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앙에 대한 다양한 시선 👀 과신뷰
이 달의 주제 : 기후위기

기후 위기 시대 살기

과학과 신앙에 대한 다양한 시선  과신뷰 vol.74

편집팀장 : 김양현 │편집위원  : 박아론 이슬기 

목차
  • 과신Tube 「과학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의 선택」 (구형규)
  • 주제 칼럼1 "과학자가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법" (이유경)
  • 주제 칼럼2 "예수의 에너지 오이코노미아 : 교회와 지역에너지 전환" (김재상)
  • 영화 리뷰 "오펜하이머Oppenheimer" (김양현)
  • 사무국 소식 (박아론, 이슬기)
  • 이달책 《기후 위기 시대의 도전과 교회의 응답》 (박아론)
과신Tube📺
과신인터뷰 『과학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의 선택』
[주제 칼럼🖋]

과학자가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법

글 | 이유경
극지연구소에서 북극 식물을 잘 키우고 보전하고 활용하는 길을 연구하는 과학자
관악아름다운교회 평신도로 교회 중고등학생을 어떻게 섬기는 게 좋을까 궁리 중

진짜 기후 위기인가?


 8월 하순, 북극 현장 연구를 마치고 돌아와 오랜만에 부모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인사로 가장 무난한 건 날씨와 건강 이야기죠.


“올해 무척 더우셨죠? 에어컨 좀 틀고 지내지 그러셨어요.”


 평소에 매우 과묵해서 어머니께 “목석같은 사내”라 불리시는 친정아버님이 힘든 여름을 보내셨나 봅니다.


“팔십 평생에 올해같이 더운 건 처음이다. 내 친구들도 이번처럼 더웠던 적은 없었다더라.”


 기상청은 올여름 우리나라 평균기온이 관측사상 네 번째로 높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5월부터 무더위가 몰려오고 늦더위가 9월까지 계속되어서 실제 체감하기에는 올해가 가장 더운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올해 우리나라는 6, 7, 8월 모두 기온이 평년보다 높았습니다. 


 장마철에는 엄청난 비가 쏟아졌고 심지어 태풍이 한반도를 종단하며 올라가기도 했죠. 태풍은 보통 부메랑처럼 휘어서 동쪽이나 서쪽으로 진행하는데 태풍 ‘카눈’은 난데없이 북쪽으로 직행했습니다. 이런 태풍은 제 평생에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태풍이 가기로 했던 중국 쪽에서 누가 간절하게 기도해서 방향을 바꿨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정신 차리라고 태풍으로 경고하시는 건가? 무심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과학적이죠?


 2023년은 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는 기사가 유독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가장 더운 7월을 기록했고 대기온도를 측정한 1890년 이래로 지구는 가장 더운 6월과 7월을 보냈습니다. 세계 평균 기온은 관측 역사상 처음으로 17도를 넘어섰고 며칠 만에 최고치를 계속 갈아치웠습니다. 평소 지구의 모든 지역의 대기 온도를 평균하면 15도 정도 되는데 올여름은 이 숫자를 훨씬 뛰어넘은 것입니다.


 극지에서는 뜨거운 에너지가 얼음을 녹였습니다. 남극과 북극의 바다를 덮는 해빙은 7월에 가장 작은 면적을 기록했습니다. 8월 남극 해빙 면적은 평균보다 12% 줄어 지금까지 인공위성으로 관측한 데이터 중에서 가장 작았습니다. 그리스와 캐나다엔 산불이 꺼지지 않고 지속되었고, 알래스카에서는 사람들이 전례 없는 폭염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이상 고온은 작년에 대기 중으로 내뿜은 온실기체 때문일까요? 2022년 주요 온실기체 농도는 모두 최고치를 갈아치웠습니다.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4), 아산화질소(N₂O), 육불화황(SF6) 모두 역대 최고 농도에 도달했으니까요. 물론 올해 우리가 경험한 뜨거운 여름을 온실기체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올해부터 태평양의 바닷물이 따뜻해지는 엘니뇨 현상이 시작되어 엄청난 에너지를 바다에서 대기로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죠. 엘니뇨 때문인가요, 날씨를 관측하고 연구하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데이터를 모으고 토론하는 세계기상기구(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에서 올해부터 앞으로 5년 동안 전 지구 평균 온도가 최고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앞으로 세계 여기저기서 기후 재난 소식을 듣게 될 거라는 뜻이겠죠. 


 지금까지 올해 여름철 날씨 이야기였습니다. 하루하루 날씨가 모여 연평균 값이 나오고 해마다 모인 기상 데이터가 30년 이상 모이면 기후가 됩니다. 기후는 확실히 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급하게 평균값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더 과격하게 더 자주 더 심하게 이상한 날씨가 우리 일상을 채울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의 세금은 더 많은 재난을 복구하는데 들어가겠죠. 우리나라의 환경부가 2023년 3월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2012년부터 지난 10년 동안 기후변화 관련 자연재해 손실액이 무려 3조 7천억 원이나 한답니다. 복구비용은 이보다 2~3배 더 크다고 하고요. 이젠 농사를 지으려면 농작물재해보험부터 들어야 한답니다. 기후 위기는 앞으로 올 미래가 아니라 이미 우리의 현실입니다.

