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취미생활을 파는 망원 동네서점 탐방기!
책은 사람이 만듭니다. 
유유에서는 보름에 한 번, 책의 사람을 만납니다. 
책의 세계에서 일하는 이들의 숨은 이야기를 궁금해하실 독자께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유유의 편집사, 김은우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취미생활을 즐기고 계세요? 저는 피아노 치는 걸 가장 좋아하는데, 언젠가는 바이올린과 기타도 배워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피아노 하나만 열심히 치기도 벅차서 새로운 취미거리 만들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시작하려면 꽤 많은 의지와 시간, 돈이 필요하니까요. 
망원의 작은 동네서점 '제로헌드레드'는 '처음의 시작'을 돕는 서점이에요. 스스로를 '취미생활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서점지기가 워크숍을 열어 취미를 시작하고 익히도록 돕고 있거든요. 집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거의 매일 지나가고 가끔 들러 책도 사곤 했던 곳인데, 어떤 곳인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이제 활동하기 좋은 봄이니까 새로운 취미 하나 더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두근두근 하는 마음도 있었지요. 

따스한 민트빛으로 꾸며진 동네서점, 같이 들어가 볼까요?
백 가지 취미로 하루를 보내는 '취미생활인'
김하림 - 제로헌드레드의 책방지기, 독립잡지 <비생산>의 편집자, 그림 작가

→  2021년 추석 즈음 망리단길로 서점을 옮기셨죠? 가까운 곳으로 옮기셨지만, 새로 오픈한 기분이시겠어요.

네. 원래는 ‘공간 재생산’이라는 작업실을 친구인 유상희 작가가 사용하고 있었는데, 제가 그곳 한켠을 빌려 그림도 그리고 '제로헌드레드'(@zerohundred)를 운영했어요. 이제 자기 색깔로 공간을 운영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아 이렇게 독립했습니다. 3년 넘게 운영하다 보니 망원에 이런 서점이 있다는 걸 알아보고 찾아오는 분들과 단골들도 계셔서 멀리 이사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이전 장소랑 10분도 안 되는 거리로 이사 왔는데도 찾아오시는 분이 확 늘었어요. 이 망리단길 골목이 맛집도 많고 예쁜 소품집도 많고 워낙 분위기가 좋잖아요? 이사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제로헌드레드는 어떤 의미인가요? 영과 백, 이라는 의미인데 심오하게 느껴져요.

딱 들었을 때 명쾌하게 이해가 되지 않죠? 하하. 0과 100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 맞는데요, 그러니까 0은 '비어 있음', 100은 '가득 참'을 상징해요. 아무것도 없는 것을 저의 취향과 취미로 꽉 채워 가고 싶다는 의미로 이런 이름을 짓게 됐어요.


아, 맞아요. 인스타그램에서 ‘백취미 프로젝트’(@onehundredhobbies)라는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그럼 여기의 ‘백’도 그런 의미랑 연관이 있는 건가요? 이건 어떤 활동이에요?

네, 맞아요. 제로헌드레드는 책만 파는 게 아니라 워크숍도 함께 운영하는데, 2014년도부터 재미로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취미거리를 발견해 나가기 위한 프로젝트예요. 돈을 버는 것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하고 싶은 욕구를 꽉 채울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선언적인 의미로 ‘백취미’라고 이름 붙였어요. 미디(midi) 음악 코드 배우기, 영화 보고 그림 그리기, 오색 모시빗자루 만들기, 가죽공예 등등 다양한 분야를 진행하고 있어요. 

내 취향에 맞을지 아닐지 알 수 없는 궁금한 취미거리들을 일단 배워 보고 익혀서 누군가에게 이 처음을 알려주는 활동을 하나로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어요. 한 60에서 70가지 정도를 한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쌓이면서 세지 않았어요. 정확하게 카테고리를 분류해서 카운트를 다시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평생 지고 갈 활동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독립잡지 '비생산'과 굿즈들

‘비생산’은 공간 이름이기도 하고, 잡지 이름이기도 하더라고요. 이 독립잡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네, 맞아요. 원래 공간 비생산에서 지인이랑 함께 활동하는 와중에 근처에 사는 몇몇 동료나 지인들이 자주 놀러왔어요. 함께 나누는 대화들이 너무 재미있었는데, 휘발되고 사라지는 느낌인 거예요. 단순히 대화들이 사라지는 게 아까워서 가볍게 잡지로 엮어볼까? 하고 시작했죠. B급 잡지를 만들자고 얘기했는데 생각보다 묵직한 책이 나왔어요. '비생산'이라는 게 쓸데없는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우리한테는 너무 중요한 얘기였거든요. 


