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들은 끝까지 하지 않는 편입니다참 못난 놈이죠바로 지난주엔 아프지만 꼭 봐야하는 영화가 있다고 말했었으면서요실은 저는 아프면 되도록 무언가를 하지 않는 놈입니다그런데 이번 주에 저는 아팠습니다약간의 목 아픔과 몸살이 있었지만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던 것 같네요아픈 몸을 이끌고 월요일에는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영화 <문폴>에 관한 프리뷰 글을 썼어야 해서 시사회를 다녀온 것이었습니다달이 지구를 향해 떨어져 지구가 초전박살이 나는 재난 영화였는데스크린에 나오는 모든 것들이 파괴되고 아비규환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몸이 피곤해 잠이 쏟아지더라구요시끄러운 영화여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지잔잔한 영화였다면 아마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영화를 제대로 못봤을 지도 모릅니다.

 

<문폴>에 대해 조금만 더 얘기하겠습니다이번 주 개봉작 중 상영관이 많은 편인 영화이기도 하고특히 IMAX에 걸리는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결론 먼저 얘기하자면 <문폴>은 IMAX에서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지난번엔 또 아이맥스도 안 따진다고 했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문폴>은 영화의 압도적인 비쥬얼을 제외하곤 즐길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차라리 시야를 꽉 채우는 화면을 통해 영화를 보면다른 아쉬운 점들이 커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아이맥스를 추천드리구요큰 기대 않고 보신다면 적당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중간에 살짝 중국 자본의 향기가 나는 것도 견디셔야 합니다.

 

[NO. 003]


하기 싫은 거 하지 않는 용기


2022년 3월 19

 

이제 곧 아카데미 시상식(3월 27)이 열립니다누가 아카데미 받든 말든 내 인생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그래도 아카데미만큼 상징적인 지표가 없는 것도 사실이라, 이번주는 아카데미 후보작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중 제가 주목하는 부문은 작품상과 감독상 부문입니다.

 

작품상

<벨파스트> - 케네스 브레너

<코다> - 션 헤이더

<돈 룩 업> - 아담 맥케이

<드라이브 마이 카> - 하마구치 류스케

<> - 드니 빌뇌브

<킹 리차드> - 레이날도 마르쿠스 그린

<리코리쉬 피자> - 폴 토마스 앤더슨

<나이트메어 앨리> - 기예르모 델 토로

<파워 오브 도그> - 제인 캠피온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상

<벨파스트> - 케네스 브레너

<드라이브 마이 카> - 하마구치 류스케

<리코리쉬 피자> - 폴 토마스 앤더슨

<파워 오브 도그> - 제인 캠피온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스티븐 스필버그

 

저는 <벨파스트빼고는 다 본 상태인데요일단 모든 작품이 후보에 충분히 오를만한 영화들이라고 생각합니다특히 감독상 후보에 오른 감독들의 이름값이 화려합니다자 이제 보통의 뉴스레터들이라면 여기서 어떤 영화가 상 탈지 예측 들어갈 텐데제 예측은 별로 재미없을 것 같고게다가 틀리기까지 하면 더 노잼이니까 저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아닌 진짜 전문가 분들의 아카데미 수상 예측은 이번 주 씨네21 1348호에 특집 기사로 나가는 것 같습니다.) 다만 <드라이브 마이 카>, <리코리쉬 피자>, <돈 룩 업이 세 작품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는 것만 적어 놓겠습니다오늘 얘기하고 싶은 영화는 제가 네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지만수상과는 가장 거리가 멀 것으로 예상되는 작품인데요션 헤이더 감독의 <코다>입니다.

