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입장문은 정당 해산 투표 공지가 뜨기 이전 9월 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당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인천광역시당 전 위원장 조한결입니다.

   이것 참 현직이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전직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도 애매합니다. 지난달 시행되었던 제3기 여성의당 당대표&시도당위원장 동시 선출 선거가 당대표직의 후보자 없음은 물론이고 5개 시도당 전체 위원장직 또한 마찬가지로 후보자 없음으로 중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인천시당은 저의 직위를 넘겨드릴 차기 위원장도, 최소한의 직무대행 권한이라도 넘겨줄 수 있는 분도 안 계시기 때문에 현재 저는 매우 애매한 포지션으로 당무를 이어가고 있긴 합니다. 어쨌든 저는 여성의당에 대한 마지막 의리를 지키고자 당을 떠나지 않은 상태로 이 글을 적습니다.
 

   지난 8월 26일 금요일, 전국운영위원회 회의에선 정당 해산 결정을 위한 안건을 전국당원대회로 상정하는 의결이 있었습니다. 회의에선 9월 이내에 당원 토론회와 전국당원대회(당원 투표)를 모두 시행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회의 끝난지 벌써 일주일이 다 된 지금 시점까지도 여태 공식 발표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럴 만한 내부 사정이 있었긴 합니다. 관련한 내용은 아래에 더 자세히 쓰겠습니다.)

  중앙당 차원에서의 공식 발표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제가 이걸 절차상 엠바고를 지키며 가만히 있어야 할지, 아니면 엠바고고 뭐고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니 하루빨리 이 소식을 당원 여러분들께 전하여 해당 사안에 대해 최대한 논의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저라도 힘써야 하는 것인지 잠시 고민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사안이 워낙 중대한 만큼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든 최대한 여러 당원님들과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치열하게 논의를 가져야만 나중에 후회가 덜 남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 탓이 얼마만큼이고, 누구 책임은 얼마만큼이라 당이 해산을 논의해야만 하는 지금 이 지경까지 온 것인지에 대한 잘잘못 따지는 말은 일단 이 글에서 하지 않겠습니다. 개인적으로야 저도 우리 조직에 오래 있었으니 그만큼 하고 싶은 말도 차고 넘치는 사람입니다만, 그 얘기 꺼내자면 한도 끝도 없기도 하고 또한 현재의 급박한 상황에서 그러한 과거의 구구절절한 사정들은 논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1.
   간단하게 상황을 요약해서 말씀드리는 것부터 하자면, 우리 당은 지난달까지 총 3번의 당 대표 선거를 시행했으나 모두 후보자 없음으로 중지되었습니다. 앞선 2번은 2기 당직자 임기(중앙당 장지유 지명 공동대표 체제) 도중 시행되었던 보궐선거였고, 최근의 선거는 2기 당직자 임기를 마무리하며 시행했던 3기 당직자 동시 선거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3기 당직자 동시 선거에선 원래 3기 당대표와 3기 시도당 위원장들이 선출되었어야 마땅하나, 중앙당과 5개 시도당 전체에서 아무도 후보자로 등록한 이가 없었기에 선거가 중지된 것입니다. 

  선거 중지 이후엔 전국운영위원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을 위한 의결을 하고 비상대책위원장을 공개모집하였으나 이 시도 역시 지원자는커녕 한 통의 문의조차 없이 완벽하게 좌절되었습니다. 솔직히 너무나도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당대표 후보자도, 시도당 위원장 후보자도, 아무런 당직 지원자도 없는 이런 조직에서 누가 비상대책위원장을 해보겠다고 나서겠습니까?

  이에 저를 포함한 2기 당직자들은 모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그 와중에 몇몇 분들은 도저히 더는 못하겠다고 하차하시고) 안타깝지만 이제는 정말로 정당 해산 결정을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야만 하는 때가 왔음을 인정하고, 지난 금요일 전국운영위원회에서 해당 사안을 전국당원대회(당원 투표)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안건 상정을 의결하였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비상대책위원장 모집기한을 연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저는 우리 조직에 비전이 없는 것이 문제지 모집기한이 짧았거나 홍보가 부족한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원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비상대책위원장 모집기한을 더 연장한다고 해서 이 정당을 책임지고 유능하게 이끌 백마 탄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까?
 
