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책이 한 권 떠오릅니다. 장정일 작가와 한영인 문학평론가가 쓴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라는 책입니다. 나이 차가 20년 넘게 나는 두 사람이 나눈 편지(정확하게는 이메일)를 책으로 엮었는데 무척 재미있습니다. 〈시사IN〉에 ‘독서일기’를 연재하는 장정일 작가의 집에 책이 많으리라고는 짐작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습니다. 글을 쓸 때 참고해야 할 책이 분명히 집에 있는데 무수한 책더미 속에서 도통 그 책을 찾지 못해 결국 도서관으로 갔다는 대목에서는 기가 막혔습니다. 책 속 그의 편지 내용을 좀 옮겨볼까요?
“저희 집에 쌓인 책... 아예 말을, 말고 싶습니다. 아침에 깨어나 책무더기를 보고 한숨을 쉬고, 한밤에 자기 위해 불을 끄며 저를 둘러싼 책무더기 때문에 한숨을 쉽니다... 방금 생각났는데, 세상을 하직할 때 ‘드디어 ○○과 영영 헤어지게 되어 기쁘다’라고 환호작약할 그 무엇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책과 헤어지는 것. 저는 책이 싫습니다.”
실은 얼마 전 장정일 작가를 만났습니다. 제가 원고 담당이거든요. 몇 해가 지나도록 서로 편지(이메일)만 주고받다가 드디어 만났습니다. 최근 ‘독서일기’에 ‘난생처음 스마트폰을 개통했다’라는 글을 쓰신 걸 보고 제가 ‘위로차’ 한 번 뵙자고 했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작가의 단골식당에서 동태탕을 먹자고 했지요.
“책이 싫습니다”라던 장정일 작가는 약속장소에 일찍 나와 홀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물론 스마트폰은 들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보자마자 저에게 “아니 요즘 왜 이렇게 기사를 안 씁니까? 이래도 됩니까?”라고 묻더군요. 곧바로 대화의 화제가 바뀌어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 답을 해야겠습니다. “네, 이래도 됩니다.”
요즘 제가 쓴 기사가 잘 안 보이는 이유는 ‘안식월’을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10월 초에 독일 에너지 위기와 탈원전 문제를 다룬 기사를 쓰고 한동안 쉬었습니다. 〈시사IN〉은 10년마다 한 달씩 안식월을 주는 좋은 제도가 있습니다. 우리보다 더 나은 복지제도를 갖춘 언론사도 있지만 대다수는 이런 제도가 아직 없습니다. 타 언론사 기자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죠.
이쯤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시사IN〉의 ‘고인물’입니다(경력기자로 새로 들어온 문상현 기자가 9월에 독자 여러분께 쓴 편지에서 〈시사IN〉 동료들을 긍정적인 의미의 ‘고인물’이라 표현했더군요.) 저 또한 2007년 창간 때 경력기자 공채로 들어왔습니다. 〈시사IN〉에서만 어느덧 15년을 일했네요.
〈시사IN〉에 오기 전 저는 기자 일을 관둔 상태였습니다. 모 포털사이트의 공익기부 사이트를 운영하는 일을 했었죠. 여러 시민 사회 복지 단체의 사연과 소식을 모으고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만, 기자 일이 저잣거리에서 치고박고 싸우는 것이라면, 이 일은 정자에서 음풍농월하는 것 같았죠. 평화로워서 좋았고 안이해서 싫었습니다.
당시 삼성 기사 삭제로 불거진 기자들의 파업 사태가 벌어졌고 이후 〈시사IN〉 창간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죠. 그때 다시금 기자 일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공채 서류 자기소개서에 ‘당신들의 열차에 함께 올라타고 싶다’라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을 쓴 기억이 납니다. 당시 선배동료 기자들의 용기 어린 파업 과정이 없었다면 아마도 저는 지금 기자가 아닐 겁니다.