  


작년(2021) 8월에 개봉했구요현재 네이버 시리즈온을 통해 감상 가능합니다. ‘코다(CODA)’는 child of deaf adults의 약자로청각 장애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하는 말입니다먼저 코다 분들의 정체성에 대해 알고 있어야 영화의 주요 갈등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으실 텐데요코다는 대부분의 경우가정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가정의 대표 통역사 역할을 하며 성장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앞서 자연스럽게라고 표현하긴 했지만어떤 측면에서 이는 반 강제적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통역사란 엄연히 하나의 전문 직업입니다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통역은 돈을 받고 해야 할 정도의 행위입니다그런데 가족을 위해 통역을 하는 경우 당연히 그 합당한 수당을 받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심지어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통역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할 것이니까요약간 불효자식인 저는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뭔가 중요 업무가 있어서 통역사가 필요한 상황이 생긴다면(코다)는 따라가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그런데 가족이라는 특성상나의 중요한 일과 부모님의 중요한 일이 겹친 상황이라면비장애인인 자녀의 중요한 일이 상대적으로 덜 우선시 되는 일이 반복될 것이고그 반복이 특히 청소년기의 아이에게 찾아올 경우 불만이 터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얘깁니다.

 

<코다>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주인공 루비(에밀리아 존스)는 코다이고루비의 가족은 아버지가 개인 어선을 운영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루비는 우연한 계기로 자신에게 노래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만가족 비즈니스가 루비의 성장을 더디게 만듭니다일단 어선에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최소 한 명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루비는 많은 시간을 배에서 보내야 합니다또 새벽에 배를 타고 온 루비는 등교 후 너무 피곤해 수업도 제대로 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친구들로부터 생선 냄새가 난다는 놀림까지 받습니다.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비가 자신의 탁월한 재능 덕분에 결국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게 된다는조금은 눈에 보이는 전개로 진행이 됩니다이때 루비가 기회를 얻는 과정에서 또 상당히 익숙한 장치가 사용됩니다바로 루비의 엄청난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무조건적인 지원을 해주는 선생님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이것 참 영화 같은 기적이 겹치고 또 겹치는 그런 설정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겠는데요좋은 영화라고 시작한 이야기가 어쩌다보니 계속해서 단점만 이야기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솔직히 영화 좀 많이 보신 분들 입장에서는 <코다>가 그렇게 특별한 영화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이런 점들이 이 영화가 수상과 가장 거리가 있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이 영화는 결국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을 용기 내어 마침내 놓아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루비만큼 자신이 하기 싫은 것을 내색할 수 없는 삶을 살았던 친구가 또 있을까요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결국 자신의 꿈을 펼치는 선택을 내리는 루비가 그 어떤 히어로보다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멋있는 것은 루비뿐만이 아닙니다귀가 들리지 않는 부모님에게 자신의 노래 실력을 증명해야 했던 루비도 대단하지만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오직 딸의 진심어린 표정만 보며 결단을 내린 부모님 또한 이에 못지않게 멋있고 대단한 사람인 것은 분명합니다. (아버지 역을 맡은 실제 청각장애인 배우 트로이 코처의 연기가 대단합니다. 이번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저도 나름 하기 싫은 거 안 하기’ 권위자지만이 가족들만큼 큰 포기를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저는 아파도 영화 볼 거 보고엄마가 비행기 표 좀 대신 예매해달라고 하면 툴툴대면서 어쩔 수 없이 하긴 하니까요.

 

<코다>에 나오는 이런 포기들이 더 널리 알려져야저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하기 싫은 거 마음 편히 안 하면서 사는좋은 세상이 될 것 같다는 못난 생각으로 <코다>를 꺼내 보았습니다하기 싫은 거 하나쯤 과감히 안 해버리는 한 주 보내시기를그거 안 한다고 큰 일 안 날겁니다물론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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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는 말씀

1. 연재 2주차 만에 구독자 100명이 넘게 되었습니다구독자 이벤트로 김철홍과 영화데이트라도 진행해보려 했지만 하기 싫어서 안 하려고 합니다양해바랍니다.


2. 혹시 다른 좋은 아이디어 있으신 분 메일로 제안 받습니다재밌는 거 있으면 해보겠습니다.


3. 가끔 메일로 답장 주시는 분들께 일일이 답장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하지만 언제든지 너무나 환영하고글 관련해서 궁금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물어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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