세계기상기구(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건물 사진 (출처 : Geospatial World) 

과학자가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법


 과학자들은 극지에서 30년 이상 같은 연구를 반복하며 기상 관측 데이터를 모으고 있습니다. 같은 관측을 꾸준히 반복하는 것을 모니터링이라고 하죠. 우리나라는 모니터링을 하기 힘든 연구 환경을 갖고 있어요. 약 5년 정도 모니터링을 하고 나면 정부에서 “이제 그만큼 하면 됐으니 다른 연구하세요.”라고 하거든요. 새로운 연구, 선도적인 연구, 도전적인 연구를 강조하다 보니 외국에서도 하고 있고 지금껏 해왔던 모니터링은 연구비 중단 1순위입니다. 그런데 기후는 30년 이상 날씨 데이터를 모아야 그 경향을 알 수 있어요. 5년짜리 데이터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30년짜리 데이터를 모으기 어려운 연구 환경에서 극지처럼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모니터링하는 건 정말 어렵죠. 그래서 서른 살 된 세종과학 기지에 30년짜리 데이터가 드물고, 스무 살을 넘긴 다산과학기지에는 20년짜리 데이터가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다산과학기지가 있는 스발바르 니알슨 과학기지촌에는 열 개의 나라가 과학기지를 운영하고 있어요. 이곳을 맡아서 운영하는 노르웨이는 일 년 내내 연구자들이 기지에 머물며 다양한 데이터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와 함께 과학기지에 일 년 내내 연구자를 보내는 나라가 있는데 바로 독일입니다. 독일은 30년 넘은 데이터를 갖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라디오존데 실험입니다. 커다란 풍선에 라디오존데를 달아 날아 올리면 풍선이 하늘로 30 km까지 올라가며  고도별로 기온,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측정해 데이터를 보내줍니다. 이것을 매일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오존 농도도 측정하죠. 이렇게 30년 넘게 매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꾸준히 데이터를 모아, 다른 지역에서 기온을 측정한 것과 합쳐서 이런 결과를 얻었습니다. 1971년 이후 스발바르에서 지난 50년 동안 연평균 기온이 4도, 특히 겨울철 평균 기온은 무려 7.3도나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 사이 전 지구 평균 온도는 0.87도가 올랐습니다. 사실 50년에 0.87도도 엄청 많이 오른 건데 스발바르는 이보다 다섯 배나 빨리 더워지고 있는 거죠.

(출처 : 대한민국 외교부)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지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빠르게 가열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동안 제게 무기력을 안겨주었습니다. 나 한사람이 노력한다고 뭐가 바뀌겠나 싶고 이산화탄소를 내뿜어내도록 견고하게 짜여 진 산업구조가 너무 단단해 보이기만 했기 때문이죠. 지구가 안정을 찾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 같고, 거대한 세상 앞에서 나 한 사람은 너무 무력해 보여서 약간 우울했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가진 권리인 유권자의 한 표를 기후 위기에 관심을 갖고 움직이려는 사람에게 줄 수 있고, 소비자로서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하는 물건을 살 수 있고, 가장 이산화탄소를 많이 발생시키는 제품 중 하나인 전기를 아낄 수 있고, 그 전기를 써서 만드는 물건을 덜 살 수 있고, 한 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북극해 얼음이 한 평씩 줄어든다고 하니 해외 출장을 한 번이라도 줄일 수 있고 (개인적인 해외여행은 안 함), 데이터를 유지하느라 전기를 많이 쓴다고 하니 저장하는 이메일을 가능한 줄이고 지운 편지함은 자주 비우며 SNS는 최소한으로 줄 수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 보기로 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기온 상승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노력이고, 이렇게 노력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이면 뭔가 바뀌지 않겠나 하면서 말이죠. 엄마이자 과학자이자 지구를 지키는 지구인으로,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섬기는 청지기로, 기후 위기 시대에 저는 이렇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주제 칼럼🖋]

예수의 에너지 오이코노미아 : 교회와 지역에너지 전환

글 | 김재상
과학기술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과학기술과 기독교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 공공신학 연구소 연구원이자 과신대 목회자 모임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글을 열며


 최근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교회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새롭게 그려지고 있는 한국 교회의 기후 위기 지형도는 당위성 수준에 머물고 있다. 관련 논의 대부분은 기후 위기에 대한 신학적 해석과 위기 극복을 위한 교회 참여 독려에 그치고 있다.1) 


 물론 이러한 작업은 여전히 필요하다. 아직 기후 위기에 둔감한 교회들이 제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몇 교단 총회 차원에서 기후 위기 관련 위원회가 구성되었다는 소식은 무척 고무적이다. 지난 2022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11도 높아졌다. 파리기후협정의 상승 제한 목표인 1.5도와 불과 0.39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이제 교회 참여에 대한 격려와 함께 실천 방안에 대해서도 모색해야 한다.2) 


 이 글에서는 실천 방안 중 하나로 교회의 지역에너지 전환 참여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가재울녹색교회가 펼쳤던 지역에너지 전환 운동을 살피면서, 지역에너지 전환에 교회가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그 참여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 보자.


1) 교계 진보 진영에서는 오랫동안 한국교회환경연구소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를 중심으로, 보수 진영에서는 최근 한국교회생명신학포럼을 중심으로 기후 위기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2) 일상에서 교회가 실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여러 제안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이진형 목사가 쓴 『그린 엑소더스』(삼원사, 2020)가 있다. 또한 기독교환경교육센터살림이 제안한 방안들도 훌륭하다.

지역에너지, 에너지 자립마을 그리고 교회


 기후 위기 극복 방안으로 에너지 전환이 제안되었다.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를 가속하여 기후 위기를 유발하고 있다.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 중 약 75%를 차지하고 있는 이산화탄소는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많이 배출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은 화석연료 중심의 지속 불가능한 고탄소 에너지 시스템을 태양광과 풍력 등을 활용하는 지속 가능한 저탄소 에너지 시스템으로 바꾸는 움직임이다.3) 


 이러한 전환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상당히 줄여갈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지역에너지 전환이 추진되고 있다. 지역에너지 전환은 마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주민 공동체가 재생 가능 자원을 활용하여 에너지를 생산하고,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소비 절약을 실천하면서 마을의 에너지 자립도를 높인다. 


 국내에서는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을 통해 지역에너지 전환을 꾀하고 있다. 2019년 에너지 자립 혁신지구로 선정된 서울시 서대문구에서는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이 활성화되어 있다. 2016년에 북가좌1동에서 서대문녹색마을이라는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 사업의 원동력인 가재울녹색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책무는 창조세계의 보전”이라 고백하는 공동체이다. 교인들은 지역 사회의 여러 풀뿌리 모임에서 참여하여 마을 주민과 돈독한 유대감을 형성하였으며 교회는 구청으로부터 지역아동센터 운영을 위탁받아 생태친화적인 센터를 만들어갔다. 


