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팩트체크: 국고보조금 편

'비례 정당'은 세금에 기생하는가

STEP1. "정당에서 나는 냄새가 있어."

2020년 2월 14일은 정당들이 1분기 국고 보조금을 받는 날이었습니다. 정당 별로 나눠 갖는 보조금은 총 110억 원. 당시 미래통합당의 비례 정당 ‘미래한국당’은 소속 의원이 딱 4명이 있었습니다. 예상된 보조금은 2천만 원이었습니다.

엄마 정당 미래통합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이적 작전'이 시작됩니다. 정운천 의원을 보내 현역 의원 5명을 채우자 미래한국당의 보조금은 5억 7천만 원으로 훌쩍 뛰었습니다. 4명일 때는 2천만 원에 불과했지만, 딱 1명 더 늘어나니 5억 원이 넘었죠. 이적료가 5억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뭔가 냄새가 납니다! 비례 정당의 의석 수는 국고 보조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다른 정당은 또 얼마나 받아갈까요. 총선 팩트체크 첫 순서, 돈 냄새 맡는 정당들의 셈법입니다.

STEP2. "정당아, 넌 계획이 다 있구나!"

정당들은 꼬박꼬박 국가에서 일종의 급여(?)를 받습니다. 분기별로 받는 이른바 '경상보조금'입니다. 올해 1/4분기는 그 총액이 110억 원이었습니다.

이건 약과입니다. 선거철 되면 돈 많이 쓸 테니, 여기에 보태라고 엄청난 보너스를 줍니다. '선거 보조금'인데, 경상 보조금 1년 치와 맞먹습니다. 이번 총선엔 440억 원이 오는 3월 30일 지급됩니다. 보조금을 둘러싼 진짜 전쟁은 이제 시작입니다.

보조금 계산법은 좀 복잡합니다. 총액의 절반은 의석 수 20석이 넘는 정당, 이른바 교섭단체에 균등히 나눠주고, 나머지는 의석 수, 지난 총선 득표율 등 이것저것 따져서 나눕니다. 복잡해서 여기서 다 설명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치자금법 27조 <보조금의 배분>을 참고하시죠. 다만, 의석 수 5석 미만일 때, 5석~19석일 때, 20석 이상일 때, 수령액이 급격히 뛴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미래한국당이 5석이 되면서 보조금이 확 뛰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당별 선거 보조금 규모(3월 2일 기준) ⓒ 마부작침 탐정사무소

자, 그렇다면... 지금 선거 보조금을 나눠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의석 수는 국회법 제33조 제2항 및 제3항에 따른 보고 기준으로 2020년 3월 2일 현재 기준 추정치를 계산했습니다. 정계 개편에 따라 액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래한국당 보겠습니다. 지금처럼 미래한국당 의석이 5석으로 유지된다면, 23억 원 정도 받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그런데 앞서 경상 보조금 사례처럼, 미래통합당이 미래한국당으로 ‘이적’을 더 많이 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미래한국당 의석수별 선거보조금 ⓒ 마부작침 탐정사무소

미래통합당이 의원 이적 많이 시켜서 미래한국당을 교섭단체로 만든다면, 미래한국당이 받는 선거보조금은 61억 원이 넘는 군요. 지금보다 무려 40억 가까이 더 타가는 셈입니다. 원래의 세 배 규모입니다. 그만큼 교섭 단체의 혜택이 큰 겁니다.

그런데, 이적을 많이 시키면, 그만큼 미래통합당의 의석 수도 줄어들고, 보조금도 감소하지 않을까요? 미래통합당은 미래한국당의 엄마 정당입니다. 엄마 자식 관계니 '가구 소득' 관점에서는 두 정당 보조금을 합쳐서 계산하는 게 맞겠네요.

비례 정당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121석 짜리 미래통합당은 143.7억 원을 수령 받는 걸로 나왔습니다. 비례 정당 미래한국당이 지금처럼 5석으로 유지된다면 그 합은 156.7억 원, 15명 넘게 더 이적 시켜서 20석 교섭 단체로 만든다면 180.3억 원입니다.

미래한국당 의석수별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선거보조금 ⓒ 마부작침 탐정사무소

미래통합당 입장에서는 미래한국당을 교섭단체로 만들면, 비례정당을 만들지 않았을 때보다 37억 원, 지금의 5석일 때보다는 24억 원을 더 받을 수 있는 셈입니다! 왜 이렇게 확 늘어나느냐, 미래한국당 의석이 늘 때의 보조금 증가분이 미래통합당 의석이 줄어들 때의 보조금 감소분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비례정당 창당이 묘수든 꼼수든 여러 논란이 있지만, 선거 보조금 관점에서 본다면, 역시 "정당은 계획이 다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미래통합당이 보조금을 이중으로 수령 한다는 비판은 더 거세질 수밖에 없겠지만요.

STEP 3. "일종의 뭐랄까… 불신의 벨트?"

다른 당은 신경이 곤두섭니다. 혈세 낭비라는 비판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혈세인 보조금을 더 타낼 궁리만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위성 정당 키워 국민 혈세 훔친다." (더불어민주당 설 훈 최고위원)

하지만, 세금이 더 나가는 건 아닙니다. 보조금은 총액을 정해 정당들이 나눠 갖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미래한국당 의석 수가 늘어 더 받는 만큼, 다른 당이 깎입니다.

가령, 지금 상태에서 미래한국당이 교섭단체가 되면, 더불어민주당은 10억 원, 민주통합 의원모임은 18억 원 정도 깎이는 걸로 분석됐습니다. "혈세 축 낸다"가 아니라 "내 보조금 축 낸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민주당은 보조금의 총액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을 쏙 빼놨습니다. 민주당 비판도 사실은 아닌 셈입니다.

다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럴 겁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4년 내내 싸우더니, 내가 낸 세금 수백억 원을 나눠 갖는다고?"

돈 문제로 정치 혐오를 부추길 생각은 없습니다. 제목에 달린 '기생'이라는 표현이 과하다는 비판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수백억 원의 보조금을 불편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의 벨트' 때문은 아닐런지요.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역설적이게도, 정치 불신의 벨트를 끊어낼 수 있는 것도 오직 정치뿐일 겁니다. 2020 총선, 이번만큼은 정치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언론사에 복무하는 저도 총선 팩트체크로 기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2020 총선 팩트체크였습니다.

2020.3.2. SBS <사실은>

이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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