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True: do/ virga》는 지수 함수의 곡선으로 서문을 시작하고, 전시 곳곳에서 그 곡선의 둥근 형태가 나타납니다. 지수 함수를 줄줄 이야기하고, 코딩 용어를 제목에 쓰고, 붉은 방은 강렬해서 다가가기 어려운 전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볼수록, 어딘지 허술한 구석이 많은 전시였습니다. 

커튼을 열고 들어간 공간에서는 자꾸만 반복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붉은 방 안에서 계속해서 돌아가는 모터, 어두운 방 안에서 빛을 내면 반복되는 비디오는 실체는 불분명하고, 계속해서 왜곡되어 있습니다. 비디오의 영상은 격자무늬의 창을 통과해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는 하는데, 그 모습이 어쩌면 어느 순간 방향이 바뀌는 지수 함수의 곡선과 닮아보이기도 했습니다. 

(민음사, 2019)

지난 7일 정부가 낙태죄 조항을 수정하는 입법예고안을 발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정부는 낙태죄 전면 폐지가 아니라 임신 14주 내에 한해서만 전면 허용한다는 내용의 입법예고안을 내놓았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고, SNS에서는 #나는낙태했다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펼쳐보면 좋을 책을 소개합니다.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의 『사건』은 단 하나의 사건, 바로 자신의 임신 중절 경험에 대한 책입니다. 에르노는 1963년에서 1964년에 걸쳐 있었던 그 사건을 2000년에 글로 써서 발표합니다. 프랑스에서도 임신 중절이 불법이었던 시기에, 대학생이었던 그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면서 여러 갈등과 고민, 크고 작은 사건을 겪게 됩니다. 진심으로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가십과 냉담, 비난만 있을 뿐입니다. 한 남성 동료이자 유부남은 그녀가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듣고는 자신과의 섹스를 제안하기도 합니다. 아니 에르노는 이 모든 일과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표현합니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내가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이 사건을 당시의 실재 속에서 과감하게 맞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임신 중절이 이제는 금지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매우 중요한 국면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아주 힘겹고 더디게 어떤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상수 K 근처에서 아주 더디게 상승하는 지수함수처럼요. 그렇지만 이 지점을 지나면 다시 상승하여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가 분명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기를, 여성으로서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