 

 2.
  다음은 내부 상황 설명 드립니다.
  솔직히 저는 옛날 옛적부터 진작에 사임하고 떠나고 싶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당직자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정치와는 아무 상관도 업종에서 생계활동을 하는 일반 시민입니다. 제 평생 공직에 나서고 싶다는 욕망을 가져본 적도(저는 명예보다는 자유에 대한 욕구가 더 큰 인간입니다), 여성의당 창당 이전엔 다른 정당 근처에도 기웃거려본 적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여성의당 창당 의의에 깊이 공감하여 이 조직에 작은 보탬이나마 되고자 무명의 자원봉사로 나섰다가, 2기 선거에서 시도당 위원장 지원자가 아무도 없다기에 ‘답답하니까 나라도 뛴다’ 하고 출마하여 부족하게나마 어떻게든 당에 헌신하고자 애썼던 20대일 뿐입니다.

  예정되었던 임기가 다 끝나고도 인계를 받을 분이 없어 자리에 머물러야만 하는 지금 저도 이 상황이 괴롭습니다. 그냥 인수인계는 문서화하여 전달하고 ‘난 여기서 할 만큼 했으니 사고당부 지정을 하든 남은 분들끼리 알아서 처리해 주십시오’ 하고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물론 제가 그런 결정을 내린다고 한들 제게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모든 당직자 동료들도 지금쯤 마찬가지인 심경일 것을 알고 있으므로, 저에게 남은 마지막 의리를 박박 긁어모아다가 어떻게든 당원 투표 결론이 날 때까지만 버텨보자고 남아서 오늘날 여러분께 이러한 긴 글을 올리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부적으로는 더는 못하겠다며 떠나신 분들이 거의 절반, 이미 지쳐서 방전됐음에도 차마 그만두겠다는 말씀을 못하셔서 애매한 잠수 상태로 당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분들이 나머지 거의 절반입니다. 사실상 정당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비전도, 기능도 모두 잃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라도 남아 계신 분들을 탓하고 싶진 않습니다. 탓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훨씬 더 이전에 하차하신 분들도 수두룩한데, 현재 남아계신 분들만 탓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서둘러 여성의당에서 하차하고 현생에 집중하는 길을 선택하셨던 분들도 탓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당 혹은 그에 준하는 정치조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본래 정당이란 건 그 조직을 지지층 결집의 발판으로 삼아 공직 선거에서 당선되겠다는 야망을 가진 인물을 중심으로 꾸려지곤 합니다. 거대 정당의 경우 그러한 야망을 가진 인물들이 다수이기에, 그들끼리 치열한 당내 세력 다툼을 하면서 그곳 당원들을 기반으로 한 표심을 잡으려고 노력합니다. 소수 정당의 경우 별다른 경쟁 없이도 지난 선거에서 출마했던 사람이 다음 선거에서도 출마하고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정치 활동하며 자신의 이름을 홍보하고자 합니다.