 그러던 중 가재울녹색교회는 서대문구로부터 서울시가 추진하는 에너지자립마을 사업 참여를 권유받았다. 마을모임에서 논의한 결과, ‘서대문녹색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주민들과 함께 사업을 꾸려가게 되었다. 담임목사인 양재성 목사가 처음부터 서대문녹색마을 대표를 맡았고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가재울녹색교회에게 에너지 전환은 지역 사회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었다. 에너지자립마을은 단순한 지역사회사업이 아니라 교회가 감당해야 할 선교 사명이었다.


3) 에너지 전환은 단순하게 에너지원을 화석연료에서 태양광이나 풍력 등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는 사회시스템과 관련된다. 석탄은 석탄 사회시스템을 구축했다. 석유도 현대 산업사회시스템을 형성했다. 에너지 전환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시스템을 요구한다.

가재울녹색교회 , 주민과 함께하는 공동체 (사진제공 : 가재울녹색교회)

지역에너지 전환에 교회 참여하기


 가재울녹색교회는 지역에너지 전환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종교와 에너지 전환에 대한 여러 환경사회학 연구물을 보면, 많은 종교 기관들은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알리며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재울녹색교회는 어떠했을까? 서대문녹색마을 에너지 전환사업에서 가재울녹색교회가 어떤 일들을 진행했는지 적어보겠다. 크게 세 가지 범주로 구성해 볼 수 있다. 에너지 전환 주체 육성, 주민참여도 증진, 마을공동체의식 강화이다.


  지역에너지 전환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에너지 전환에 참여하여 이끌어갈 주체를 육성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에너지 전환 주체는 에너지에 대해 깨어있는 이들이다.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실천 방안을 모색하며 참여하는 이들이다. 가재울녹색교회는 교회 안팎에서 에너지 전환 주체를 육성하였다. 기후와 생태에 대한 설교, 기도회, 여행, 수련회 등을 통해 교인들은 생태와 에너지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왔다. 또한 가재울 지역아동센터는 40명 정도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친환경 교육을 실시하였고, 센터 옥상 텃밭에서 어린이들은 직접 상추, 고추, 토마토 등을 재배하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가재울녹색교회는 주민 대상 교육에서도 적극적이었다. 서대문녹색마을 사업을 진행할 때, 가재울녹색교회는 주민 대상으로 열린 주민 대학을 열어 기후변화와 에너지, 그리고 생태에 대한 교육을 이어갔고 우수 에너지자립마을을 탐방했다. 이처럼 가재울녹색교회는 자체적으로 그리고 에너지자립마을 사업을 통해 마을 주민과 함께 에너지 전환 주체로 성장하였다.


 지역에너지 전환에서 주민참여도 증진 역시 중요한 요소이다. 전환 사업에 많은 주민이 참여하면 할수록, 관련된 여러 갈등 발생을 줄일 수 있다. 가재울녹색교회 교인들은 서대문녹색마을 사업을 홍보하여 주민 참여를 부탁했다. 가재울녹색교회는 건물 옥상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였다. 또한 교인들은 자기 집에 발전기를 설치하면서 마을 주민들에게도 권하였다. 녹색마을 운영위원회와 함께 에너지 거리 캠페인을 통해 녹색마을을 홍보하였다. 그 결과 마을 80여 가구가 녹색마을 사업에 참여하였으며, 70여 가구는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였고, 적지 않은 가구들이 에너지 컨설팅을 받아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소비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서대문녹색마을은 연말 마을 음악회를 열어 에너지 전환 필요성과 에너지자립마을을 홍보하였는데, 가재울녹색교회 교인들이 적극 참여하였다


 마지막으로 마을공동체의식 강화는 지역에너지 전환을 꾸준히 끌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가재울녹색교회는 지역순환 경제를 활성화하여 마을공동체의식 강화에 이바지하였다. 마을 주택 옥상 미니 태양광발전소를 통한 이익이 지역사회로 흘러가도록 협동조합을 기획하였으며 에너지 녹색장터와 에너지 바자회에 참여하였다. 비단 에너지 차원에서만 활동하지는 않았다. 가재울녹색교회는 지역 먹거리 운동을 펼치며 마을 텃밭사업을 진행하였고 마을 재래시장 활성화를 꾀하였다. 이러한 지역순환 경제활동은 마을공동체의식 강화로 이어졌다. 또한 가좌동 지역의 생태역사 문화 발굴, 뉴타운과 기존 마을 거주 주민 간의 소통 공간 마련 등 가재울녹색교회는 마을공동체 형성에 발 벗고 나섰다.

가재울녹색교회 태양광 패널 사진(사진제공 : 가재울녹색교회)    

교회의 지역에너지 전환 참여가 가지는 의미


 우리말 ‘교회’로 번역되는 헬라어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이다. 지금까지 우리 대부분은 에클레시아를 ‘불러 모은 모임’으로만 알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불러 모아 세상과는 구별된 모임이라고, 천국만 바라보고 세상과 아무 상관 없는 모임이라고 들어왔다. 그러나 에클레시아의 뜻은 이와 사뭇 다르다. 마을의 공적 의제를 논하고 결정하기 위하여 마을 서기가 불러 모은 공적 모임인 민회라는 시민공동체이다. 그렇다면, 에클레시아로서의 교회는 자신이 터 잡은 지역사회와 분리될 수 없으며 도리어 사회적 문제와 공동선과 관련된 공론장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가재울녹색교회는 에클레시아로서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지역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여 공동선을 증진시키기 위해 에너지 공론장에 적극 참여하여 마을 에너지 전환을 위한 규범과 체제를 형성하도록 노력하였다.

