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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 읽지]  2021-08-26 #69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편집자는 생을 녹여 도서관으로 흘려보내는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수지타산이라는 현실적 판단도 수반된다. 현실적 제약 속에서도 보석 같은 저자를 발굴하려고 거칠게 직조한 초고를 정성 들여 읽는다. 이것은 반듯한 책장 속 보기 좋게 꽂힌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책상에 A4 용지를 쌓아 올린 채 그 속에서 활자와 생을 결합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16년 동안 인문·사회·예술·교양 서적을 기획하고 발간한 출판편집인이다. 편집자는 작가에게 든든한 조력자이자 냉철한 비평가여야 한다. 작가를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독자를 대변해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편집자의 삶을 세 단위로 분절해 기록한다. 저자-편집자-독자로 이어지는 책의 여정을 위해 편집자는 길을 내고 다리를 이어준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편집자 자신의 노동을 덤덤하게 풀어낸 두 번째 파트다. 알알이 수놓은 밀도 높은 노동의 기록이 그 어떤 장편 서사보다 큰 울림을 준다. 저자의 노동은 타인의 글 바탕에서 출발한다.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과하게 포장하지도, 굳이 비하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가능한 시선이다. 좋은 책은 결국 엉덩이가 만든다. 

글 노동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빌려와야 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애정 넘치는 찬사도 마음 따뜻해지는 대목이다. 조금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꾸준히 다른 언어를 공부하는 번역자, 밤잠을 쪼개 원고를 훑어보는 감수자, 책에 등장하는 모든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는 팩트체커까지. 지성과 근면함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 한 권의 책에 녹아 있다. 그러다 보면 수긍하게 되는 것 한 가지. 좋은 책의 가격은, 그 가치를 따져볼 때 여전히 싸다. ● 김동인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언다잉
앤 보이어 지음, 양미래 옮김, 플레이타임 펴냄
“침대보다 더 비극적인 가구는 없다.”

2014년 새해 그는 마흔이었다. 매월 850달러의 월세를 내며 예술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로 먹고살았다. 중학생인 딸을 홀로 기르면서. 그해 그가 어서 배송되기를 고대한 빈티지 침대는 26주 후 병상이 됐다. 사랑을 나누던 장소가 죽을지도 모르는 장소가 되었다. 유방암 항암 치료를 겪는 동안 침대는 무덤과 다를 바 없었다. “병을 견뎌내는 것보다 그 병과 관련된 경험과 느낌을 재현하는 것이 더 힘에 부친다”라는 고백은 윤리적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이 혹여 ‘상품’이 될까 봐 치밀하게 검토한다. 덕분에 글은 ‘운동’ ‘녹색 채소’ ‘긍정적 사고’ 따위로 구성된 생존기에 머물지 않는다. 유방암이라는 젠더화된 질병이 쉽게 누락시키는 고통과 불평등을 발견하고, 이미 아픈 이들과 아직 아프지 않은 이들의 손을 잡는다. 책 자세히 보기 >>>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김백민 지음, 블랙피쉬 펴냄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수상한 진실을 탐정처럼 파헤쳐보겠습니다.”

2007년 BBC 다큐멘터리 〈위대한 지구온난화 대사기극〉에는 가짜 정보가 가득 차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이산화탄소 증가가 화석연료 사용 탓이 아니라 지구 온도 상승에 따라 바다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빠져나온 결과라는 내용이다. 이는 간단히 반박된다. 오히려 바닷속 탄소량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에 따라 지구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극지 전문가이자 기후과학자인 김백민 교수가 지구의 기후를 둘러싼 의문을 과학과 사실에 입각해 파헤쳤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기체가 지구 온도를 높일 정도로 대단한 것인지, 지구 온도가 1℃ 증가한다고 해서 공룡처럼 멸종을 맞이할지 등 지구 역사를 관통하는 흥미로운 기후 이야기를 다뤘다. 책 자세히 보기 >>>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
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박선형 옮김, 유유 펴냄
서점은 사람을 자유롭게 해주는 장소다. 책을 매개로 그 동네에 사는 사람의 자유를 뒷받침한다.

저자는 일본의 출판·서점 전문 저널리스트다. 일본 한자로 책방은 ‘本屋(혼야)’라고 표기한다. 한자 ‘屋’는 한 사람이 애초에 지니고 태어난 기질을 나타내는데, 저자는 ‘本屋’를 ‘책방을 하는 사람’ ‘책방지기’와 같이 해석하고 이들을 취재해왔다. 한국과 타이완 출판인들 사이에서도 그의 글은 인기를 끌었다. 각자의 방식과 해석으로 ‘책방 이야기’를 읽은 듯했다. 저자는 국경을 넘어 한국과 타이완, 홍콩 등 동아시아 책방 기행을 나선다. 한국 기행은 특히 ‘민주화와 서점’이라는 장으로 묶었다.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과 얽힌 책방을 방문했다. 한국의 과거와 홍콩의 현재를 본 뒤 저자는 서점의 역할이 분명해졌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자유를 뒷받침해주는 장소가 서점이라는 것이다. 책 자세히 보기 >>>  