  반면에 여성의당은 어떻습니까. 초기에 이 조직을 세웠던 창당 주축 세력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이곳엔 저처럼 ‘그래도 이 나라 대한민국에 여성의당이 존재했으면’ 하는 마음에 모였던 불특정 다수의 일반 시민들만이 당직 구성원으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일반 시민들이 십시일반 일손을 보태고 온라인으로 당의 운영에 대한 여러 의견을 모은다고 한들, 정당이란 조직은 선두에 서서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내놓고 이를 본업으로 삼아 활동하는 사람이 없으면 굴러갈 수가 없습니다. 선거 레이스와 같은 단기적 상황에서야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일손과 자금을 보태는 게 큰 도움이 될 수야 있겠지만, 공직 선거에서의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지지율을 보유하여 정당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여성의당의 운영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조직은 한국 정치계에서도 유독 배척과 멸시를 받는 모서리에 자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 모서리에 자신의 커리어를 걸어보고자 했던 인물들이 이제 더는 이곳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정당은 선거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잖아요. 선거에서 우리와 뜻이 맞는 사람을 당선시키기 위해 모인 이들의 조직이 정당입니다. 그런데 여성의당의 이름으로 공직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치 활동을 하겠다는 인물이 아무도 없는 현재의 이 당 상태를 멀쩡한 정당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까? 아, 여기서 혹시 ‘그냥 선거 없는 비수기에는 어떻게든 숨만 쉬고 버티면서 선거철에라도 누군가 나타나길 기다려보는 게 어떻겠냐’는 발상을 품어보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평시에는 여성의당 운영에 통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가 선거철에만 나서겠다는 인물이 혹여나 있거든, 그이는 그저 선거를 이용해 자신의 인지도를 올려 페미니스트 시장에서 수익을 짜내보겠다는 구린 의도를 가진 작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정당 구조와 관련된 규정의 특성상, 정당은 일반 시민들 몇 명만으로 유지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나라엔 수많은 페이퍼정당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곳들은 우리 정당과는 이해관계 자체가 다르므로 논외로 하겠습니다.) 따져서 지켜야 하는 관계법이 많고, 분기마다 예산과 결산을 살펴야 하는 조직이 필요하며, 또 그 심의 검토한 내용을 승인 의결할 수 있는 전국운영위원회라는 조직도 필요하고, 최소한의 5개 시도당이 존재해야 하며, 각 시도당이 1,000명 이상의 당원들을 보유해야 하고, 무엇보다 이 모든 업무처리를 책임지고 이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각 조직에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가능케 하는 조직들도 거의 와해된 상태고, 계속 남아서 업무를 지속하길 희망하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당원 구성원 중 청년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정당이지만 이를 대변하여 이곳에서 꿈을 키워나가겠단 청년 대표도 더는 없습니다. 누구나 인생은 한 번뿐인데, 어느 전도유망한 청년이 자신한 귀중한 젊은 시절을 안될 게 뻔한 게임에 걸고 싶어 하겠습니까? 침몰하는 배에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요. 말하자면 이제 여성의당은 꿈이 없는 정당, 가능성 없는 정당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3.
  규정과 절차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당헌 제3장(조직) 제1절(전국당원대회) 제11조(권한)의 1항에 따라 ‘당의 합당과 해산에 대한 결정’의 권한을 갖는 주체는 전국당원대회입니다. 이 전국당원대회는 당의 최고의결기관이며, 투표권을 갖는 권리당원 여러분을 뜻합니다. 규정에 따르면 전국당원대회에서의 의사결정은 현장투표와 온라인 투표로 하는데, 우리 정당은 현장투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작은 정당이니 의사결정은 100% 온라인 투표로 합니다. (투표 방식 등에 필요한 세부사항은 당규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것이 규정 위반인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동조 3항에 따르면 ‘당의 합당과 해산에 대한 결정’의 의결을 위해선 권리당원 대상으로 한 토론 및 투표를 사전에 시행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정당 해산 결정을 위한 절차는 『①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의결하여 전국당원대회로 해당 안건을 상정, ② 권리당원 토론회, ③ 권리당원 온라인 사전 투표, ④ 전당대회 개최하여 의결 선포』의 총 4단계를 거쳐 진행되며, 현재 1단계를 통과하고 중앙당에서 토론회와 투표일 등의 일정을 확정하고 선거 시스템 사용을 위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문의 등의 실무 준비를 하는 중입니다.
 
  여기서 당원 여러분께서 염두에 두셔야 할 점은 우리 정당의 권리당원 기준에 대한 내용입니다. 당헌 제2장(당원) 제6조(구분 및 당비)의 1항에 따르면 여성의당은 권리당원을 ‘6개월간 직전 3개월’을 당비 납부한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9월 중으로 예정된 전국당원대회 투표권을 가지는 권리당원은 직전 3개월인 6,7,8월에 당비를 납부하신 분들만 인정됩니다.


  기억력이 좋은 분들이라면 과거 언젠가 6개월 중 3개월 납부가 꼭 연속되지 않아도, 예를 들어 3,5,7월에만 납부했었다면 9월에 투표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실 겁니다. 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드립니다.

