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나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 아빠들도 뉴스레터를 한 주 쉬며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번 레터는 17개월 송이 아빠 현 님이 썼어요. 얼마 전 송이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속초로 여행 다녀왔다고 하는데요.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합니다. 함께 확인해보세요. 

가족끼리 늦은 여름휴가를 떠났다. 송이와 함께 하는 두 번째 여행이다. 이번에는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동행했다. 장소는 강원도 속초시, 숙소는 설악산국립공원 끝자락에 있는 어느 오래된 호텔이었다. 처서가 지나면서 바람도 제법 선선해진 터라 한여름보다 여행하기가 좋았다. 물론 모든 건 송이의 컨디션에 달려있지만.

첫날은 시장 근처 생선구이 집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로 체크인을 했다. 어른도 서너 시간 동안 차를 타면 피곤한데 17개월 아이도 마찬가지 아닐까. 짧게 낮잠을 재운 뒤, 일몰 전 숙소를 나왔다. 시내에서 젤라또를 포장해 속초해수욕장에 돗자리를 깔고 온 식구가 함께 맛보며 석양을 감상했다. 유독 하늘빛이 맑고 선명했다. 마지막으로 막국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오니 어느덧 밤 8시. 송이는 보통 9시쯤 잠드는데, 본인도 피곤했는지 숙소에 오자마자 잠들었다.

일정을 굳이 자세히 적은 데는 이유가 있다. 그날 밤 우리는 편히 잠들지 못했다. 아이가 평소보다 일찍 잠들어서였을까? 밤 10시쯤 송이가 깼다. 한두 번 등을 쓰다듬어주거나, 쪽쪽이(공갈 젖꼭지)를 물리면 금세 잠드는데 이날은 달랐다. 잠자리가 바뀐 탓도 있을 것이다. 아이는 유독 다시 잠들기 힘들어했다.

몸은 피곤한데 쉽게 잠이 오지 않으니 송이는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런, 송이의 애착 인형*이 어디 갔지?

* 포근한 촉감으로 분리 불안을 겪는 아기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수면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는 봉제 인형.

숙소 곳곳을 뒤져도 사슴 모양의 봉제 인형(이하 친구)은 보이지 않았다. 식당이나 해수욕장에 두고 왔나? 비몽사몽 중 기억을 더듬어 보니 속초해수욕장 주차장에서 흘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서 아이를 안고 내렸을 때 아이 손에 친구가 있었나? 분명 해수욕장에서 송이는 장모님과 아내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었다. 그럼 그때 친구를 가방에 넣으려다 다른 데로 떨어졌나? 머릿속으로 여러 장면을 조합해 추리해도 친구가 우리 곁에 있었던 마지막 순간은 또렷이 기억나지 않았다. 송이는 계속 울면서 친구를 찾았다.

새벽 늦게야 우리는 잠들 수 있었다.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장모님에게 전화가 왔다. “사위, 일어났어? 조식 먹으러 내려와.” “네, 어머님. 얼른 갈게요.” 반쯤 감긴 눈으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아내가 말했다. “휴대폰 사진첩을 보자.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언제 찍혔는지 추적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식당에도 전화 걸어볼게.” 휴대폰을 살펴보니 친구의 마지막 장소는 숙소였다. 침대 위에서 송이가 친구를 안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그래, 해수욕장에서 흘렸나 봐! 그 후로 친구가 사진에서 사라졌어” “이따 가보자. 혹시 모르니 그 인형도 다시 주문하자.” 나는 빠르게 구매 후 결제 버튼을 눌렀다.

아침을 먹고 숙소 앞을 산책했다. 설악산 자락에 형성된 500년 전통의 유서 깊은 마을로, 집집마다 돌담이 있는데, 대문이 없이 열린 구조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송이는 잠시 친구를 잊은 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골목 구석구석을 누볐다.

숙소로 돌아와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는데, 맞은편 선반 위로 하얀 물체가 보였다. 친구다! 네가 어쩌다 선반 위에 있지? 속초해수욕장으로 떠나기 전, 나도 인지 못한 채로 송이 손에 있던 친구를 잠시 선반 위로 숨겼나 보다. 혹여나 밖에서 잃어버리면 큰일 나니까. 하룻밤 만의 해프닝으로 끝나 이 얼마나 다행인가.