‘비생산’이라는 가치관이 왜 중요할까요? 비생산이 말하는 비생산이 뭔지 궁금해요. 꼭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해서 비생산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고, 공부를 하거나 뭔가를 배우면 생산적이라고 얘기하기도 하잖아요. 피아노 연습을 하건 책을 읽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건, 모두 돈을 버는 건 아닌데도 가만히 누워 있는 일만 생산적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 같아요.

‘비생산’이라는 단어는 유상희 작가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흔히 좋은 결과물이 나오면 성공적이자 생산적이라고 말하고,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실패했고 비생산적이라고 말하곤 하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비생산은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무언가를 해 보고자 하는 일을 뜻해요.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비생산을 실패로 보지 않고, 성공 여부를 떠나서 내가 좋아하거나 필요한 일을 한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의미로요. 조금 안일한가요?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면서도 그 시간에 휴식을 제대로 취하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정지 상태를 즐길 수도 있잖아요.

백취미 프로젝트도 사실 사회에서 보면 굉장히 비생산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할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고 놀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 같고요. 하지만 이 활동이 제 삶의 모든 요소를 바꿨거든요. 숨통을 틔워 주고 삶의 태도를 바꾸더라고요. 꼭 돈을 벌지 않아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가치 있는 활동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지금까지의 백취미 활동 중에 되게 재밌고 계속 지속하고 싶었던 취미가 있다면요?

뻔할 수 있지만, 저는 과일청 담그기 워크숍을 여러 번 했었는데 좋은 취미 같아요. 딸기청, 자몽청, 레몬청 이런 기본적인 과일청 이외에도 생각보다 다양한 조합과 변주를 할 수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일반적인 과일청 수업을 하다가 다른 예술가분과 함께 한 지역 아이들이랑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귀신의 집’처럼 미각과는 상관없는 이름으로 상상을 더한 맛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신기한 색깔이 나오는 식재료를 써 보기도 했는데요. 아이들도 너무 좋아했고 참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

  서점의 한 켠에는 사진, 일러스트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요. 지난 2022년 3월에 전시된 야금씨의 '하늘 그림'입니다. 

→ '손바닥 책 만들기'라는 워크숍도 있던데. 그럼 서점에서 직접 책을 제작해 주시는 건가요?

손바닥 책 만드는 워크숍은 내가 쓴 소설을 직접 책으로 만들어 보는 활동이에요. 글을 쓰고 합평을 하는 모임은 많은데, 자기 책을 직접 만들기는 쉽지 않잖아요. 단편 소설도 쓰고 물성을 지닌 책으로 만드는 활동이에요. 판매를 목표로 하는 건 아니지만 내 손에 잡히는 책의 형태로 나온다는 게 큰 의미가 될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홍보물에 디자인은 제로헌드레드북스가 해 준다고 쓰여 있네요! 그림도 많이 그리시는 것 같아요.

네, 맞아요. 제가 직접 하는 가내수공업이죠, 하하. 제가 순수미술을 전공했거든요. 책 표지나 본문 디자인 외주 작업도 하고 있어요. 식물 기르는 취미가 있어서 오랫동안 관찰하고 돌보고 있는데, 식물 그림도 시리즈로 그리고 있고요. 제가 이미 쓸모를 다 했는데 버리지 못한 사물들을 되게 많이 가지고 있어요. ‘미련상점’이라는 타이틀로 버리지 못한 물건들을 그리고 있어요. 2021년에는 'BOTTLES'라는 미련상점 첫 번째 전시회를 열었어요. 다 마시고 남은 음료수 병들을 모으는 버릇이 있어요. 왜인지 버리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이 병들을 그림으로 남기면서 이별의 발걸음을 뗐죠. 이야기만 남겨 두고 덜어 내는 과정이에요. 


작은 책방의 서점지기, 그림 작가, 잡지 창간 편집장이라는 업무적인 설명을 모두 벗어던지고 '나'라는 한 인간을 표현하신다면요?

제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 프로필에 이렇게 써 놨어요. "모으고 섞고 그리고 어지르는 사람!"이라고요. 이걸 또 한 단어로 ‘취미생활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워낙 다양한 활동을 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아이덴티티가 쪼개져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결국 저는 한 가지를 배우고 경험을 쌓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그림도 그리고 돈도 벌고 있어서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우리가 책이 아닌 다른 매체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면,
책을 그 속으로 가져가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해요.
도서출판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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