  본래 창당 초기에 제정했던 당헌의 원안은 6개월 중 직전 3개월이 맞습니다. 그러다가 창당 원년 후반기에 전국운영위원회에서 ‘해당 조문이 당원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나와 이를 개정하기로 의결했고, 전국당원대회 개최 이전까지 임시로 적용하여 시행했던 것입니다. 사실 규정을 엄격하게 따져보자면, 당헌 개정의 권한은 전국당원대회가 가지므로 전국운영위원회 단독 의결만으로는 당헌 개정의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이기에 이것이 그리 적법한 결정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만 당시엔 조속한 전당대회 개최가 실무적으로 어려웠던 와중에 조금이라도 당원들의 투표권을 보장하고자(진입장벽을 낮추고자) 그러한 정무적 선택을 했던 것이고, 당내에서도 달리 이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지난 4월 23일에 (마침내) 개최되었던 전국당원대회의 사전 투표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당헌 개정 안건이 상정되었으나, 투표율 미달로 인해 가결되지 못하여 원안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투표권을 가지셨던 권리당원 여러분께서 투표 참여를 하지 않아 이리 된 것이니 어쩌겠습니까. 물론 당시 개정 발의안을 잘못 안내했던 이슈로 인해 재투표를 시행하며 혼선을 빚게 되어 당원 여러분의 분통을 터뜨리게 만들었던 점, 유권자 중 상당수가 해당 조문의 실질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여 개정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당내 여론이 형성되지 못했던 점이 치명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여성의당의 수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고 생각합니다. 중앙당은 정당 실무에 부족함이 많았고, 전국운영위원회에서는 다들 기력이 쇠한 이들만 남아있는지라 누구 하나라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당헌 개정의 취지를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하려는 성의를 보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9월 내에 정당 해산의 결정을 당원 투표에 부치자고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의결한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중앙당에선 아직도 공지를 올리지 않았고 전국운영위원회에선 결의문 한 장 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까 낮에 전국운영위원회 방에 전운위에서 결의문을 내는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고 기다렸으나 대부분 메시지 자체를 읽지를 않으시네요. 그래서 포기하고 혼자라도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편, 전국운영위원회에서 해당 사안에 대한 당원 투표를 9월 내에 시행하자고 의견을 모았던 것은 바로 이 권리당원 기준 때문입니다. 당원 투표가 10월로 늦춰지게 된다면 시간적 여유가 생기게 되니 그동안 당내에서 보다 논의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져볼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되면 7,8,9월에 당비를 납부하신 분들만 투표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 대부분은 정당 해산 관련 공지가 뜨면 크게 낙심하여 그 길로 당비 납부 중지 버튼을 누르시거나 혹은 과감하게 탈당을 결심하시겠죠? 제가 다 압니다.

  그러니 예측대로라면 당원 투표가 10월로 넘어가거든 유권자 규모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그땐 정말 허울뿐인 빈약한 당원 민주주의에 의해 여성의당의 운명이 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것보단 지금까지 당비를 납부하며 계셨던 모든 분들이 다 함께 의결권을 나눠 갖는 쪽이 더욱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러니 가실 때 가시더라도 조금 기다리셨다가 해산 투표는 하고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쪽이나 저쪽이나 딜레마가 없진 않습니다. 더 이상 최선도 차선도 선택하지 못하고, 최악과 차악 중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 현실이 오늘날 여성의당의 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 덧붙여, 앞에서도 말씀드렸던 대로 당헌 규정에 따라 당원 토론회의 참여 자격은 권리당원에게만 주어집니다. 아직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
  앞서 언급했던 중앙당에서 해당 사안 관련 공지 업로드가 늦어지는 건 지난주 사무총장 사임으로 인해 한 주 내내 중앙당에선 사무총장 업무 인수인계 진행하느라 여력이 없었다는 사유입니다. 사무총장 후임자는? (예측 가능하게도) 없습니다. 또다시 공석입니다. 저도 이러한 상황이 답답하고 지금까지 우리 당의 업무 진행 사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오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던 적이 없지 않았습니다만, 어쩌겠습니까.

  냉정하게 평가해서 제가(정치 경험이 전무하고 출마 당시 학부 재학생이었던 그냥 일반인) 저희 인천광역시당이 선택할 수 있던 유일한 선택지이자 낼 수 있었던 최대의 아웃풋이었던 것처럼, 무려 3번이나 후보자 없음으로 선거를 중단시켰던 우리 정당의 유일한 선택지이자 최고의 아웃풋이 바로 현재의 당직자들입니다. 3번의 선거 이후 비상대책위원장 모집까지 합해 총 4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만일 답답해서 못 참겠다 하시는 분이 계셨더라면 그때 직접 나서서 뛰셨어야 합니다.
 
