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 딜리버리 vol.2 
똑똑, 거기 누구 계세요? 

 2022. 5. 27. 
어젯밤 당신이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소설을 읽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것은 오늘 당신께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아마 시력의 감퇴나 몸의 피로일 수도, 가치관이나 행동의 변화일 수도 있겠네요. 이처럼 조명의 빛과 종이의 감촉은 물론, 살아 있다고 여기기 어려운 소설 속 등장인물까지도 우리의 몸과 정서에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책을 덮고 집을 나선 후에도 아직 읽지 않은 페이지의 이야기, 조명, 그리고 의자는 언제든 다른 무언가와 관계 맺을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토록 생생하게 세계와 영향을 주고받는 그들을 그저 죽어있는 객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번 호에서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어쩌면 이를 위해 오래된 사유에서부터 오늘날의 새로운 철학적 시류들, 그리고 행위자, 사물, 기계와 같은 개념을 아주 긴 시간 논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것보다, 우리는 왜 인간 밖에 놓인 존재들을 상상하기 어렵고, 심지어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존재들마저도 생생하게 감각하기 어려운지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아웃포커스 기능이 장착된 안경을 끼고 살아왔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요. 맞춰진 초점 밖의 존재들은 가시 범위 내에 있음에도 흐려져 제대로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던 것이죠. 다른 존재를 느끼고 세계를 더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쓰고 있던 안경을 잠시 내려놓아 보세요.
*c-lab 6.0 X 랩메이트

*c-lab 6.0 주제인 '공진화'를 중심으로 생물학과 생태학적 논의, 포스트 휴머니즘 담론, 예술 교육, 소설적 방법론, 기술 융합과 감각 변화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연구 주제를 가진 8명의 랩메이트가 선정되었습니다. 8인의 랩메이트는 9월까지 *c-lab의 "연구 동반자"로서 프로젝트 리뷰, 리서치 딜리버리 발행, 연구 결과물 발표 등 정기적인 만남과 연구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랩메이트 8인의 관심사와 프로필을 아래 링크에서 살펴보세요.

*c-lab 6.0 프로젝트 X 다이애나밴드

*c-lab 6.0 프로젝트 X 다이애나밴드의 전시 《점, 곁에서 말하는 점들》 오는 6월 13일부터 6월 30일까지 개최합니다. 관계적 미학을 향한 사운드와 미디어 아트를 실험해 온 다이애나밴드는 *c-lab 6.0 공진화를 통해 서로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서로의 ‘곁에서 말하기’가 가능한지 질문합니다. 《점, 곁에서 말하는 점들》은 우리가 당면한 생태적 문제를 몸의 감각과 예술의 경험으로 해석하고, 연결된 감각을 재조명하는 시도입니다. 링크에서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세요!

문화이론가 마크 피셔(Mark Fisher)는 '기이한 것'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으로 정의합니다. 기이한 것은 여기에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것 혹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그런 존재 혹은 사물이 있다면 "그때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지금껏 차용해 왔던 범주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됨"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내 옆의 사물이 뜨거운 숨결을 내뱉는다고 상상해 봅시다. 표면에는 점액질이 흐르고, 내장들이 꿈틀거리는 기이한 상상을요.


영국의 SF 작가, 귀네스 존스(Gwyneth Jones)는 "사물들이 살아있는 세계"를 위험하고 두려운 상황으로 그려냅니다. 지구인보다 우월한 외계인, 알루티안(Aleutian)을 다룬 연대기 중 단편 『사물들의 우주』는 외계인과 인간 정비사의 일화를 다루는데요. 외계인의 차를 수리하던 중 정비사는 잠깐 외계인이 보는 세계, 즉 모든 사물이 숨 쉬는 세계를 겪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도구의 "소켓이 항문처럼 움츠러들고, 입술이 오므라드는" 광경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구토하며 패닉에 빠집니다. 이후 정비사는 오히려 사물들이 죽어있는 안전한 세계의 특권을 자신이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물들의 우주』는 객체와 우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사물의 우주로 진입하는 것을 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NASA, <아폴로 11 문워크 Apollo 11 Moonwalk>, 1969

