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_그림책 #부엉이와보름달 #올해의책꽂이

[주말에 뭐 읽지]  2020-12-18 #38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부엉이를 바라보는 나는 누구인가

제인 욜런 글, 존 쇤헤르 그림
박향주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이상하다, 이 책에 대해서 아직까지 안 썼다니. 이건 내 인생 그림책인데. 당신의 인생 그림책이 뭐냐는 그림책 심리학자의 질문에 어떤 사람은 한참을 머뭇거리고, 어떤 사람은 자꾸 바꾸고, 어떤 사람은 끝내 찾아내지 못할 때 나는 0.5초도 지체하지 않고 〈부엉이와 보름달〉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20여 년 전 이 책을 처음 만난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다.  

대체 뭘까. 내 뇌리에 가장 강력히 박힌 장면은 클로즈업된 부엉이 얼굴이다. 내 뇌리에서는 실제 그림보다 훨씬 큰 부엉이 얼굴이 실제 그림과 달리 정면을 향해 있고, 부엉이의 커다랗고 노란 눈은 내 눈과 정통으로 만나고 있다. “일 분/ 이 분/ 어쩌면 백 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부엉이와 우리는 서로 바라보았습니다”라는 글에는 우리가 서로 바라보는 순간이 영원처럼 남아 있다. 대체 뭘까. 눈 쌓인 겨울밤 아빠와 함께 부엉이 관찰에 나선 한 여자아이가 추위와 두려움과 실망감을 혼자 이겨내는 과정인 이 이야기가 왜 내 안에 이토록 깊이 박히게 된 걸까.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뇌과학 기반의 스토리텔링 이론가가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할 말을 대신 해주는 글귀에는 밑줄을 쳤노라는 시구도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부엉이를 보러 간 소녀가 그와 마주보게 되는 그 장면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하고 싶던 말을 대신 해주는 것이었다. 눈 덮인 겨울 숲 추위, 밤의 두려움, 혼자 이겨냄. 나는 이런 것들을 나의 배경으로 여기며 영원 같은 부엉이와의 눈 맞춤을 내 삶의 목표와 완성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눈(雪)과 눈(眼).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나를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았던 이야기도 그 눈과 눈의 이야기였다. 핀란드 작가 토펠리우스의 〈별의 눈동자〉. 늑대에게 쫓겨 달리던 마차에서 떨어진 갓난아기가 눈밭에 누워 있는데 그 눈 속으로 별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몰려든 늑대들은 그 빛에 눌려 아기를 해치지 못하고 돌아간다. 지나던 농부에게 입양돼 자란 아이는 열 겹 헝겊으로 눈을 싸매 지하실에 넣어두어도 바깥세상 모든 일, 인간의 모든 마음을 보아낸다. 겁에 질린 양모가 아이를 다시 겨울밤 숲속 늑대 무리 사이에 버리고 오는데, 아이는 늑대와 함께 떠났던가, 별빛 속으로 사라졌던가…. 확실치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눈 쌓인 겨울 숲, 늑대와 부엉이, 아이 눈으로 쏟아지는 별빛. 서로 연결고리가 없어 보여도 이 이미지들은 내게 강력한 하나의 세계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화려하고 풍요로운 도시보다 황량하고 쓸쓸한 자연에 늘 끌리는 편이다. 그 안에는 어떤 소망이 있어 보인다. 그것도 〈부엉이와 보름달〉에서는 대신 말해준다. “부엉이 구경을 가서는 말할 필요도, 따뜻할 필요도 없단다. 소망 말고는 어떤 것도 필요가 없단다.” ‘저렇게 눈부신 보름달 아래를, 침묵하는 날개에 실려, 날아가는 소망’을 아빠 품에 폭 안긴 아이는 생각한다. 언제 봐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김서정(동화작가, 평론가)

시사IN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풍요중독사회
김태형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사람에게는 생존보다 존중, 물질적 풍요보다 건전하고 화목한 관계가 중요하다.” 

대한민국 경제는 수십 년간 성장해왔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지표는 과거 선망하던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삼시 세끼를 챙겨 먹고, 최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도 사람들은 자문한다. “왜 이렇게 살기 힘들고 계속 불안한 거야?” 저자는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인용한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내일 아침거리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자신의 이웃보다 더 잘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다.” 문제는 ‘상대적 빈곤’, 즉 불평등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상대적 빈곤이 ‘존중 불안’을 유발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물질적 빈곤보다 낙오해서 존중받지 못하는 감각을 더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회 전반은 풍요로워졌으나 개인 간 불평등은 심화된 한국 사회를 저자는 ‘풍요-불화 사회’라고 명명했다.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지음, 북콤마 펴냄 

“그전에 ‘존엄하게 살기’ 부분에서 어떻게 삶을 개선할 수 있을지 살펴봐야 한다.”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질병을 앓던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나 늙은 부부가 서로를 돌보다 힘에 부쳐 동반 자살을 했다는 기사에 어김없이 달리는 댓글이 있다. ‘저렇게 되느니 그전에 그냥 깔끔하게 죽고 싶다’라거나 ‘한국도 안락사 도입이 시급하다’는 댓글이다.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깔끔’한 도피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걸까. 모든 과정은 생략한 채 ‘그냥’ 갑자기 스위치를 끄듯 죽음을 선택하면 되는 걸까.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기자 5명이 스위스 조력자살 지원단체 ‘디그니타스’를 취재하며 엮어낸 이 책은 안락사에 대한 좀 더 풍성한 논의를 담고 있다. 비록 옳고 그름의 정답은 알 수 없더라도, 그것은 (‘그냥’ ‘깔끔하게’)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다.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
윌리엄 보스트윅 지음, 박혜원 옮김, 
글항아리 펴냄  

“브루어는 역사의 벽에 붙어 있는 파리인 셈이고 맥주는 그들의 타임캡슐이다.” 