 

 에클레시아로서 교회가 지역사회의 공론장에 참여할 때 중요한 것이 있다. 언어의 번역이다. 공론장에서는 치열한 토론이 일어나며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노력한다. 교회가 이러한 공론장에 참여하려면 자신의 의사소통을 성찰해야 한다. 교회에서 사용하듯이 기독교적 논리와 언어를 공론장에서 사용하면, 소통이 되지 않아 배제되기가 쉽다. 그러기에 교회는 교회의 언어를 날 것으로 사용하지 말고 세상의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가재울녹색교회는 ‘창조세계 보존’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책무를 에너지 전환, 녹색, 먹거리, 태양광 발전기 설치 등으로 번역하면서 지역 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하였다. 


 서대문녹색마을이라는 지역에너지 전환 사업에서 가재울녹색교회는 사회적 자본의 역할을 하였다.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은 중요하다. 사회적 자본은 공동체 구성원 간의 지속적인 관계로 인해 형성되는데,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있는 실질적이고 잠재적인 자원들을 모두 가리킨다. 이 사회적 자본을 바탕으로 신뢰와 연대가 이루어진다. 가재울녹색교회는 서대문녹색마을에서 사회적 자본 역할을 감당하였다. 생태친화적인 지역아동센터 운영, 녹색마을 사업운영, 에너지마을 음악회 개최 등을 통해 가재울녹색교회는 신뢰를 쌓아가며 사회적 자본이 되어 서대문녹색마을이라는 에너지 자립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발판이 되었다. 가재울녹색교회는 교회만의 이익보다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적 자본이 되어갔다.

글을 닫으며 : 예수의 에너지 오이코노미아


 신약성서 복음서를 보면, 예수의 오이코노미아를 볼 수 있다. 이 오이코노미아는 빈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의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 간의 상호 호혜라는 가치를 보여준다. 예수의 오이코노미아는 로마제국의 수탈 행위로 무너지는 유대 사회에게 로마 황제가 아닌 하나님 앞에 선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일깨우며 연대와 돌봄을 강조하였다.4)


 교회가 지역사회와 함께 진행하는 에너지 전환은 예수의 에너지 오이코노미아를 지향한다. 에너지 로마제국과 같은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 경제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지구 기후와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남기는 이 에너지 체제에 대해 항거하며 새로운 길을 여는 에너지 오이코노미아다. 에너지 오이코노미아는 비단 개인이나 교회 차원의 회복뿐 아니라 지역 사회와 지구 생태계를 포괄하는 차원에서의 회복을 추구한다.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 긴박하게 요청되는 지금이다. 산업문명이 주는 산업자본의 환상에서 벗어나 생명친화적인 지속 가능한 삶과 사회체계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문명 전환은 대안 생활방식과 대안 사회를 요구한다. 이 요구에 교회는 예수의 에너지 오이코노미아로 응답할 때가 되었다. 


4) 한국교회환경연구소, 기독교환경운동연대(2018), 『한국교회의 에너지 전환과 햇빛발전소 이야기』, 서울: 동연, 110-140쪽.

[영화리뷰📽️]
오펜하이머Oppenheimer
글 | 김양현
「영화로 보는 세상」의 저자 
더불어행복한교회에서 협동목회를 하고 있으며 제주 북클럽지기로 섬기고 있다.

개봉: 2023.08.15./ 장르: 스릴러/드라마 /국가: 미국, 영국/ 등급: 15세이상관람가 / 러닝타임: 180분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주연 : 킬리언 머피(J. 로버트 오펜하이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루이스 스트라우스), 맷 데이먼(레슬리 그로브스), 에밀리 블런트(키티 오펜하이머), 플로렌스 퓨(진 태트록)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명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다. 신들과 인간이 나누어질 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속인 채 인간에게 불을 전해 주었다.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가 전해 준 불로 문명을 이루었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미움을 받아 쇠사슬에 결박당한 채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는 벌을 받아야 했다. 프로메테우스에게 불을 전수받아 문명을 이룬 인간들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문명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해 왔다. 따라서 불은 이중적이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도 했으나 파괴하기도 했다.

 

 문명,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한다. 플라스틱의 발견은 인간의 삶을 정말 편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플라스틱의 남용은 결국 환경재앙을 낳는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했다. 다이너마이트는 도로를 닦거나 공사를 진행할 때 참으로 편리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으로 가공할 무기를 만들어 상대를 죽이는 데 사용한다. 다이너마이트의 가공할 힘은 끔찍한 살상을 낳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우선 오펜하이머는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맨하튼 프로젝트를 이끈 책임자다. 오펜하이머는 하버드를 졸업하고 영국, 독일 등지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가 교수로 있었던 1930년대 말은 물리학의 전성기였다.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빛이 파동이자 입자라는 놀라운 발견을 이루었다. 소위 양자물리학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다.

현대 양자역학의 아버지 닐스보어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당시 화두였던 양자물리학은 세상을 보는 관점을 새롭게 했다. 과학자들은 점점 더 마이크로 세상을 알게 되었고, 세상은 원자라는 아주 작은 단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었고, 양성자와 중성자는 핵력이라는 힘으로 서로 끌어당기는데 이것이 분리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이런 과학적 발견이 한창일 때 하필 유럽은 아니 전 세계는 히틀러가 추동한 전쟁 중이었다. 그리고 히틀러의 지원하에 그 유명한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원자 폭탄을 연구 중이었다.

 

 2차 대전 참전을 결정한 미국은 급했다. 무엇보다 독일 나치 정권보다 우선적으로 원자 폭탄을 개발해야 했다. 만약 히틀러 정권이 먼저 성공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전 세계의 파멸, 미국의 파멸이다. 이러한 급박함 가운데 군 장성 레슬리 그로브스의 지휘 아래 원자폭탄 완성을 위한 맨하튼 프로젝트가 추진되었고, 그로브스는 총책임자로 칼텍의 오펜하이머 교수를 지목했다. 오펜하이머는 막 유럽의 양자물리학을 공부하고 온 뒤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었고, 미국에서 양자물리학의 전도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에 가담하게 된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뉴멕시코의 로스 앨러모스의 목장 지대에 거대한 단지를 만든다. 즉,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물리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 행정요원들과 군인들을 끌어모은다. 그로브스 장군이 행정적 책임자라면 오펜하이머는 개발 책임자로써 그 임무를 수행한다. 마침내 이 프로젝트는 성공하는데 독일보다 앞서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다. 하지만 원자폭탄 개발 성공과 상관없이 히틀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독일을 패망하게 되었다.

