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손' '음란 단톡' '콘돔 거부'..우리는 노리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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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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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포트라이트-일상속 성차별] <3> 성폭력 노출된 여대생
교수님은'나쁜손' 동기들은'음란 단톡'
남친은 콘돔 거부…우리는 노리개인가요?
학점.논문.취업까지 영향력..교수'미투'익명으로밖에 못해
앞에선 친구 , 뒤돌면 품평..남자 동기들도 무서워
피임은 여자 몫이라며 연인끼리 최소한 배려도 없어
이화여대 재학생들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의 사무실 앞에 수백건의 '항의 포스트잇'을 붙였다. 포스트잇에는 '성범죄자 OUT' '방 빼자' '부끄러운 줄 아세요' 등의 내용이 씌어있다.
새 학기를 맞은 대학가에도 '미투(MeToo, 나도 말한다)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교수, 동기, 선배에게 성희롱.추행을 당했던 피해자들이 당시 경험을 폭로하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성인이 된 여대생들은 공공연한 성폭력에 노출되는가 하면 연인 사이에서도 강요에 의해 피임 없이 관계를 맺는 바람에 피해를 보기도 한다.

■단톡방 성희롱에 교수 성추행까지

28일 대학가에 따르면 미투 열풍 전에도 일부 남성들의 낮은 젠더 감수성을 드러낸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홍익대 남학생들이 단톡방에서 같은 학교 여학생을 대상으로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일부 남학생들이 동기 여학생의 춤 영상을 보고는 'X감으로 보내달라' 하고 수시로 여학생들의 외모 품평, 순위 매기기 등을 해왔다는 것이다. 또 한 여학생을 언급하며 '쟤랑 왜 사귀냐. 돈 줘도 안 사귄다' '옆에서 애교 떨면 하룻밤 자긴 좋지' 등의 발언도 일삼았다는 전언이다. 여학생들은 "그들(남학생들)을 진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를 성희롱 상대, 노리개, 안주거리 등으로만 생각했다"고 비판했다.

여학생들에게 실존하는 위협으로는 단톡방 내 성희롱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에는 교수로부터 당한 성추행을 폭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화여대 관현악과 학생들은 S교수가 소파에 학생을 눕히고 가슴과 가까운 부위, 허벅지와 종아리 등을 만지거나 속에 화가 많다며 명치를 눌렀다고 주장했다. 또 둘이 간다는 설명 없이 학생과 연주를 보러 간 뒤 학생의 손깍지를 끼고 놓지 않은 채 손을 빼려 하면 정색하거나 더 세게 잡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교수와 관련된 미투 관련 폭로가 나온 대학은 홍익대.이화여대뿐만 아니라 명지전문대.서울예대.서울시립대.연세대.서울대.제주대.가천대.세종대.한국외대.동덕여대.원광대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학생들은 학점.논문 심사뿐만 아니라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해서도 상당 부분 영향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교수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제 간의 갑을 관계와 학교 당국의 무관심이 교수들의 나쁜 손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처장은 "대학을 지성의 상아탑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드러나는 행위들이 대학에서도 이뤄져온 것이다. 이런 행위들이 별다른 비판 없이 교내 문화처럼 용인됐던 것"이라며 "미투 운동에 힘입어 잘못이 드러난 당사자는 학교가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다행히 요즘은 미투 운동 영향인지 새학기인데도 모두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피임 기피에 여성만 임신 걱정

요즘 갈수록 첫 성경험 시기가 빨라진다고 하지만 아직은 대학생이 되는 20대부터 성관계 경험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많은 남성들이 가장 간편한 피임 방법인 콘돔 착용을 꺼린다는 점이다. 사실상 반강요에 의해 성관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콘돔 사용률은 낮은 편이다. 지난해 박주현 서울대보라매병원 비뇨기과 교수팀이 발표한 '한국여성의 성생활과 태도에 관한 10년간의 간격연구: 한국 인터넷 성별 설문조사 2014'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콘돔 사용률은 11%에 불과했다. 연구진은 "한국 사회가 급속히 서구화되고 성평등 문화가 대중화됐는데도 유교에 기반한 가부장제 가족 문화가 깊은 뿌리를 형성해 임신과 출산, 피임은 여성의 책임이었다"고 지적했다.

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 총무이사인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이동윤 교수는 "피임을 함께 한다기보다는 '여성이 알아서 한다' '여자 몸은 여자가 알아서 지켜야 한다'와 같은 개념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며 "콘돔은 편의성도 뛰어나고 약물과 관련된 부작용 발생이 없는 데다 각종 성병의 전파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에는 '스텔싱(Stealthing)' 행위가 민감한 문제로 주목받고 있다. 스텔싱은 레이더 등에 탐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군사용 은폐기술인 스텔스에 빗대어 남성들이 상대방 몰래 콘돔을 제거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지난해 스위스에서는 스텔싱 행위를 한 남성에게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사례가 있고 미국에서도 이를 성폭력으로 규정, 처벌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스텔싱은 범죄입니다'라며 스텔싱을 성폭력으로 간주해달라는 내용의 청원글이 올라와 28일 현재 5000명가량이 서명에 참여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박아름 활동가는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성적으로 수동적인 존재여야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다. 적극적이면 문란한 여성으로 비난하는 문화 때문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콘돔을 쓰자고 주장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스텔싱도 합의한 방식의 성관계가 아닌 만큼 성폭력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스포트라이트팀 박인옥 팀장 박준형 구자윤 김규태 최용준 김유아 기자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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