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의 우호적 관계 맺음의 근간이 되는 의미를 가진 글자: 親(친)
-힘들고 괴롭거나 혹독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살피거나 돌보는 사람 또는 그런 관계
우리말 단어 중에는 한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이들 중 어떤 단어는 오랫동안 너무 익숙하게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어 한자인 줄도 모를 정도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말할 때 사용하는 ‘친하다’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한자 ‘親(친)’을 뿌리로 하여 만들어진 단어이다. 별도의 풀이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친하다’는 ‘가까이 사귀어 정이 두텁다’로 풀이되어 있다. ‘가깝게 사귀다’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가깝다는 것이고 ‘정이 두텁다’는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 크다는 의미이다. 親(친)의 원래의 의미를 찾아보고 우리말 ‘친(親)하다’의 의미와 비교해보자.
親(친)자는 금문(金文)에 처음 보인다. 親자는 立(립: 서다)과 木(목: 나무), 見(견: 보다)이 결합된 모양이지만, 처음 글자가 보이는 금문에서는 辛(신: 맵다)과 見이 결합된 형태의 글자였다. 辛은 갑골문에도 보인다. ‘죄인의 문신을 새기는 뾰족한 모양의 도구’, ‘죽어서 거꾸로 눕혀져 있는 사람’, ‘형틀에 묶여 처벌 받고 있는 죄인’ 등 몇 가지 풀이가 있다. 갑골문 글자의 풀이는 글자의 모양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해석에 자의적인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辛자의 이후 문헌 속의 용례를 보면 ‘맵다’, ‘고생하다’, ‘괴롭다’, ‘혹독하다’, ‘죄’, ‘허물’ 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마도 갑골문 辛자에 대한 풀이도 후대의 용례에 보이는 의미에서 추론된 것일 것이다. 見의 갑골문에서의 글자 형태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후에 ‘보다’라는 기본 의미에서 ‘알다’, ‘살피다’, ‘돌보다’, ‘보살피다’ 등의 뜻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이렇게 보면 辛(신)과 見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親(친)자는 ‘힘들고 괴롭거나 혹독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살피거나 돌보다’ 또는 그런 사람을 ‘살피거나 돌보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힘들고 괴롭거나 혹독한 처지에 있을 때 그 사람을 살피고 돌봐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그 사람을 가장 사랑하거나 그 사람과 가장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사랑하고 가까운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의 부모이다. 그래서 親(친)자가 ‘부모’, ‘피붙이’, ‘가까운 사람’, ‘사랑하다’, ‘아끼다’, ‘가깝다’ 등의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의미는 ‘부모’ 또는 ‘어버이’이다. 부모는 자녀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사랑을 베푼다. 비록 자식이 죄를 지어 처벌받고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상황일지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의미의 親(친)자를 포함하는 단어로는 친애(親愛), 모친(母親), 부친(父親), 친척(親戚), 친지(親知), 친구(親舊), 친절(親切), 친근(親近), 친밀(親密), 친숙(親熟) 등이 있다.
親(친)자의 원래 의미와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우리말 ‘친하다’는 어감에서 차이가 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친하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가까이 사귀어 정이 두텁다’로 풀이되어 있다. ‘사귀다’를 다시 사전에서 찾아보면 ‘서로 얼굴을 익히고 친하게 지내다’로 풀이하여 ‘사귀다’와 ‘친하다’ 두 단어는 서로를 풀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풀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친하다’는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거나 가깝지 않았던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익히고 가까워져서 정이 두터워지다’를 의미한다. ‘친하다’는 親(친)자의 원래 의미 중 ‘가깝다’만을 담아내면서 상태의 변화 즉 관계가 ‘가까워지고’, 그 과정에서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