맥주 비평가인 저자는 술을 마시는 게 직업이다. 마냥 부러울 줄 알았는데 책을 열어보니 그 일도 만만치 않다. 드라이하다, 스위트하다는 설명보다 ‘유칼립투스 숲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는 것처럼 스모키하다’라고 평가해야 한단다. 다양한 맥주의 세계로 인도하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맥주는 인류 최초로 레시피가 필요한 음식이었다. 자연 발효되어 우연히 만들어진 와인과 달리 맥주를 양조하는 데는 창조자가 늘 있었다. 저자는 “맥주잔마다 문화, 정치, 관습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말한다. 어떤 맥주 취향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문화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북유럽의 샤먼부터 농부, 공장을 소유했던 기업가, 미국 이민자 1세대까지 맥주의 ‘창조자’였던 이들을 만나며그 기원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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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을 엮다
강호정 지음, 이음 펴냄  

“인간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종도 현재 지구상에는 인간 자신밖에 없다.”  

‘IT 생태계’ ‘기업 생태계’ 등 오늘날 ‘생태계’라는 용어는 여러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정작 과학 개념으로서 생태학은 창안된 지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플랑크톤부터 대형 어류까지, 호수 안에서 작동하는 ‘먹이망’을 연구한 게 시작이었다. 오늘날 생태학은 다양한 환경문제를 에너지 흐름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물질순환 과정을 규명한다. 산성비, 기후변화 등 환경 재해가 가시화되면서 생태학이란 말은 대중에게도 점차 익숙해졌다. 저자는 생태학의 기초부터 최신 의제까지, 쉽고 낯익은 사례를 동원해 소개한다. 인간의 멸종을 예견할 수 있을지, ‘녹조 라떼’의 원인이 무엇인지 등, 일상에서 나올 법한 물음에 대한 생태학적 답을 제공해준다. 책장을 넘길수록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 줄타기가 돋보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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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가 되면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으시죠? 
시사IN이 선정한 올해의 책들로 꾸며진 <행복한 책꽂이>가 나왔습니다. 
팬데믹으로 얼어붙었던 올해, 어떤 책이 독자들의 지친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행복한 책꽂이>는 <시사IN> 송년호의 부록이기도 합니다. <시사IN> 송년호는 최고의 사진작가와 필진이 협업해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죠. 올해도 정세랑(소설가), 김세희(소설가), 이길보라(감독) 등의 글과 함께 2020년을 정리하는 귀한 사진을 만나보실 수 있는데요. 송년회도 없는 연말,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삶의 허기를 채워줄 두 권을 지금 만나볼까요?

"내가 인디언이라면 12월을 '머뭇거리며, 돌아가는 달'이라고 부를텐데" 
<소란>(박연준 지음, 난다 펴냄)


한 해를 마무리할 때 어떻게 하나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돌아보기, 성찰, 뭐 그런 것들과 워낙 거리가 먼 체질인지라아무 생각 없이 연말연시를 나곤 했지만 올해는 왠지 그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돌아온 답은 정말 다양하더군요. 어떤 분은 나만의 10대 뉴스를 꼽아 본다 했고요. 어떤 분은 친구들과 함께 모여 나에게 쓰는 편지를 각자 작성한 다음 그 내용을 나누는 것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한다더군요.
 
그 얘길 듣고 저도 나만의 캘린더를 만드는 소그룹 워크숍에 참여해 보았습니다. 각자 월별로 기분지수를 산출한 다음(100점 만점으로 기분을 측정하면 됩니다), 열두 달의 기분지수를 이어 그래프를 그리면서 한 해를 돌아보는 워크숍이었는데요. 막상 기억을 더듬어 기분지수를 매기다 보니 애초 예상과는 전혀 다른 그래프가 그려지더군요. 팬데믹 상황이 닥쳐 혼돈 상태에 빠져 있던 연초의 기분지수가 오히려 꽤 높게 나오는 식으로요. 돌이켜보니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바짝 긴장해 있던 당시를 저의 무의식은 살아 있다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뉴스레터에서 어떤 책을 추천해 드릴까 고민이 많았는데요. 몸도 마음도 황폐해진 연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섣부른 위로보다 차가운 눈밭에 홀로 서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에 김서정 작가가 '내 인생의 그림책'으로 꼽은 <부엉이와 보름달>을 선택해 보았습니다박연준 시인 또한 산문집 <소란>에서 "한 해를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리와 인사, 송년회가 아니다. 조용히 웅크린 채 한 해와 같이 기울어지면 된다"라고 얘기했죠.  

나를 돌아보는 고독한 시간, 맑은 별빛과 한 권의 책이 님을 곁에서 고요히 지켜주기를. 올 한 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말에 뭐 읽지]는 연말연시를 맞아 잠시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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