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어릴 적,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아니오’라고 당당히 말한 적이 있나요? 때로는 아이 시선을 통해 우리가 당연히 여기던 권위를 다시 인지하기도 하죠. 이번 레터는 아들 셋 아빠 정우 님이 보냅니다.

그리고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 구독자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자 설문조사를 준비했어요. 아래 공지 참고해주세요!

님! 썬데이 파더스 클럽 구독자 분들이 모일만한 곳을 알려주세요!

24번의 메일을 보내면서 90건이 넘는 독자분들의 사연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짧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공감의 마음만큼이나 긴 메시지를 받기도 해요.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요. 그래서 썬데이 파더스 클럽을 읽고 함께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육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님의 의견을 기다릴게요!

설문 기간: 7월 24일(일)~31일(일) 23:59까지

설문에 참여해주신 분 증 추첨을 통해 3분께 (썬데이 파더스 클럽 로고와 일러스트를 만들어주신) 양수현 대표의 '레디투킥(READY TO KICK)' 유아용 꽃수모를 선물로 드려요. 

당첨자는 설문종료 후 3일 뒤 개별 공지 예정!

학습지 선생님이 바뀌었다. 이전 선생님이 주로 “우와아아”, “꺄아아아”, “우쭈쭈”를 말했다면, 새로 오신 분은 “예”, “아니오”, “연필 드세요” 류의 선생님이었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기도 해서 (자의는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은 변화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모서리가 날카롭게 각진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아이들은 당황했다. 그럴 만도 했다. 가벼웠던 수업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으니까. 눈치가 빠른 첫째는 금세 변화를 감지하고 바른 자세로 고쳐 앉았다. 이제 갓 훈련소에 들어간 신병처럼 자꾸 곁눈질로 엄마 아빠를 찾는다.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바라는 눈으로. 뒤이어 수업을 시작한, 감정 표현이 풍부한 둘째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기세다.

아이들만 당황한 건 아니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가 오늘이 그날이구나 싶었다. 아이의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는 선생님이 야속하면서도 아이들의 자세를 바로 앉힌 선생님을 내심 응원했다.

마지막 막내 차례. 성큼성큼 걸어가서 선생님 맞은편에 앉는다. 몇 마디 대화가 오가고 막내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선생님의 안경알에서 차가운 형광등 빛이 반사되려는 순간. 막내는 손바닥을 활짝 펴서 학습지를 휙 덮는다. 그러고는 퉁명스럽게 소리를 내질렀다.

“나, 이 수업 안 해!”

막내는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실 한 구석에서 마음을 잔뜩 졸이며 이 장면을 바라보던 아내와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부랴부랴 막내를 방에서 데리고 나와 다시 선생님 맞은편에 앉혔다. 남은 수업 내내 막내는 팔짱을 끼고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었지만 선생님의 태도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평소 같았으면 아이를 따끔하게 혼냈겠지만 아내와 나는 우리가 이 버릇없는 아이를 참 잘 키웠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께는 조금 죄송합니다만.

나는 스스로를 갈등회피형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배우고 자랐다. 분위기가 불편해지면 자리에서 일어났고 불편한 사람은 피해 다녔다.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로 아내와 다툼이 끊이지 않을 때였다. 갈등회피형 인간이 갈등의 한가운데 있는 나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도 깊은 한숨을 연달아 푹푹 쉬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 부랑자 같은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소리를 지르면서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빌었다. 

‘제발, 제발.’

제발 나한테 한 마디만 해라.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 아 그 정도는 아니었구나. 어쨌든 평소 같았으면 멀찍이 거리를 두거나, 되돌아가거나, 나한테만은 제발 말 걸지 말기를 속으로 빌었겠지만 그날의 나는 아무것도 피할 생각이 없었다.

그와는 아무 일 없이 서로를 지나쳤다. 하지만 이게 뭐라고 한 단계 성장한 자신을 새로 발견한 느낌이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기분을 배려하느라 내 기분을 꾹꾹 눌러 담지 않게 되었다.

“(저에게 주는 월급치고는) 제게 무리한 업무입니다.”

“(따로 계획이 있어서) 이번 명절에는 못 갈 것 같습니다.”

“일이 아직 남아서 늦을 것 같네. 아이들이랑 저녁 먼저 먹어.”

이런 표현들을 비교적 편하게 할 수 있게 됐다. 의외로 이런 말을 나에게 처음 듣는 사람들도 크게 놀라거나 서운해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게 가능할까? 가장 가까운 아내와도 종종 틀어지고 일방적일 것만 같은 부모 관계조차 늘 무조건적이진 않다. 부모님은 다 큰 자식에게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기도 하고, 우리도 아이들에게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외할머니는 다르다. 이런 식이다.

수염이 덥수룩하면,

“아이고, 얼마나 고되면 수염을 못 깎아.”

수염을 밀면,

“아이고, 얼마나 고되면 수염을 깎았어.”

살이 쪄도,

“아이고, 얼마나 고되면 이렇게 야위었어.”

셋째가 생겼을 때도,

“아이고, 잘 됐다. 정말 잘했어.”

종종 아이들을 데리고 외할머니댁에 간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안타까워하지만 이렇게 진심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안타까워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외할머니는 단 한 번도 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신 적이 없다. 그래서 늘 머쓱하게 뒷머리만 긁적인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 외할머니의 말이 머리에 맴돈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무엇을 하든 무조건 내 편인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가.

가끔 아내와 함께 그때를 회상한다. 학습지를 덮고 방으로 들어가던 막내 얼굴에서는 엄마 아빠한테 혼날지언정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리 없다는 신뢰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아내는 그게 자존감이라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서 그게 당연하게 느껴지게. 

누구나 “나, 이 수업 안 해!” 소리치고 방에 휙 들어가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나도. 우리 외할머니 같은 사람이 딱 한 명만 있으면 된다.

Fathers’ Update

지난 레터(24화 라면을 ‘같이’ 끓이며)에 독자가 보낸 답장을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 지난 주에 소개된 너굴양 님 사연,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6개월이면 제주 한 달 살이가 (다소 스펙터클하지만) 가능하군요…? 이번 겨울에 도전해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았거든요. 덕분에 용기를 얻어갑니다. 의외의 결론😂 (80일 지난 아기 엄마 망개)

💬 부모는 아이에게 수많은 ‘처음’을 알려주고 함께 겪는 존재인 것 같아요.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저희 아이들이 스스로 신발을 벗거나 쓰레기통에 기저귀만 버려도 물개 박수를 치곤 하는데, 아이가 스스로 라면을 끓였다니! 저는 먹다가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하나의 존재에게 처음을 알려주고 그 시작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쁨은 부모가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 아닐까요. 저는 앞으로 행복할 날이 많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네요. (승승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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