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1장의 첫 <영감클럽> 이야기!

극작가들은 어떻게 이야기를 상상할까요?

앞서 소개했듯이, 첫 번째 영감클럽은 연극 <왕서개 이야기>, <붉은 낙엽>, <신신방> 등 다양한 이야기로 관객과 꾸준히 만나오고 있는 김도영 극작가와 함께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소설, 에세이와 같은 문학에 비해 극작은 생소하게 느낄 것 같습니다. 아마 우리 대부분은 극작의 결과물인 희곡을 글보다는 연극 무대, 넓게는 TV나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만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극작가는 이야기의 영감을 어디서 얻고, 또 어떻게 상상할까요? 이날 김도영 극작가가 나눠준 이야기와 사전 인터뷰 내용들을 엮어 정리해보았습니다. 지금 함께 알아볼까요?

TOPIC 1. 글을 쓰려면 똑똑해야 할까?

사실 저는 작가들은 똑똑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실제로 똑똑한 작가들도 많고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아주 사소한 교양이나 지식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이렇듯 저는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르는 부분은 상상으로 채우곤 합니다. 별이 왜 빛나는지 대강 알지만 또 정확히 안다고는 말할 순 없어요. 다만 저 빛나는 별에 빗대어 무엇을 이야기하면 좋을지 상상하고 또 상상합니다. 

TOPIC 2. 영감의 원천, 주제와 소재

작품을 내놓고 나면 ‘이 작품의 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상당히 많이 받게 됩니다. 다른 작가들과 제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실 저는 ‘주제의식’이 별로 없습니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싶거든요. 저는 단순히 마음을 건드리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게 다입니다. “주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마음이 꿀렁해” 정도입니다.  하나가 더 있다면 ‘인간이 뭔데’ 정도가 있겠네요. 여기서 인간에 대한 궁금증은 주제일까요, 소재일까요? 흔히 주제는 철학이요, 소재는 세상사라고 합니다. 그럼 철학은 뭘까요. 사랑, 분노, 질투, 원망, 후회 등등 말로 해독할 수 없고, 한 가지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라고 생각해요. 도저히 옳고 그름으로 결론지을 수 없는 거죠. 작품은 인간의 감정에 관해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담긴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명료하게 답할 수 없는 거죠. 철학이 그러하듯이요. 

TOPIC 3. 인간의 길을 상상하기

희곡이든, 소설이든,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인 것 같아요. 봉준호의 영화 <마더>는 김혜자의 갈대밭 춤으로 시작하는데요. 그 춤을 보고 너털웃음을 짓는 사람도 한 번쯤은 궁금해질 거예요. “저 여자는 왜 저기서 저러고 있을까” 바로 이 궁금증이 그 영화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영화를 예로 들어볼게요. 마동석이 주먹을 휘두르며 살인마를 잡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마동석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김혜자의 춤과 마동석의 주먹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두 사람 중 무엇이 더 여러분의 상상력을 자극하나요?

저는 스물두 살에 처음 희곡을 썼어요. 아무거나 써오라기에 그땐 정말 아무거나 썼습니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정육점을 배경으로, 이승에서 죽은 사람이 저승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그 정육점에 들러 자신의 육신을 썰어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썼죠. 두 번째 작품도 결은 비슷해요. 병풍을 만드는 노인의 이야기로 죽기 전 자신의 제삿상에 세울 8폭 병풍을 만들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그 다음 작품은 딸 같은 돼지와 돼지 같은 딸의 이야기입니다. 돈 달라는 서울 딸과, 서울 딸에게 돈 보내기 위해 자식처럼 아끼는 돼지를 잡아야 했던 엄마의 이야기였죠. 

그땐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나는 옛날이야기를 좋아하니까 옛날이야기 같은 걸 써보자고요. 그게 다입니다. 지금도 비슷해요. 아마 제 작품을 관람한 사람이 있다면, 난 동시대적인 고민 같은 건 그리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하게 있을 뿐입니다. 한동안 그걸 아무도 몰라줘서 몇 년 간 무명으로 살았습니다. 그때 누군가 저에게 ‘재야의 고수처럼 쓰고 또 쓰면서 기다려라. 그러다 언젠가 저 여기 있어요하고 나타나면 된다’고요. 밥 먹고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며 살다가, 주야장천 써서 버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지금처럼 누가 내 얘기를 해달라 부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좌우명은 예나 지금이나 딱 하나예요. “걱정 마, 잘 안될 거야” 그러니까 걱정 없이 하게 되더라고요.

TOPIC 5. 영감클럽의 마무리

영감은 의외로 단순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보다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아는 사람’에게 훨씬 유리한 것 같아요. 결국 자기 자신을 출발점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는 거예요. 사실 저 역시 이제 고작 서른여섯이며, 영감에 대해 고민을 해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더 깊은 무언가를 함께 나누기엔 부족함이 많아요. 우리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 만나면 지금보다는 나아져있겠지요. 우리 스스로를 꾸준히 탐험해나간다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