  마냥 낙관적으로 ‘무언가 좋은 터닝 포인트의 기회가 어디선가 날아오지 않을까’ 기대하기엔 당내에 그나마 남아 있는 인력들의 완전한 소진이 곧 목전에 닥쳐와있는 상황입니다. 당외 상황을 살펴보더라도 페미니즘 제발 좀 죽어달라고 고사 지내고 있는 현 정권에서 현실적으로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와 기대가 현 정권에 대항할 수 있을 만한 정치적 능력을 갖춘 후보자 세력으로 쏠리는 것은 양당 체제의 국내 정치 판도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니,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여성의당이 기적적인 지지율을 얻어 원내에 입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희박합니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이건 버틴다고 버텨지는 전망이 아닌 것 같습니다.

  괜히 우리 손으로 직접 해산 결정을 투표하는 게 마음 아프다고 해서, ‘나 아닌 누군가 나서서 여길 어떻게든 해주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미적거렸다간 그나마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기회마저 날리고 지금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열릴지도 모릅니다. 여긴 익명의 페미니스트 조직이 아닌, 실물 명부가 존재하는 실명제 정당입니다. (최악의 가정 상황입니다만) 당원 여러분 중 대부분이 탈당하시거나 당비 납부를 중지하시고 현재 남아있는 당직자 인력들마저 다 사라진 후,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중앙당에 들어와 자리하고 있다가 그 1인분의 당직자 임금마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잔액을 다 소진시키고 당외에서 얼마간의 금액을 받고 당원 명부를 팔아넘기는 일이 결코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정당은 규정상 탈당 인원 명부도 폐기하지 않고 별도 보관합니다.) 여성의당 당원 명부라면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페미니스트 집단 구성원의 실명, 생년월일, 연락처, 거주지가 기재되어 있는 문서입니다. 그게 범죄를 작정한 특정 안티 페미니스트 세력에게 얼마짜리 값어치를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토록 백래시가 극심하고 제2의 N번방까지 등장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 미쳐 돌아가는 시대에 딥웹 등지에서의 그런 암거래의 발생이 그리 상상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요.

  얼마 후 당원 토론회가 개최되고 이어서 당원 투표가 시행되거든, 저는 여러분이 우리 정당의 마무리를 책임지는 쪽을 선택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회생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당연히 그 길을 도모해보는 것이 좋겠지만, 그 회생의 가능성을 도모할 정치적 주체가 부재한 상황에선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고 정리하는 것이 조직을 책임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의당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저 역시 알고 있습니다. 창당하고 3년도 되지 못해 이렇게 자발적인 해산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의의와 현실적 한계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여성의당이 필요하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여 이렇게 창당했고 전국 20만 표라는 뜻깊은 성과를 얻었던 것까지는 성공한 정치혁명이었다고 기록할 수 있겠지만, 더는 혁명을 완성할 능력과 의지를 가진 주체가 없으니 이는 미완의 혁명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과거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포함하여 역사 속 인간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많은 조직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결사하기도, 해산을 결의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의당이 지금 여기서 마침표를 찍는다고 한들, 그것이 여성 정치의 종말이라는 닫힌 결말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 모두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부디 지금 남아있는 저희 당직자들이 이를 행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훗날 우리가 직접 여성의당이라는 국내 첫 여성 정치 세력화 시도에 대해 충분한 거리를 두고 그 의의와 한계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미래에 현 정당의 의의를 이어받는 후신의 정치조직을 세울 수 있도록 오늘의 선택을 내려주십시오.

  끝으로 저는 이러한 결정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 각자 의견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것을, 어쩌면 끝까지 당내 의견 합치를 이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되든 당원 여러분의 뜻을 존중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결말을 맞게 되든 그것이 우리 정당 구성원의 안전함을 보장할 수 있는 선택이기를, 지속 가능한 여성 정치를 위한 가장 나은 선택이 될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2022년 9월 3일 조한결 올림

여성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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