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관객이자 독자들, 그리고 동료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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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의 독자님들께

매달이 이토록 다르게 느껴진다니,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나를 두고 벌이는 시간의 농간 같습니다. 시간이란 얼마나 영악한 인간의 놀이인가요. 매분 매 초, 다를 것 없이 똑같고 의미 없는데 우리는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날마다 다르게 살려고 노력하니까요. 나는 주말이 싫습니다. 매주 금요일 밤이 되면, 다가올 이틀을 어떻게 요긴하게 보내야 할지 - 내게 배당되지 않아야 할 쓸데없는 고민이 주어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매일 무어가 다르던가요. 매일이 똑같이 소중하고 또 다르게 의미 없지 않던가요. 하지만 한 해의 끝자락이 다가오면 이런 냉소적인 마음도 조금 가라앉습니다. 모든 게 바뀔 것이라는, 바뀔 수도 있다는 얄팍하고도 강력한 희망이 내 마음 언저리에 피어납니다. 무엇을 태울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작은 불씨가 살아나려는 것을 애써 막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매달의 끝과 시작에 부치는 편지이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도 민망하고 애매합니다. 지금 나는 이것을 쓰며 끝나갈 올해를 곱씹어야 할지, 벌써 닿아버린 십이월을 기념해 새해를 맞이해야 할지 - 골몰합니다. 하지만 나는 대단한 이야기꾼이 아니므로 최근의 일을 늘어뜨리는 방법을 택하겠습니다.

저는 매달 10권에서 15권 사이의 책을 읽고, 그중에서 특히 마음이 동하는 작품을 골라 제 언어로 다듬어 그것을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목록은 매월 1일에 공개됩니다. (혹 모르시는 독자님들을 위해 - 가상실재서점 모이moi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매월 말에 가장 바쁘고, 초순에 한가합니다. 중순은 본격적인 독서 주간입니다. 그러니 이외의 활동에는 약간의 제한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측정된 스스로의 한계를 넘는 일은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는 닿기 전까지는 알 수 없지요. 몰랐습니다. 닿아버린 줄을.

지난 십일월, 약 5일간 오프라인 공간에서 독자님들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쇼케이스'라고 부릅니다) 기회는 달콤합니다. 일단 오면 반갑습니다. 그리고 절박해집니다. 다시는 못 만날까 봐요. 내게는 다시 없을 기회일까 봐요. 그래서 보통의 우리, 아니 보통의 저는 대부분의 기회를 잡습니다. 그리고 매번 통탄합니다. "아, 이건 내 한계를 넘는 일이(었)다."

벅차고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울고 싶어졌습니다. 시간을 넘기며 해야 할 일들이 자꾸만 생각이 났으니까요. 나와 함께 고생했고 또 고생할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창피했습니다. 혼자만의 일이 아닌 것을, 왜 이토록 혼자 하려고 하는지. 무언가를 선보일 수 있다는 욕심과 기회에 대한 애착으로 애써 만들어 온 이 공동체에 짐을 지워준 것이 아닐까 괴로웠습니다.

두 번째 모이moi의 쇼케이스는 콘텐츠 기획을 담당하는 예븐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구상한 무대입니다. 말로도 글로도 잘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무대를 그 누구보다 명확히 입증해준 것은 디자이너 재하입니다. 저는 의견을 보태줄 뿐이었습니다. 닷새 동안만 존재했던 아름다운 우리의 연극, 그것은 혼자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대가 없는 - 배우가 없는 - 연출이 없는 연극, 셋 중 어느 하나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의 일을 하고 있던 겁니다.

2021년 11월 17일부터 21일까지 114명의 독자님이 관객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이 편지를 읽으실 독자님께서도 계실 테지요. 우리의 시공간을 함께 나누었던 분들 말이에요. 사실 힘에 부쳐 일일이 전하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관객이 없는 연극, 역시 성립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의 일을 함께하고 있는 겁니다.

2021년 한 해는 모이moi로 가득했었습니다. 시간이 저물어가려고 하는 지금, 제가 가장 하고 싶은 말 역시 모이moi였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것은 제 동료들과 독자들께 바치는 헌사입니다. 제가 만든 사사로운 지면이니 그것을 양껏 활용한 것이라 생각해 주세요.

제가 시작한 이야기에 동참해주어 고맙습니다. 저는 저밖에 모르는 창피한 인간이라, 다채로운 당신들이 필요합니다. 입체의 인물이 되어주세요. 언제까지 쓸 수 있는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있는 동안은 최선의 마음으로 쓰고 싶습니다. '올해'라는 비겁한 단어로 쓰는 마지막 편지입니다. 늘 건강하세요. 저도 그럴게요. 징그럽고 악마 같은 시간의 파도를 견디느라 우리 고생이었어요. 나는 이 편지를 부치고 조금 쉬겠습니다.



2021년 11월 30일
당신들이 보태준 용기에 자신을 조금 놓아보며,
참새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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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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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계좌 : 하나은행 82491020651107 박상미 (모이 m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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