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의 어느 날, 컨테이너들을 실은 화물선이 말래카 해협을 통과해 수에즈 운하로 들어섰습니다. 갑자기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특수부대가 나타나더니 화물선을 세우고 수색에 들어갑니다. 그러곤 컨테이너에 실린 화물들을 압수했습니다. 

   농축 우라늄 제조용 원심분리기 부품들이었습니다. 미국의 첩보 위성은 이 화물선의 움직임을 24시간 감시했습니다. 핵 비밀 거래를 해온 국제 조직에 침투한 위장 요원으로부터 화물의 내용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받은 CIA는 두바이항에서 독일 국적의 화물선 'BBC China' 호에 컨테이너가 옮겨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화물선은 수에즈 운하를 거쳐 리비아로 갈 예정이었죠. 무하마르 카다피가 집권하고 있는 리비아였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2004년 2월 13일 자에 첩보영화같은 이런 내용을 자세하게 전합니다. 

   최종 목적지가 리비아라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리비아의 철권통치자 카다피 얘기를 해야 합니다. 

   1969년 9월 27일 27세에 카다피는 대위 계급장을 달고 쿠데타에 성공합니다. 왕정을 무너뜨린 그는 반미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창하며 아랍 단일국가 건설을 국가목표로 내세웁니다. 

   리비아는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했지만 카다피는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가지고 있어야 미국과 유럽에 대항하고 이스라엘을 추방하고 아랍의 패권을 장악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집권하자 바로 WMD 확보를 위해 뛰어듭니다. 1970년대 초 해외 암시장에서 핵무기를 사들이려다 실패하기도 합니다. 

   미국은 곧바로 카다피 정권에 대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강력한 제재를 가합니다. 1986년 미국 팬암 항공기 폭파 사건으로 270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미국은 배후로 카다피 정권을 지목합니다.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미국을 넘어 유엔 차원으로 확대됩니다. 미국은 카다피가 어디 있는지 확인되면 즉각 사살하겠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카다피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거처를 알리지 않은 채 유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럴수록 카다피는 대량살상무기 확보에 더 열을 올립니다. 

   설상가상으로 1991년 소련 붕괴로 카다피는 기댈 곳이 없어졌습니다. 

   카다피는 살기 위해 미국에 손을 내밉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하자 반미 노선과 범아랍주의를 포기하겠다고 밝힙니다. 결국 1999년 카다피는 핵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사찰을 받는 조건으로 미국과 비밀협상을 벌입니다. 

   그런데 이어 등장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카다피를 더욱 압박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당신이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아무런 협의 없이 파괴해버리겠다"고 위협합니다. 결국 카다피는 신속한 핵 폐기를 선택합니다. 미국과도 관계개선을 하기로 합니다.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카다피는 알카에다를 맹비난하며 미국을 지지했습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알카에다를 토벌할 때는 알카에다 잔당에 대한 수색에 협조하기도 합니다. 

   이런 와중에 화물선이 적발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카다피는 끝까지 미국을 믿지 못했던 겁니다. 겉으로는 미국과 관계개선을 도모하려 하면서도 뭔가 확실한 한방을 갖기 위해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주도하는 '핵 비밀 네트워크'와 비밀거래를 해서라도 핵무기를 가지려 했던 겁니다. 

   이 화물선 적발로 카다피는 더는 미국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2003년 12월19일 핵무기를 포함해 모든 WMD 포기 선언을 합니다. 2004년 1월 미군 수송기가 리비아에 도착해 핵 기술과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2만5000t 분량의 서류와 장비를 싣고 미국 테네시에 있는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가져갔습니다. 

   이를 계기로 리비아는 국제사회로 나오게 됩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에 선출됩니다. 

   카다피는 핵을 포기한 이후 서방세계로부터 엄청난 대가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지원과 외교 관계 개선이 늦어지자 카다피는 불만을 터트립니다. 

   2010년 말부터 아랍 세계를 강타한 민주화 열풍이 리비아에도 닥쳐옵니다. 리비아 국민들이 카다피의 독재에 항거했습니다. 민주화 시위는 초기에는 벵가지 일대에 한정됐지만, 순식간에 수도 트리폴리를 포함해 리비아 전역으로 퍼집니다. 

   카다피는 공군을 동원해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그러자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2011년 3월 리비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수시로 리비아를 공습해 반군 시위대를 지원했습니다. 

   리비아 반군이 트리폴리를 압박해 들어오자 카다피는 미국과 유럽에 공습을 중단해줄 것을 간청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리비아 공습을 계속합니다. 결국 카다피 정권은 붕괴합니다. 

   카다피는 2011년 10월 20일 고향 시르테에서 최후를 맞습니다. 42년 권좌의 끝은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카다피 최후의 장면은 전 세계에 생생히 중계됐습니다. 좁은 하수구 속에 숨어 있다 붙잡혔을 때 카다피는 피범벅이 된 채 '제발 쏘지 말아라'며 목숨을 구걸했습니다. 어디선가 서너 발의 총성이 울립니다. 

   카다피의 시신은 땅바닥에 끌려다니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오래된 정육점 냉동고에 '전시(?)'됐습니다.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지금 미국에선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곧 펴낼 회고록을 놓고 화제 만발입니다. 자신이 모셨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제가 주목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18일 트위터에 반박한 내용입니다. 

