을방학, <세상은 한 장의 손수건> 앨범 소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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