 

 어쩌면 쓸모없게 된 원자 폭탄, 하지만 트루먼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이 프로젝트에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투자했고 국민들은 그 결과를 기대했다. 트루먼은 여전히 저항 중인 일본에 이 폭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원자 폭탄은 투하되었고 그 가공할 위력에 일본은 즉각 항복을 선언하고 전쟁은 끝이 난다.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핵폭탄 사진

 하지만 원자폭탄의 가공할 위력에 가강 놀란 사람은 오펜하이머였다. 그는 이 개발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지만 폭탄을 사용했을 때 그 엄청난 위력, 살상, 되돌릴 수 없는 재앙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오펜하이머는 오히려 원자 폭탄 개발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고 이런 끔찍한 무기들의 개발 및 사용을 반대했다. 미국 정부는 오펜하이머의 이런 주장에 당황했고,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았으며, 2차 대전 후 새로운 냉전의 시대가 열릴 때 소련의 스파이로 몰아갔다. 오펜하이머는 이후 정부 혹은 루이스 스트라우스와의 지난한 싸움을 해야 했고,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싸워나가야 했다. 영화는 이런 과정을 잘 다루고 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영웅 전기가 아니다.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을 개발해서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영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원자폭탄 개발 후에 겪는 내면적 갈등을 다룬다. 아울러 원자폭탄이라는 가공할 힘, 핵이라는 위험, 그것이 사용되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재앙과 환경 위기에 대하여 고민하게 한다. 1986년에 일어난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건은 원폭의 끔찍한 재앙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체르노빌의 환경 파괴 및 인간 피폭의 위험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또한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더욱 끔찍한 재앙이었다. 지진과 그로 인한 해일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졌다.

 

 레베카 솔닛은 자신의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분명히 말한다. 사람들은 폐허가 될 때까지 그 위험을 잘 모른다고. 하지만 폐허가 된 상황에서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고 또 깨달아야 한다고. 뉴욕을 강타한 끔찍한 9.11 테러 현장에서 레베카는 알게 되었다.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비행기가 얼마나 끔찍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또한 그 재앙이 우리의 가족, 형제, 자매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를, 그래서 폐허 더미에서 우리는 폭주하는 문명의 발전, 기술의 무차별 개발에 대하여 생각하고 멈출 줄 알아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더 발전된 기술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낫는 것이기에.

 

 오펜하이머의 각성 이후 미국은 달라졌을까? 아니다. 오히려 이어진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앞 다투어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고, 현재 전 세계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지구를 수십 번 사라지게 할 만한 가공할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만약 하나라도 사용이 된다면 불가항력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을 파생할 것이다. 오래전 칼 세이건은 탄식했다. 로켓 기술로 우주개발에 힘쓰면 좋을 텐데 오히려 핵탄두를 싫어서 인류 전체를 멸종시키려는 일에 사용하다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오늘 우리는 칼 세이건보다, 오펜하이머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하고 논의해야 마땅하다. 우리의 편리를 위한 기술은 지구를 점점 더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 편리를 위해 만든 자동차, 항공기 등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등으로 지구의 대기는 몸살 중이다. 지나친 육식은 지구온난화를 가중시킨다. 편리한 전기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원전은 핵 폐기물 처리에 곤욕을 겪고 있다.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들로 인해 바다와 땅, 동식물이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점에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전 지구적 대 전환이 필요하다. 톱다운 방식으로 각국의 리더들은 핵무기 감축 및 원전의 축소, 또한 이동 수단의 대 전환을 이루어 내야 마땅하다. 지구는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고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끔찍한 재앙을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의 전환, 생활 방식의 대 전환이 필요하다. 지구 생태를 향한 신학적 고찰도 필요하다. 생태도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이다. 우리는 이 창조물을 보호하고 보존할 사명을 부여받았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여기에서 이루어진다는 각성이 필요하다. 편리보다는 불편을, 현재보다는 미래를 생각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오펜하이머의 뒤늦은 후회가 우리의 것이 되지 않도록, 지금 여기에서 결단하고 전환해야 할 것이다. 바로 나부터. 

안녕하세요!

 

 행정팀장을 맡고 있는 박아론입니다. 기후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는 9월인 것 같습니다. 벌써 입추를 지나고 더위가 한풀 꺾일 줄 알았는데, 여전히 더위는 우리를 떠나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이제는 가을이 올까 기대를 해봅니다. 천고마비의 계절, 평화로운 가을 정취가 다가오는 이때에 기후 위기를 생각해 봅니다. global warming이라는 기후 위기를 경고하는 말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져 버려서 농담 삼아 지구가 점차 따뜻해지고 있어!라고 가볍게 받아들이는 말이 돼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global warming 이 아니라 실상은 boiling에 가까운데 말이죠.


 또, 우리 과신대의 역할을 생각해 봅니다. 단순히 과학과 신앙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단체가 아니라 더 나아가 삶을 변혁할 수 있는 단체운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엄중한 경고 앞에 신학적인 담론을 제시함으로써 실천으로 옮겨가는 기반을 마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 분야에 공공신학, 정치신학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생태학자분들도 있지만, 결국 과학과 신학이라는 면에서 우리 과신대가 적극적으로 이슈에 참여하고 또 대화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과학만으로는 이 기후 위기를 돌파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창조세계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과학과 신학이 같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신대가 한국 교회들을 위해 객관적인 과학적 이해와 신앙적 실천을 하도록 설득할 신학을 마련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신대가 긍정적인 내러티브를 여기저기 흘려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과학자분들, 신학자분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연합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거기에 대화의 장을 계속 열도록 노력해 봐야겠습니다.


 아무튼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항상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자 한 분 한 분 세심하게 챙겨야 마땅하지만 제 능력이 부족해서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른 이해 부탁드리며 우리도 연대하길 소원합니다.


