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스물아홉 번째 흄세레터
편집자의 일 중엔 '보도자료 작성'이 있어요. 님이 기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이 글을 읽어보셨을 거예요. 온라인 서점에도 같은 내용이 들어가거든요. 물론 보도자료가 아닌 '출판사 제공 책 소개'라는 이름으로요. 보도자료를 작성할 때면 한 문장 쓰고 한숨 쉬고🤦‍♀️, 한 문장 쓰고 머리카락을 쥐어뜯기를 반복하곤 하는데요, 《폭풍의 언덕》은 이미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된 적 있는 작품이라 특히 고민이 깊었어요. 그러다 이 문장을 쓰곤 흡족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바로 이거지! 하고요.


사랑의 정의란 다양하다지만, 히스클리프의 잔인한 복수는 결코 사랑에서 시작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화살을 상대에게 돌리는 것은 사랑이라는 탈을 쓴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아니면 죽어버리겠어!' 같은 말은 공포로 다가올 뿐 낭만적으로 들리지 않죠. 그러나 히스클리프는 그 잔인한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꽤 오랫동안 한 여자만을 사랑해 평생을 바친 순정남으로 읽혀온 것 같습니다. 오늘날 다시 (혹은 새롭게) 읽는 《폭풍의 언덕》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요? 진짜 사랑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정한아 소설가가 보내온 리뷰를 나눕니다. -편집자 세
영원한 사랑의 이야기

오래전 소녀 시절 내가 읽은 《폭풍의 언덕》은 사랑의 이야기였다. 히스클리프는 남성성의 화신이었다. 그의 거칠고 위험한 모습, 무엇보다 사랑에서 파생된 파멸에 나는 매료되었다. 그때 내가 사랑에 대해 무엇을 알았을까? 중년의 길목에서 다시 읽는 이 책은 그때의 감상과 완전히 다르다. 히스클리프는 냉혹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다. 그는 돈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모든 것을 복수의 도구로 삼으며, 타인의 감정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한다. 캐서린이 어떤 온기를 불어넣어주었다고 해도, 그것으로 그의 언 몸을 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그와 캐서린이 나눈 교감은 나르시시즘이나 소유욕에 더 가깝다. 나는 이제 이러한 자기 복제적인 감정이 사랑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만큼 나이 들었다. 한 권의 책이 시절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것은 결국 우리가 책을 통해 우리 자신을 읽는다는 뜻이다.


히스클리프의 황량한 내면은 작품 속 다른 인물들을 거울처럼 비춘다. 소설 안의 인물 중 병들지 않은 이는 없다(예외적으로는 딘 부인이 있으나 그녀는 이야기의 화자로서, 즉 모든 인물에게서 떨어져 사건을 관망하는 작가의 목소리로 기능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개개의 인물은 고독한 운명 안에서 평안을 잃어버리고 고통과 원한에 몸부림친다. 그들은 히스클리프를 두고 괴물 같은 인간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필연적으로 그와 닮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가장 순수한 존재로 등장하는 캐서린조차 ‘내가 곧 히스클리프’라고 고백한다.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히스클리프. 그는 비틀리고 일그러진 인간성을 대변한다. 작가는 진흙탕 같은 그 밑바닥을 가차 없이 보여준다. 인간의 내면에 손댈 수 없는 어둠이 있다는 것, 그 심연이 우리의 본질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폭풍의 언덕》을 읽다보면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저 황야의 목사관에서 자란 어린 소녀가 어떻게 스스로를 유폐하고 오직 글쓰기에 매달렸는지, 아무런 명성도 위로도 없는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내했는지, 소리 없이 퇴장하는 배우처럼 죽음을 맞이했는지에 대해 곱씹어보게 된다. 작가는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쓴다. 아무리 음침하고 어두운 이야기라고 해도 그 안에는 작가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름다운 것이 들어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의 경우 그것은 물론 워더링 하이츠, 그 오래된 건물을 뒤흔드는 바람이다.


황야에서 불어오는 메마른 바람 소리는 저 오래된 비극의 배경음악처럼 이야기를 감싸고 있다. 이 소설에서 인간의 심연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자연이다. 그것은 길들여지지 않고, 측정이 불가능하며, 익숙지 않은 방식으로 생명을 이어간다. 작품 속에 반복되는 끈질긴 탄생과 맥없는 죽음이야말로 아량 없는 자연의 속성이며 허무한 인간 삶의 본질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속에 새로운 희망이 있다.


부모의 유기 속에서 야만을 습득한 헤어턴과 비극적인 운명의 희생양이 된 캐시는 언뜻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분신처럼 보이지만, 그들을 따라 파멸하는 대신 손을 잡는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삶이 다음 세대로 새롭게 이어져나감을 보여준다. 모든 것을 초토화하는 폭풍이 지나갔지만, 그들은 건재하다. 그제야 모든 투지를 잃은 히스클리프는 복수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죽음이라는 안식에 접어든다.


히스클리프의 유령이 혼자가 아닌 어떤 여자와 함께 있다는 목격담을 전하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그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책이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히스클리프에 대한 에밀리 브론테의 사랑일 것이다. 생의 시작을 지켜줄 부모도 없이 어린 시절부터 떠돌이로 짓밟히며 살아온 한 인간에 대해 쓰기 위해 황야의 집, 그 집에 사는 사람들, 한쪽 방향으로 휘어져 자라는 나무들과 히스로 뒤덮인 들판이 필요했다. 짐승처럼 울부짖고, 모든 것을 쓸어가고, 끝내 잠잠히 잦아드는 바람이 필요했다. 그곳에서 그는 영원히 혼자가 아닐 것이다.

정한아 | 2005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는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 《애니》, 《술과 바닐라》, 장편소설 《달의 바다》, 《리틀 시카고》, 《친밀한 이방인》 등이 있다. 문학동네작가상, 김용익소설문학상, 한무숙 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심훈문학대상을 수상했다.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 황유원 옮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은

내가 죽거나,

아니면 저이가 죽는 걸 보는 거야!"


단 하나의 소설로 문학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긴 에밀리 브론테의 걸작. 캐서린을 향한 히스클리프의 빗나간 사랑과 광기 어린 복수는, 그러나 그 비극의 이면으로 찾아올 무한한 평화의 순간을 감추고 있다. 국내 처음으로 에밀리의 언니인 샬럿 브론테의 서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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