“송이야, 친구다!” 아이는 활짝 웃으며 바로 친구를 안고 얼굴에 비벼댔다. 이후 여정은 순조로웠다. 두 번째 밤은 송이도, 아내와 나도 푹 잘 수 있었다. 양육자가 아이의 모든 욕구를 채우진 못하는 것 같다. 이렇게 봉제 인형을 애타게 갈구하고, 손에 꼭 쥐는 걸 보면 말이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애착 인형, 아니 모든 인형의 쓸모를 다시 보게 됐다. 가까운 사람 중 유독 인형을 아끼는 두 사람, 은경과 수아가 떠올랐다. 은경은 집에 인형 전용 수납장이 따로 있을 만큼 인형을 아낀다. 여행을 떠날 때도 인형이 동행하는 건 물론. 그에게 인형과 친해지게 된 계기를 물었다. “어릴 적에는 정작 인형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10살 때 친척 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낡은 너구리 봉제 인형을 만났죠. 가족이나 친구에게 할 수 없는 말들, 분명 혼잣말인데 소리 내서 말하고 싶을 때 그 인형과 대화하기 시작했어요.” 그의 답이다.

은경의 친구들 (사진제공: 김은경)

그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다닐 때, 어학연수, 첫 해외여행 때 모두 그 인형이 빈자리를 채워주었다고 했다. “인형은 어떤 감정이든 교감할 수 있는 대상이자 저를 위로해주는 존재예요. 사회초년생 때는 회사 생활이 힘들 때 인형을 사무실 책상에 앉혀놓고 버텼고, 인간관계에 실망할 때에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인형을 보며 힘을 냈어요. 얼마 전 누군가 ‘애착 인형, 너무 귀여워요!’라고 인스타 디엠을 보냈더군요. 애착 인형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사람에게는 결국 애착을 가질 만한 존재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는 중이에요. 사랑과 애착은 조금 다르잖아요.”

수아는 자신의 어릴 적 애착 인형을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의 집들이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는 내게 회색빛 인형을 보여줬다. “이게 설마 그 애착 인형인가요? 엄청 납작해졌네요. 눈도 한쪽이 떨어져 있고요.” “원래 뭐였는지 아세요?” 언뜻 원래 형태를 유추하기 어려웠다. 고개를 젓자 그가 말했다. “헬로키티! 엄마한테 절대 버리지 말라고 했다가, 본가에서 직접 가지고 왔답니다.” 수아는 웃으며 자신의 애착 인형을 다시 침실에 뒀다.

진짜 같은 동물 인형으로 유명한 한사토이(Hansa Toy)의 창업자 한스 J. 액슬렘은 매거진 《B》와의 인터뷰에서 ‘한사가 마지막까지 유지하고 싶은 가치’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람들이 우리 인형을 통해 안락함, 평화, 행복을 느끼도록 하고 싶어요. 우울한 날 책상 위에 올려둔 비둘기 인형이 ‘다 잘될 거야’ 하고 말해주겠죠. 아이들이 친구와 싸워서 사이가 멀어졌을 때, 엄마나 아빠는 이해해주지 못하더라도 이 말 없는 친구들만큼은 이해해줄 거예요. 이런 감성을 제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어요. 평생 함께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나는 왜 그동안 이렇게 어마어마한 역할을 해주는 인형의 가치를 몰랐을까. 언젠가 송이가 소홀히 하는 인형이 있다면, 그 인형을 내 친구로 삼아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며칠 뒤 우리집에는 (같은 공장에서 만든) 새로운 친구가 도착했다. 일부러 송이 앞에서 박스 포장을 뜯었다. 송이의 반응이 궁금했다. 하지만 아이는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저으며 새 친구를 던졌다. 그리곤 원래 친구를 꼬옥 잡았다.

그래, 지난 17개월 동안 친구와 쌓은 우정이 어떻게 변하니. 다음엔 꼭 송이 곁에 오래 있도록 지켜줄게. 그리고 혹시, 정말 만약에 친구가 떠날 수도 있으니 새 인형은 집 어딘가에 잘 보관해두고 있을게.

Fathers'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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