   트럼프는 2018년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등을 통해 북한과의 핵 협상에 큰 진전을 보고 있었는데 볼턴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리비아 모델'을 제시해 "일을 망쳤다"고 비난했습니다. 김정은이 "미사일처럼 분통을 터뜨렸고, 당연한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트럼프는 "볼턴의 멍청하기 짝이 없는 모든 주장이 북한과 우리를 형편없이 후퇴시켰고 지금까지도 그렇다"고 강조했습니다. 

   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진흙탕 싸움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카다피와 마찬가지로 젊은 나이에 권좌에 오른 김정은에게 '리비아 모델'이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요. 

   직설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리비아 모델이 북한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이미 핵무기를 손에 쥔 김정은 위원장은 리비아의 카다피와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요.

'무자비한 보복열기'…북한, 매체 통해 연일 불쾌감 표시   조선중앙TV  06.18

우리의 가장 신성한 최고존엄을 감히 모독해나선 쓰레기들과 그 망동질을 묵인 조장한 배신자들을 철저히 징벌하려는 우리 인민의 보복 열기가 날이 갈수록 활화산 마냥 분출하고 있습니다. "이때까지 우리가 얼마나 관대했습니까. 이번에 북남공동연락사무소 폭파한 거 막 속이 후련합니다."
남측이 놀아댄것만큼 갚아줄것이다    민주조선  06.19
우리가 북남사이의 통신련락선들을차단하고 련이어 개성공업지구에 꼴불견으로 서있던 북남공동련락사무소를 쓸어버리는 등 단호한 조치를 취하자 남조선당국이 북남관계파탄을 바라지않는듯이 요사를 떨고있다.

과연 남측이 이렇게 놀아댈 명분이있는가 하는것이다.

북남관계를 오늘처럼 최악의 국면에 처하게 만든 장본인은 다름아닌 남측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전 우리는 남조선당국과 수뇌회담을 가지고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나갈것을 남조선당국과 함께 온 겨레앞에 엄숙히 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북남공동련락사무소가 개설되는것과 같은 조치들이 련이어 취해졌다.그러나 그 이후의 사태발전은 새로운 희망으로 부풀어올랐던 겨레의가슴에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남조선당국은 민족우선,민족공조의 립장에선것이 아니라 외세의존정책에 집요하게 매달리면서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상전의 의사에 맞게 풀어나가는 꼭두각시놀음에만 집착하였다.

동족을 반대하는 합동군사연습의 빈번한 강행,무력증강책동,반공화국삐라살포행위의 묵인조장 등 남조선당국이 대화상대인 우리를 반대하여 저지른 반민족적배신행위들을 다 꼽자면끝이 없다.

나중에는 쓰레기들을 사촉하여 우리의 최고존엄까지 모독하는도저히 상상 못할 특대형범죄행위를 감행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계속)

※ 마이크 미사용 등 생략된 내용은 별표(***)로 표기하였습니다. 영상으로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Q. 두 가지 질문드리겠습니다. 먼저, 7일 당정치국회의 이후 김정은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요. 매우 중요한 지금 남북관계가 중요한 상황인데 김정은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왜 그렇다고 보고 계시는지, 당국이 분석하고 계신 게 궁금하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담화를 계속 내고 입장을 냈던 당국이 어제오늘 이틀째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신문 기사를 봐도 어제보다는 확연히 남북관계에 대한 어떤 비난이나 이런 수위가 좀 줄어든 것으로 보이는데 그게 제가 맞게 보고 있는 건지, 왜 북한이 침묵하고 있다고 보시는 건지, 또 노동신문이나 이런 데 기사가 줄어든 게 맞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A. 첫 번째 질문 주신 것 관련해서 김정은 위원장이 식별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해 드릴 사항 없고요. 두 번째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노동신문 1개 면을 할애해서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관련한 각계 반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말씀 주신 것처럼 어떤 기관명이나 어떤 담화가 나오고 있지 않는 그런 보도 행태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해 드릴 사항이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Q. 노동신문이 ‘대남 삐라 살포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보도를 연일 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가 관련 동향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는 바가 있는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대남전단살포가 얼마 만인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A. 첫 번째 질문 먼저, 섞어서 말씀을 드리면, 판문점선언 이후에 북측이 대남전단을 살포한 바 없는 것으로 경찰청에 따르면 그렇게 확인이 되고 있고요. 최근 동향과 관련해서는 어제 국방부 쪽에서 얘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 우리 국방부에 따르면 우리 군이 북한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면서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로 일단 말씀드리겠습니다.

Q. 연락사무소에서 상주했던 우리측 직원들 있잖아요. 그 연락사무소가 폭파되면서 조직개편이 이뤄질 예정인지…
A. 연락사무소 기능은 계속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점 등을 고려하면서 종합적으로 검토해 나가겠습니다.

*** 
 
Q. 연락사무소 폭파로 인해서 발생한 우리 측의 피해규모 정부당국 측에서 추산한 금액이나 어느 정도 피해다, 이렇게 얘기하실 수 있는 게 있습니까?
A. 현재로서는 피해손실액을 정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렵고요. 다만, 참고로 말씀드리면 연락사무소, 2018년 9월에 남북연락사무소 개소에 합의하고 그 당시에 지금 폭파된 청사 개보수에 들어간 비용은 33억 원 소요된 바 있습니다.  

***  

OPERATION IN(TER)CEPTION  슬로바키아 보안업체 이셋(ESET)
North Korea's Power Structure   미국외교협회(CFR)
New Tensions on the Korea Peninsula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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