박아론 올림

이 달의 소식 📧


1. 아카데미

과신대 아카데미가 개강했습니다. '플립러닝 기초과정'에 참여하고 계신 수강생분들의 완강을 응원합니다.
2. 커뮤니티
  • 교사 모임 : 교사 모임은 8월 26일(토) 오후 7시반, 줌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현재 교회학교 공과 교재를 위해 선생님들이 파트를 나눠 원고를 쓰고 계신데요. 이번 모임에서는 전체 가이드라인을 다시 점검하고 생물 파트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시간을 갖았습니다. 다음세대에게 균형 잡힌 창조 신앙을 전하기 위해 애쓰고 계신 교사 모임 선생님들을 응원해 주세요.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교사 모임 참여에 관심 있는 선생님들께서는 사무국으로 문의 바랍니다.
  • 목회자 모임 : 목회자 모임은 9월 11일(월) 오후 8시 줌에서 신간 《입대 예비 학교에 공저자이신 이현식 목사님과 함께 청년 사역과 군선교 사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침 새로운 멤버로 참여해 주신 목사님이 군선교사로 사역 중이셔서 더 풍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과신대 목회자 모임은 다양한 사역 현장의 경험을 나누고, 목회 현장에서의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연대하고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정회원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입대 예비 학교의 저자이자 과신대 회원이신 이현식 목사님(출처 : 웨슬리안 타임즈)
3. 북클럽
북클럽은 정회원들이 직접 주관하고 참여하는 독서 모임입니다. 모임 참여는 사무국으로 문의 바랍니다.

관악 북클럽
《복음의 공공성》 김근주 저
9월 18일 월요일, 저녁 7시 30분/ 더처치 비전센터 (쑥고개로 122)

제주 북클럽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김상욱 저
9월 24일 일요일, 저녁 5시 / 북촌교회(북촌7길 25-14)

성서와여성 북클럽
《길 위의 신학》 캐서린 켈러 저
9월 26일 화요일, 저녁 7시 / 온라인 Zoom
4. <특강: 예레미야> 북토크
 '분당판교북클럽'에서 준비한 <특강 : 예레미야> 북토크가 9월 8(금)에 있었습니다. 저자이신 김근주 교수님의 인도로 함께 다양한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공공성을 잃어버린 신학, 물질의 번영만을 쫓는 번영신학, 강자에게 침묵하고 약자를 짓밟는 교리가 아니라 사랑과 평화, 그리고 정의가 무엇인지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기억이 남았던 것은 구약에서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교수님의 설명이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진리'라고 말할 때,  '진리'란 추상적이고 고상한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한결같으심"을 의미한다는 설명이 와닿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부자든 빈자든, 높은 위치에 있던 비천한 자리에 있던, 어떤 사람이던 한결같이 대하시는 분이라는 설명은, 이 시대의 복음이 정의와 사랑을 부르짖지만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기준이 들쭉날쭉해지는 상황에서 깊게 생각해 볼 만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과신대 '분당판교북클럽' 식구님들을 뵐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과신대 북클럽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고 진행된다라는 소식만 들었는데, 참여한 시간이 너무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과신대 북클럽은 다양한 주제로 진행됩니다. 북클럽 멤버들이 함께 참여하며 '과학'만이 주제가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책들도 같이 읽으니 북클럽에 참여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신대는 여러분들의 참여로 만들어집니다. 장소를 제공해 주신 성공회 분당교회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과신대에 관심을 갖고 북클럽에 새롭게 참여해 주신 후원자님들, 처음 방문해 주신 방문자님들 환영하고 감사합니다.
촬영에 흔쾌히 응해주신 교수님 감사합니다. "차마 들을 수 없는 하교"로.. 못쓸 영상이 많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 그래도... 감사해요.. 강의는 역시 라이브가 재미있습니다. 
'분당판교북클럽 식구님들' 감사합니다. 북토크 후 저자 친필 사인을 받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북클럽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5. 2023년 8월 재정 보고

이번 달 재정은 수입 7,040,391원, 지출 6,881,880원입니다.  여러분의 든든한 후원 덕분에 이번 달도 과신대 사역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세한 재정 보고는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함께하는 과신대

과신대는 구독자 여러분의 기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채택된 분들께는 2만원 상당의
기프티콘이 제공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주제 : 자유기고 / 다음 호 주제 칼럼 
분량 : 워드 or 한글 4매 이내     
제출 : scitheoeditor@gmail.com


* 편집 사정에 따라 해당 기고문이 실리지 않거나
다음호에 기재 될 수 있습니다.
* 편집 사정에 따라 해당 기고문이 실리지 않거나 다음호에 기재 될 수 있습니다.
과신뷰 이달책 
《기후 위기 시대의 도전과 교회의 대응
- 부제 : 책 내용은 별로 없는 실전 책 서평

글 | 박아론

현재 과신대에서 행정팀장으로 사무국을 지키고 있다

서론

 

 편집팀 회의에서 9월, 10월 호가 ‘기후 위기’를 주제로 발행하기로 결정한 만큼 어떤 책을 서평으로 쓰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편집장님께서 책 한 권을 추천해 주셨다. 그렇다 그 책이 바로 오늘의 책 서평인 「기후 위기 시대의 도전과 교회의 응답」이다.  책의 때깔부터 마음에 드는 이 책은 표지가 참 예쁘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출판사인 새물결플러스에서 나온 책이라는 점에서 어떤 도전적인 메시지가 있을까 기대했다.


 이 책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글을 묶어놓은 책으로 14명의 저자들의 글을 “기후 위기”, “기독교의 응답”이라는 주제로 엮인 책이다. 책의 뒤표지를 보니 과신대에서 자문 위원으로 섬겨주고 계시는 김기석, 박영식 교수님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저자에서도 역시 과신대와 연관된 분들을 보니 혼자만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반가웠다.