그렇게 〈시사IN〉이 처음 생길 때만 해도 막내급이었던 제가 어느덧 고참 기자가 되었네요. 고참이라는 말을 하니 살짝 어깨가 무거워져서 시니어 기자의 눈으로 본 현재 한국 언론 이야기를 해볼까 싶어 글을 썼다가 지웠습니다. 편지가 아주 길어질 것 같아서요. 다음에 여러분께 다시 편지를 드릴 기회가 오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기레기’라는 비난이 난무하는 우리 언론계에도 꽤 괜찮은 기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시사IN〉 기자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팔이 안으로 너무 굽는 것 같지만,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매체를 구독하고 후원해주시는 당신,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
저는 요즘 대략 세 가지 주제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농촌’ ‘중국’입니다. 원래 저는 먹을거리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막걸리 열풍, 한식세계화, 대만 카스테라 몰락 같은 이야기를 열심히 썼습니다. 세계적인 레스토랑 별점 평가서인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이 실은 국민 세금을 털어 발간됐음을 고발하는 기사도 썼습니다(‘20억원 주고 얻은 미식의 별’).
그런데 이런 기사를 쓸수록 그 근원에 농촌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농업이 주변화하고 농민의 삶은 피폐해지는데, 먹을거리 산업은 날마다 팽창하는 기이한 모습을 마주하게 된 겁니다. 그렇게 농촌 문제를 들여다보니 또 기후위기 문제가 보이더군요. 기후위기는 인류의 삶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넣지만 가장 먼저 농촌을 타격합니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극심한 가뭄, 그리고 정반대의 집중호우가 농업 전반을 궤멸시키는 중입니다.
중국에 대한 관심 역시 농촌 문제에서 비롯됐습니다. 몇해 전 중국의 농촌 문제를 취재하러 중국 남쪽 지역을 방문했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반향청년’이라 불리는 ‘귀농청년’이 엄청나게 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시화 산업화로 질주하는 중국에서 뜻을 품고 농촌으로 들어가는 이들의 존재가 어찌나 신기하던지요. 그간 중국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이 깨졌던 순간이었습니다. 11박12일 취재 뒤에 쓴 기사가 ‘중국을 바꾸는 반향청년들의 도전’이라는 기사입니다.
그때가 2019년 11월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직전이었지요. 이듬해인 2020년부터 국내에서 ‘반중정서’가 엄청나게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싶어 한국리서치와 함께 여론조사를 진행했고,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 ‘반중정서 리포트‘라는 기사입니다. 이 여론조사 결과가 꽤나 심각해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같은 매체가 비중 있게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기사 덕분에 팔자에 없는 중국 전문가(?)가 되어 이런저런 토론회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고민이 깊습니다. 기후위기와 농촌 관련 기사의 공통점이 뭔줄 아시나요? 별로 인기가 없다는 겁니다. 중요하다, 심각하다, 말은 많지만 막상 기사를 쓰고 나면 짐작만큼 커다란 반응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반면 중국에 관한 기사에는 부정적인 의미로 커다란 반응이 돌아오곤 합니다.
올 초에 ’심혈을 기울여‘ 진행한 기후위기 여론조사 때 함께 기사를 썼던 김다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기사 우리 생각보다 별로 안 터질 겁니다. 그러나 ’에버그린‘ 콘텐츠가 될 테니까 즉각적인 반응 없더라도 기죽지 맙시다.”
실은 우리 〈시사IN〉 기자들 모두 이런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각자 취재하는 분야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기사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죠. 물론 단순히 클릭 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야기를 독자들도 중요하게끔 여기도록 설명하는 것이 기자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지를 쓰다 보니 여러분께 인사를 드린다는 핑계로 제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네요. 꽤 오랫동안 이 일로 밥을 먹고 살면서도 한순간도 기자 일이 ’쉽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이종태 전 편집국장의 말마따나 확실히 기자 일은 ’아무리 해도 숙련이 안 되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시사IN〉을 응원해주시는 여러분이 저희에게는 ’에버그린‘ 힘의 원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