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막사람 두 번째 레터 오막의 <넋두리>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의 주변인들도 대부분은 ...
 
013_내가 한잔 채워도 되겠습니까?
To. 오막&한아임
From. Editor_J

2023년 1월
 

고막사람 두 번째 레터 오막 <넋두리>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의 주변인들도 대부분은 나와 이런 성향을 공유하고 있는 인간들뿐이기 때문에 (끼리끼리 만나는 것일까…?) 매번 말로만 "하자! 하자!" (중략)...”


읽으면서 바로 나다 싶었다. 유튜브 하자 뭐 하자, 제발 뭐라도 해보자는 말을 오막과 만날 때마다 했지만, 만날 때마다 했다는 건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몇 년 동안 그렇게하자! 하자!’만 함께 외친 주변인 중 하나로서 오막한아임 <고막사람> 프로젝트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2주에 한 번씩 올라오는 레터를 보면서,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주옥같은 음악들을 플리에 채워 넣는 쾌감과 함께, 그 음악들을 BGM 삼아 그들의 우주를 탐험하며 <고막사람>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2022년 말 오막이 <고막사람>에 한편 참여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수년 전 한아임의 내한 때, 우연히 셋이 술자리를 갖은 적이 있었고, 이따금 당시의 기억을 특별한 이유 없이 끄집어내곤 한다.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억은 알코올과 함께 증발해 버렸지만, 서로의 우주를 망설임 없이 꺼내놓고 자유롭고 치열하게 말하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둘은 어떻게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저 지나가는 하나의 술자리였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때의 분위기 공간, 셋이 앉아서 이야기하던 형상이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고막사람에 발을 담가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고, 더 정확히 말하면 무의식 속에서 오막의 제안을 기다리고 있던 걸지도.

 

오막 <012_슈방구와 간첩>에서 잠시 소개한 대로 나는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편집을 하고 있는데, 내가 소개할 곡들은 공감에서 편집했던 곡 중에 인상적이거나 자주 듣게 된 음악을 소개하려 한다. 첫 곡 <박소은 눈을 맞춰 술잔을 채워> 2022 3월 공감팀에 와서 처음으로 편집한 방송에 수록된 곡 중 하나인데, 박소은의 곡들은 작년에 차에서 이동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플레이리스트라고 단언할 수 있다. 문학적이지만 동시에 날것 같은 노랫말을 마치 주변에 있을법한 친구 같은 목소리로 들려준다는 점이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음악적 언어로 박소은의 곡들이 왜 좋은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아직 없다. 음악에 대한 지식이 없기에, 방송에 나갈 곡을 편집할 때도 순전히 내 안에 내장된 리듬감과 영상에 대한 감각에 의존한다. 나에게 피디(방송에 관해서 최종책임자라 할 수 있다)를 만족시킬 만한 감각이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편집했던 촬영 소스를 둘에게 넘겨주고 편집을 시켜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매우 궁금하다. 오막과 아임은 어떤 호흡과 리듬으로 영상을 편집할지, 음악의 어떤 디테일을 살려줄지 말이다.

공감에 나온 뮤지션들의 음악을 약 1년 가까이 편집하면서 여러 가지를 느꼈지만,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역시 라이브의 경험을 온전히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당연하고 지당한 귀결이다. 편집자는 여러 카메라로 촬영된 소스들을 조합해 최대한 현장감을 살리고 감상에 방해되지 않게, 혹은 감상에 도움이 되도록 컷 순서를 조정하고, 뮤지션의 인터뷰와 생각들을 곁들여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편집의 신이 편집을 하더라도 공연 현장에서 느꼈던그것을 온전히 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10여 년 후에는 편집의 신 따위가 아니라 고도화된 가상현실 기술들이 시공간을 넘어선 라이브 경험을 완벽하게 선사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무시무시한 것이 나오기 전에 (공감 문 닫기 전에?) 아임오막이 공감홀에 놀러 오는 날을 고대해본다.

 

<라드 뮤지엄 - Forever>를 들으면 나른하게 호수를 유영하는 느낌이 든다. 이동해야 할 목표지점이 명확한 수영과 달리 유영은 물과 내가 하나가 되어 둥둥 떠다니며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모든 것을 즐기면 그만이다. 삶을 유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물론 유영만 하고 있다가는 물에 빠져 죽을 테니 적절히 헤엄쳐 나와 땅도 밟으며 살아야겠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편집일을 하지만, 일로서 이런 곡들을 만난다는 것은 꽤나 축복스러운 일이다. 편집하며 수십번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오히려 편집하는 대부분의 곡들이 들으면 들을수록 좋게 들린다. 이런 걸 보면 충분히 자세하게 오랫동안 듣지 않아서 음미해보지 못 한 채 지나쳐버리는 음악들이 많이 있을 거라 생각이 든다. 취향은 선천적이라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음미할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서 한없이 넓고 깊어질 수 있는 것이 취향이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또한 TV와 멀리하게 된 지 오래다. 그래도 EBS에서 일을 하면 다시 TV를 많이 보게 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랩탑과 모바일로 영상을 접하는 게 좋다. 채널과 콘텐츠가 너무 많아서 누구나 알아야 하는 무엇이 있기 힘든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간첩이 너무 많아질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아무튼 싱어게인이라는 굉장히 히트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인 이승윤 또한 스페이스 공감 공연 날 나는 처음 존재를 알게 되었다. 연예인들 나오는 방송을 일절 안 보는 우리 엄마가 알 정도이면 꽤나 엄청났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이승윤은 오랫동안 골방에서 음악을 만들고 소규모 공연이든 길거리 공연이든 되는 대로 공연하며 자신이 원석인지 취미생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년간 음악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디션에 나와서 자신이 원석임을 증명하며 우승했다. 부럽다. 나는 이승윤이 부럽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데 어떤 점이 부러운 건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이 부분은 추후에 조금 더 생각해보는 걸로.

작년까지만 해도 코로나로 인해 무관객 공연을 했었다. 그래서 앞의 박소은과 라드의 무대를 보면 객석에 관객 대신 무시무시한 검은 천이 덮여있는 것이다. 이승윤은 유관객 공연을 시작한 후에 섭외가 되었는데, 세상 그렇게 구석구석 관객석을 누비며 공연하는 친구는 처음 봤다. 편집은 다소 힘들었지만 관객들이 신나 하는 모습은 나에게 엄청난 원동력이 된다. 프로그램명처럼 공감하기 위해 뮤지션들은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그 공감이 가득 찼던 무대를 방송으로 접하게 될 시청자들에게 최대한으로 전달하고 싶다.

예전에는 자주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끔씩 생각을 배설하기도 했지만 몇 년 동안 그마저도 안 한다. 요즘은 그저 유튜브 댓글창에 짧은 감상평을 남긴다거나 드물게 배달 음식에 만족했을 때 남기는 리뷰 정도를 고심해서 쓸 뿐이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하루키 소설을 읽고 밤하늘을 쳐다보며 요상한 기분을 만끽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영상매체가 지구를 정복한 이후 인류가 읽기 쓰기를 안 하는 종족으로 진화(혹은 퇴화)하고 있음이 실감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고막사람에 참여할 수 있게 기회를 준 오막아임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이번 레터를 마무리하려 한다. 땡큐.

이번 편지를 보낸 Editor_J는...
에디터 제이 최고. - by 아임
에디터 제이 2023년엔 더 많은 것을 하길 바라며... - by 오막

자기소개를 거부한 에디터 제이 대신 아임과 오막이 감사의 말을 남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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