 책의 구성이 여러 저자의 글을 엮어놓아서 그런지 굳이 책의 순서대로 읽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총 4개로 주제가 나뉘어 있는데, 1부 기후 위기 시대의 과제, 2부 기후 위기 시대의 신학과 신앙, 3부 녹색교회와 생명 목회 그리고 환경 교육, 4부 녹색 비전을 향한 신앙고백과 기도로 나누어져 있다. 그래서 흥미가 있는 주제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저자의 글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그래서 꼭 처음부터 읽지 않더라도 흥미 있는 주제 글을 시간 날 때 3-4개씩 읽는다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각 글의 분량도 30-40 페이지이니, 조금 긴 칼럼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아무튼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서평을 시작해 보자

기후 위기


 책의 제목처럼 줄기차게 나오는 단어는 “기후 위기”이다. 물론 “기후 위기”라고 쓰고 “인류 위기”라고 읽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말이다. 사실, 기후는 위기 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구도 위험한 적이 없었다. 거기에 살고 있는 생명체가 문제이며, 특별히 기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변화를 만들어내버린 “사람”이라는 종이 문제인 것이다. 이렇듯 기후 위기는 인류라는 종이 만들어낸 문제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무엇으로 기후 위기를 자초했는가? 바로 “탄소”이다. 물론 모든 탄소가 나쁜 것이 아니다. 인류가 산업화를 통해 만들어낸 탄소가 지구의 기후에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류는 탄소 외에 최근 개봉한 “오펜하이머”에서 보듯이 전에는 자연적인 물질로 존재할 수 없는 새로운 “방사능”을 만들었고 이것도 인류에게 심각한 위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오히려 가공할 만한 파괴를 맛본 충격에서인지 여기에 대한 경각심은 있지만 탄소에 대한 경각심은 없다.


 기후 변화의 원인이 되는 물질 중 이산화탄소, 아산화질소, 메탄이 산업화 이후 빠른 속도로 증가했으며 대기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토양, 그리고 해양까지 지구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현대 문명은 이러한 산업화를 기반으로 자본주의의 성장으로 만들어진 사회이기 때문에, 탄소 배출을 멈출 수가 없다. 여기에서 하나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기후 위기를 멈추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을 멈춰야 하지만 탄소 배출을 완전히 멈추자니 현대 문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리고 여기에는 정의의 문제가 엮여 있다.

정의의 문제


 다 같이 탄소를 줄이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정의의 문제가 껴있다. 사실 현재까지의 대부분의 탄소 배출은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선진국”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산업화를 통해 발전하려는 후발주자들은 오히려 탄소 배출을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똥은 선진국들이 싸고 치우는 건 다 같이 치우자는 식이다. 여기에 더욱 아이러니한 상황은 여전히 그 똥은 선진국들이 엄청나게 싸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계층은 역시나 빈곤층과 후발주자들인 개발도상국들이다. 사실 부유한 선진국들의 국민들이나 또 부유층들은 이러한 영향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빈자들이 지면서 정의의 문제가 대두된다. 기후 위기로 발생한 정의의 문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그리고 개인들 사이에서 모두 엮여 있는 문제다.

 

 더욱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러한 “기후 위기”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활동가들이 내놓는 해답은 사실 부자와 빈자들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인 것 같다. 결국 어찌 보면 선진국과 부유한 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보상금을 내라는 것인데, ‘내가 왜?’라는 질문에 당신이 오염시켰으니 내야 한다는 논리는 사실 읽으면서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주장은 반감만 사기 쉽다. 그리고 빈자들에게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참여하라는 말도 ‘내가 왜?’라는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연대와 협력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결국 연대와 협력이 이상적인 답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실 그 이분법적인 구분은 결국에는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우리가 가진 내러티브는 구분의 내러티브가 아니라 통합의 내러티브여야 하지 않을까? 적절한 예시는 아니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1995년 설립하고 시행한 “진실화해위원회”가 생각났다.


 인종차별과 탄압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가진 남아공에서 반인권적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명백한 지침과 시한을 정해두고 했다. 여기에 시행된 가장 정의의 형태는 “처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보상”과 “명예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회복적 정의에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에 실행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 물론, 여기에서 범죄에 대한 “징벌적 처벌”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악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있어야겠지만, 처벌로 갔다면 과연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명예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기후 위기 문제도 좀 더 넓은 담론에서 가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개인, 국가에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연대와 협력을 위해 더 큰 그림을 제시하고자 하는 저자들이 있었던 것이 인상 깊었다. 그러나 사상가와 활동가들의 가장 큰 문제는 “카산드라 신드롬”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가 아닐까? 칼을 갖지 않은 예언자가 어떻게 자신의 예언이 참되다고 주장하고 강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요구할 수 있을까. 우리의 칼은 연대와 협력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묶을 수 있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중심


 기독교 신앙이 사람들을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전에 깨야 할 것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다. 기독교 신앙 체계가 세계를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해 자연을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전통적인 신앙에서 자연은 우리가 정복하고 다스릴 대상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탈피해 봤을 때 인간과 자연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일뿐이며, 우리 인간은 이 피조 세계를 잘 관리하도록 세움을 받은 하나님의 ‘부섭정’ 혹은 ‘대리자’일뿐이다.


 쉽게 주식투자자들의 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라고 생각해보자. 펀드매니저는 원금을 불릴 생각을 해야지 까먹을 생각을 하면 안 되고, 분명 자신이 돈을 쓰지만 “자신을 위해” 돈을 쓸 수는 없다. 그것은 횡령이기 때문이다. 경제 논리로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이 만든 피조 세계에서 열심히 “횡령”한 횡령범이다. 

 

 우리는 우리 중심적인 사고를 깨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성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주인이 맡긴 이 피조 세계를 우리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더 풍성하게 가꿔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온 피조 세계를 위한 것이다.