이 사진은 미국 나사(NASA)가 1969년 7월 20일 달에 도착하여 걷는 아폴로 11의 우주비행사를 촬영한 것입니다. 우주비행사가 느리게 걷는 어색한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는 지구와는 다른 '중력(gravity)'이 달에 존재함을 깨닫게 됩니다. 레비 R. 브라이언트는 책 『존재의 지도』(2014)에서 사회의 형식과 구조를 유지하게 하는 매개체로 '중력'을 언급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중력'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물리학자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넓은 개념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언급하는 '힘'과 '권력'과 같은 개념을 대체합니다. 이러한 개념의 대체는 인간 중심적 함의들을 극복하면서 비인간들과의 관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는 단일한 유니버스(universe)가 아닌 모두가 다른 플루리버스(pluriverse)*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각 세계의 중력은 개별적으로 다르게 기능합니다. 여러분 세계의 중력을 가늠해 보세요. 이 지구와 사회에 작용하고 있는 중력장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면, 그것이 세계를 바꾸는 첫걸음이 아닐까요?
*플루리버스(pluriverse)는 복수의 우주를 의미해요. 마블의 '멀티버스(multiverse)'가 다른 차원의 평행 우주를 말한다면, 플루리버스는 각 존재에게 통일된 일원론적 세계(universe)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복수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에요.

《비물질 Les Immatériaux》, 퐁피두 센터, 1985

1985년,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퐁피두 센터에서는 다소 낯선 전시가 열렸습니다.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드(Jean-François Lyotard)와 디자인 이론가 티에리 샤푸트(Thierry Chaput)가 공동 기획한 《비물질》 전시인데요. 전시 제목으로 쓰인 '비물질'은 비물질적인 것을 가리키기보다는 통신 기술, 홀로그램 등 신기술이 대거 포함된 '신소재'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물질, 도구, 모형, 질료, 모체 - 총 5개의 주제어로 구성된 《비물질》 전시는 신소재와 우리의 관계를 주목했는데, 새로운 존재를 감각하기 위한 새로운 감수성(sensibility)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관람자로 하여금 혼란스럽고 불확실하며 불안정한 상태를 촉발시킴으로써 기존의 위계와 질서, 관습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존재를 인식하고 경험케하는 감수성을 일깨우고자 한 실험적 시도였습니다.

🔮

진실이 불확실해져, 존재가 확실성을 잃고 개연성 있는 존재의 밀도 상태에 머무를 때 "이해"가 모호해진다. 이해의 헤게모니에서 나온 전시이기에, 《비물질》은 은밀한 감수성을 요구한다.


티에리 샤푸트, 《비물질》 전시 서문

<토이 스토리 Toy Story> 시리즈, 1995 - 2019


여러분의 외출을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누구일까요? 엄마, 동생? 혹은 반려견? 영화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하겠죠. "내 방 안의 장난감들!"


<토이 스토리>는 사람이 없을 때 살아 돌아다니는 장난감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이들은 서로 질투하며 싸우고,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특히 주인공 장난감 '우디'의 주인 '앤디'의 애정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요. 하지만 장난감이 정말 사람의 애정을 원하는 존재일까요?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졌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요? 1편에서 4편까지 이어지는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인간 중심적이었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사물들의 우주를 상상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토이 스토리 4>에서 새로운 주인을 찾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꾸리고자 치마를 벗어던진 '보 핍'과 이에 함께하는 주인공 '우디'가 바로 그 출발점입니다. '어린이들의 사랑 받기'가 이들이 가진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제작진은 '주인'의 존재를 장난감 옆에서 잠시 지워봅니다. 인간이 보지 못하는 너머의 세계, 인간의 방에서 벗어난 장난감들만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미지 출처 👀 


읽기 자료 👀 


육 휘(Yuk Hui) ‘전시하기와 감수성 일으키기 《비물질》전의 재맥락화’

출처: 백남준아트센터 『NJP 리더 #10 미술관 없는 사회, 어디에나 있는 미술관』 (링크)

테이트 페이퍼(Tate Papers) No.12 (2009, 가을)에 실린 안토니 후덱(Antony Hudek)의 《비물질》전 관련 글

Antony Hudek, ‘From Over- to Sub-Exposure: The Anamnesis of Les Immatériaux: Landmark Exhibitions Issue’, in Tate Papers no.12 (링크)

🍋 : 안경을 벗고 다초점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가능할까요? 다른 존재가 되어 바라보는 것이 더 쉬운 방법일까요?

🍎 : 우리 안에 있는 크고 작은 우주들!

🍯 : 플루리버스는 마블의 멀티버스와는 달라요! 

🔊 : 새로운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감수성을 일으켜야 할까요?

🚀 : <토이 스토리5>에서 장남감들의 우주가 어떻게 그려질지 여러분의 상상을 들려주세요!

👀 : 나중에 우리에게 새로운 감수성을 감각하는 다른 감관이 생겨날 수도 있는 걸까요?


*c-lab 6.0 리서치 딜리버리에는 코리아나미술관의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합니다. 저희와 함께 나누고 싶은 자료를 c.lab.coreana@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자료는 이후 발송될 리서치 딜리버리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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