별 다섯 개 부탁드려요!
유경현·유수진 지음, 애플북스 펴냄
별점 평가에 가려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 쿠팡플렉스 진용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차량으로 배송하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 플랫폼 노동자다. 오배송 건수 등을 반영해 별점 평가를 받는다. 세 개 등급으로 나뉘는데 뒤로 갈수록 업무 배정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동희씨는 가사 노동 플랫폼에 소속되어 있다. 집주인이 있든 없든 잠시도 쉬지 않는다. 별점 때문이다. 재능 공유 플랫폼을 통해 메이크업 수업을 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수양씨에게도 별점과 후기가 가장 중요하다. 플랫폼 노동자의 이야기를 기록한 KBS 〈다큐 인사이드-별점인생〉을 기반으로 쓰였다. 책에 실린 열 명뿐 아니라 우리 모두 별점에 저당 잡힌 삶을 사는 것 같다. 책 자세히 보기 >>>
 
책 만드는 사람들




책의 외양은 구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국내 독자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미적 기준이 높다. 독자들의 까다로운 취향과 더불어 한국의 북디자인이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 출간물의 리커버 디자인이나 서점별로 다른 표지를 입혀 내보내는 기획도 모두 독자의 수집욕을 자극한다. 책은 내용이 중요하지 인스타그램용 소품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예뻐서 산 책이 내용까지 좋거나, 필요에 의해 산 책이 예쁘기까지 하면 더 가까이 두고 읽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사실 책이 멋 내기에 좋은 소품까지 된다면 썩 훌륭한 일이 아닌가? │정지현(북디자이너)

간파당하지 않되 막연하면 곤란해  

"그러지 말고, 가능하면 편애하려고 노력합시다. 모든 걸 미적지근하게 좋아하느니 차라리 편애하고, 차라리 편애하는 것들을 하나둘 늘려가도록 합시다." (<우리가 보낸 순간>, 김연수)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사실 굉장한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그만큼 삶이 넓고 깊어지니까요.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이 늘어날 때마다 싫어하는 것들이 나를 침범해 올 때 숨거나 도망갈 수 있는 요새를 짓는 기분입니다. 5년 만에 발매된 이랑의 신보를 듣는 순간도 그랬습니다. 사실 조금 울었어요. 특히 표제곡인 '늑대가 나타났다'를 들었을 때요.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쓸모없는 사람들이 아니오'라는 노랫말 때문입니다. 같이 듣고 싶습니다. 이랑씨가 인디씬을 넘어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 시킨 계기는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의 퍼포먼스였죠. 당시 이랑씨에게 상을 안겨줬던 앨범 <신의 놀이>(2016)가 나왔을 때 진행된 시사IN 인터뷰(아무도 그렇게 죽지 않았으면)도 링크해둡니다. 
 
편애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책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편애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곧 시사IN북에서도 신간이 한 권 나올 예정인데요(중요)(ㅋㅋㅋ), 글에 몸을 만들고 옷을 지어 입히는 일은 대상을 사랑하고, 확신하지 않으면 단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일이더라고요. 새로 나올 책의 1교를 마친 날, 저는 일기에 이런 문장을 적었습니다. "책이 자신의 운명을 살기 위해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그 여정에 자신의 운명을 겹쳐보는 이들을 많이, 계속, 오래 만나고 싶다."

책의 힘을 믿고, 책의 물성을 좋아하고, 책이 품은 가능성을 사랑하는 편집자들의 노동과 수고를 기억하고 싶어서 '책에 대한 책'을 자꾸만 읽는 요즘입니다. 가을의 초입입니다. 책과 함께 깊어지는 날들은, 책과 더불어 서성이는 날들은 찬바람에도 그리 외롭지 않을 겁니다. 

동네책방을 운영 중이신가요? 
혹은 동네책방의 단골이신가요? 

동네책방과 시사IN이 함께하는 '읽는 당신 x 북클럽'이 시즌2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3~6월 진행된 시즌1은 동네책방 28곳에서 340여명이 모여 '팬데믹 너머'를 주제로 <공정하다는 착각> <가난의 문법>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을 함께 읽었습니다. '읽는 당신 x 북클럽'은 독자들이 동네 서점을 매개로 지역사회와 새롭게 관계 맺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획됐습니다. 북클럽에 선정된 책은 반드시 회원이 소속된 동네책방에서 구입해야 하는 방식으로요. 그 책을 함께 읽고 한 달에 한 번은 전국의 회원이 줌(zoom)에 모여 관련 강의를 들었습니다. (관련 기사 >> 왜 지금 북클럽일까?)

10~12월 진행될 시즌2는 '다양성과 공존'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8월 중 시즌2에 함께 할 동네책방 모집을 완료하고 9월 중 회원모집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여러분의 '단골' 동네책방에 소식을 알려주세요. 또 동네책방을 운영 중인 분이라면 어서오세요 ;) 8월29일(일)까지 신청서를 작성해주신 동네책방을 대상으로 8월31일(화)에 온라인 설명회를 엽니다. 

추천도서
책방별 책모임에서 함께 읽게 될 도서입니다
① 몸의 다양성과 공존 :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사계절 펴냄)
② 삶의 다양성과 공존 : <다른 세계에서도> (이현석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③ 생명의 다양성과 공존 : <짐을 끄는 짐승들> (수나우라 테일러 지음, 오월의봄 펴냄)
 
북토크 
강사진이 확정되었으며, 온라인으로 진행됩니다
① 오프닝 북토크(9월30일) : “기후위기 시대의 공생과 진화”, 강사 이정모(국립과천과학관장)
② 1차 북토크(10월21일) : 김원영(저자, 변호사)
③ 2차 북토크(11월18일) : 이현석(저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④ 3차 북토크(12월16일) : 홍은전(작가, <그냥, 사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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