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tter from London
A Letter from London
Letter#3
2020.4.27

https://tom.weiyi.li에서 다운받은 사진
재택근무임에도 불구하고 일이 끝나면 왜 어깨가 뻐근하고 머리가 지끈거리게 피곤해서 쓰러져 자는 걸까 생각해봅니다. 이번 주는 이어지는 감정 노동과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고 치우고 하다 보니 쉬는 날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편지는 뒷전이 되었습니다. 

플랫 메이트는 건강을 위해 매일 뛰는 사람입니다. 뛰고 돌아오면 나는 밖에 사람이 많은지 물어봅니다. 조깅도 많이 하고 공원에도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나만 집에 있나 봅니다. 괜히 심술이 났는지 하루는 이런 걸 아침 일기에 썼습니다. 조금 다듬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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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보았다. 하루에 구천만 개의 사진이 공유되는 곳에서 사진을 보았다니 무슨 말인가 싶겠다. 인스타그램에서 나는 고양이를 보고, 광고를 보고,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고, 뉴스를 보고 그 사이사이 남의 껍데기를 보고, 그 껍데기에 비친 내 껍데기를 보고, 그걸 보고 초라함을 느끼는 모자란 나를 보지만 그냥 사진을 본 것은 오랜만이다. 초록 들판 위를 뛰어가는 사람의 형체는 알아볼 수 없고 속도만 보이는 힘찬 사진.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화면을 밀어내다 0.7초 정도 본 사진인데 다시 보고 싶었을 때는 이미 엄지가 무중력의 가상공간으로 밀어낸 뒤였다. 라이크를 누르지도 않은 사진을 염치없게 다시 보고 싶었던 이유는 그 사진을 본 0.7초 동안 든 생각에 스스로 놀랐기 때문이다. 

뛰고 싶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뛰는 행위에는 ‘뛰고 싶다’와 ‘아씨 뛰어야지’ 이렇게 두 가지 태도가 있다. 다른 점은 목적의 유무이다. ‘아씨 뛰어야지’는 한 번 문을 열면 절대 다시 열리지 않을 버스 문을 향해 돌진하거나 무단횡단을 할 때 과속하는 차를 피하려는 등,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달리기를 대하는 태도이다. 반면 ‘뛰고 싶다’는 먹고 싶다, 자고 싶다, 쉬고 싶다 처럼 달리리는 행위에서 얻는 순수한 행복과 만족감을 갈망한다. 한 번도 ‘뛰고 싶다’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방방 뛰면서 노는 아이들도 아이처럼 뛰어다니는 어른들도 숨이 차서 목구멍이 아프고 발바닥이 얼얼하게 뛰는 이유가 뭘까. 요즘은 ‘아씨 뛰어야지’ 싶은 상황에서도 뛰어서 잡을 바에는 걸어서 놓쳐야지 하는 기운 빠진 나다. 

이런 내가 왜 사진 한 장 때문에 갑자기 이유도 없이 달리고 싶었을까. 한참 동안 상상했다. 해가 적당히 따뜻하고 바람도 솔솔 부는 공원에서 무작정 뛰어본다. 멀리 있는 나무까지 가다가 마음대로 방향을 바꿔 지그재그로 달린다.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이 타다 숨이 막혀 풀밭에 쓰러질 때까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마르면 기분 좋게 잠이 쏟아지겠지.  
해외에서 최신 국내 문학을 많이 없는 것이 아쉬웠는데 주간 문학동네 온라인 연재의 스펙타클한 라인업을 보고 자리에서 모두 읽어버렸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웹사이트 디자인이 똑똑합니다. 심플하지만 가독성을 위해 정교하게 계산했을 글자체, 간격, 레이아웃입니다. 읽는 내내 온라인에서 글을 읽을 때의 산만함과 가벼움이 없는 종이책과 가장 흡사한 읽기 경험이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 동안 매일 짧은 구절과 인터액티브 그래픽이 업로드됩니다. 가끔 아트에서도 인간미가 느껴지는 작품이 있는데 Evasive.tech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진 것을 보니 데이터화도 막을 없는 감성을 가진 작가인가 봅니다

아무거나 선택하고 OK 버튼을 누르면 선택에 맞는 페이스 필터를 씌어줍니다

SQUARE GARDEN: 100 GECS LIVESET
Post Malone x Nirvana Tribute - Livestream
James Blake - Instagram Live (April 6, 2020)
편지를 못 쓰는 동안 자선 공연이 많았습니다. 하나만 고를 수 없어 모두 공유합니다. 일할 때는 100 Gecs를 틀어 업무의 속도를 높이고 Post Malone의 너바나 마라톤은 청소할 때 들으니 힘이 납니다. James Blake는 자기 전에 하루를 마무리 하며 좋은 꿈을 꾸려고 듣습니다.  

전시 소식입니다!
2018년 졸업 작품으로 만든 작업이 짧은 글과 함께 South Kiosk의 웹사이트에서 일주일간 전시됩니다. 이 편지를 받는 많은 지인들이 이미 본 작품이지만 텍스트를 읽거나 그냥 구경하러 가주세요. 영국 시간 4월 27일 월요일부터 5월 3일 일요일까지 - https://southkiosk.com/Current

+++++++++추억의 명곡 네 번째+++++++++
4월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의 여자 주인공이 이사를 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대학교 신입생이 된 그녀가 고향을 떠나 처음 혼자 살게 되는 작은 방. 
꽃잎이 눈처럼 내리는 날의 첫 이사. 
큰 가구와 많은 이삿짐들이 방에 들어 올 자리조차 없어 어쩔 수 없이 버리지만, 
조그만 의자는 왠지 쓸데가 있을 것 같다며 챙겨두는 그 장면을 참 좋아합니다. 
오늘은 그 영화와 같은 제목의 노래를 선곡했습니다. 


From DJ나경.. 
A Letter from London Archive 에서 지난 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박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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