마무리

 

 인류는 과연 전 지구적인 조별 과제를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부정과 절망, 갈등의 내러티브를 끊고 기독교는 새로운 내러티브를 제시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과연 주님의 재림의 때에 인류라는 종은 존재하고 있을까? 우리 주님이 구름 타고 오셨는데 이미 다 멸종해서 “어 뭐야 애들 다 어디 갔어?”라고 물어보지 않고, 그래도 주님이 재림하셔서 결산하실 그 때에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칭찬 받는 피조물의 대표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하고 (누가복음 19:17)



한 줄 평

"보고싶은 주제, 원하는 때에"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체후원]


i**tie Inc / 그루**교회 / 신도**교회 / 안산**교회

프**비뇨기과 / 한**교회 / 행복한**교회


[개인후원]


Young *Chin / Sang * Kang / Yu* Cho / Jun* Choi / Jae* Lee / Sung * Lee / Dong * Choi / Sung* Moon / Chi* Park / Sun* Lee / Si* Lee / Hye* Ko / Eun* Park / Han * Lena / Hwang ** Joon / 강*은 / 강*철 / 강*희 / 강*혁 / 공*윤 / 곽*석 / 곽*이 / 구* / 구*희 / 구*수 / 구*우 / 구*규 / 권*준 / 금*범 / 김*석 / 김*아 / 김*희 / 김*운 / 김*주 / 김*형 / 김*현 / 김*원 / 김*희 / 김*원 / 김*식 / 김*현 / 김*림 / 김*수 / 김*영 / 김*범 / 김*환 / 김*미 / 김*래 / 김*민 / 김*병 / 김*신 / 김*한 / 김*영 / 김*미 / 김*윤 / 김*영 / 김*자 / 김*현 / 김*웅 / 김*중 / 김*식 / 김*극 / 김*국 / 김*정 / 김*권 / 김*상 / 김*호 / 김*준 / 김*형 / 김*철 / 김*완 / 김*수 / 김*영 / 김*황 / 김* / 김*준 / 김*경 / 김*식 / 김*아 / 김*혜 / 김*수 / 김*신 / 김*식 / 나*현 / 노*미 / 노*현 / 노*경 / 류*인 / 마*렬 / 문*호 / 문*석 / 문*영 / 문*식 / 민*진 / 박*철 / 박*훈 / 박*현 / 박*원 / 박*은 / 박*훈 / 박*론 / 박*진 / 박*식 / 박*민 / 박*탁 / 박*수 / 박*욱 / 박*성 / 박*영 / 박*규 / 박*주 / 방*기 / 배*준 / 백*인 / 백*양 / 서* / 서*진 / 석*병 / 성*혁 / 성*근 / 성*기 / 성*호 / 성*아 / 손*용 / 손*아 / 손*주 / 송*범 / 송*원 / 송*승 / 송*기 / 송*강 / 송*찬 / 송*원 / 신*웅 / 신*훈 / 신*주 / 신*호 / 신*호 / 신*영 / 신*철 / 신*성 / 심*보 / 심*주 / 심*영 / 안*혜 / 안*권 / 안*일 / 양*천 / 염*영 /오*정 / 오* / 오*조 / 오*주 / 오*일 / 우*미 / 우*학 / 원*선 / 유*선 / 유*호 / 유*암 / 유*현 / 유*기 / 유*성 / 유*원 / 유*혜 / 유*성 / 유*영 / 윤*혜 / 윤*진 / 윤*석 / 윤*식 / 윤*주 / 윤*빈 / 윤*혜 / 윤*호 / 윤*석 / 윤*설 / 이*문 / 이*용 / 이*화 / 이*동 / 이*원 / 이*호 / 이*기 / 이*원 / 이*선 / 이*은 / 이*은 / 이*은 / 이*현 / 이*호 / 이*재 / 이*철 / 이*경 / 이*민 / 이*빈 / 이*기 / 이*훈 / 이*형 / 이*민 / 이*준 / 이*재 / 이*정 / 이*헌 / 이*학 / 이*현 / 이*수 / 이*모 / 이*복 / 이*후 / 이*원 / 이*찬 / 이*성 / 이*연 / 이*은 / 이*혜 / 이*호 / 이* / 이*우 / 이*은 / 이*경 / 이*길 / 이*별 / 이*솔 / 이*주 / 이*식 / 이*호 / 이*식 / 이*주 / 이*련 / 이*웅 / 이*주 / 이*정 / 이*희 / 임*민 / 임*진 / 임*영 / 임*웅 / 임*석 / 장*식 / 장*호 / 장*호 / 장*일 / 전*철 / 전*혜 / 전*셉 / 전*석 / 전*권 / 전*경 / 전*경 / 정*영 / 정*경 / 정*권 / 정*용 / 정*활 / 정*희 / 정*화 / 정*희 / 정*수 / 정*석 / 정*현 / 정*현 / 정*훈 / 정*성 / 정*재 / 조*미 / 조*종 / 조*옥 / 조*현 / 조*진 / 조*진 / 조*상 / 조*철 / 진*규 / 진*미 / 차*진 / 차*호 / 차*란 / 채*지 / 최*화 / 최*윤 / 최*훈 / 최*숙 / 최*수 / 최*영 / 최*울 / 최*일 / 최*훈 / 최*린 / 최*주 / 최* / 최*민 / 최*철 / 최*빈 / 최*영 / 최*모 / 최*만 / 최*원 / 최*영 / 최*나 / 최*오 / 최*진 / 팽*국 / 하*지 / 하*신 / 한*현 / 한*우 / 한*욱 / 한*은 / 한*선 / 허* / 허*경 / 허*훈 / 허*영 / 허*한 / 홍*근 / 홍*경 / 홍*근 / 황*영 / 황*욱 / 황*현 / 황*미 / 황*혁


총 336분께서 8월 한달 과신대를 재정으로 섬겨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후원자님과 소통하며 <과신뷰>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달의 과신뷰를 어떻게 읽으셨나요?

과신대 편집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보내주세요.

<지난호 독자의 소리>

아쉽게도 지난호 독자의 소리가 없었습니다.😥
구독자님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제발요~🙏
과학과신학의대화 과신대
scitheo.office@gmail.com
서울시 종로3가 삼일대로 428 낙원악기상가 5층, NPOpia 500-5호
전화번호 : 010-2397-4231
근무시간 : 월 ~ 금 09:00 ~ 18:00
수신거부 Unsubscribe
 삼일대로 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