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러라는 단어는 어떻게 만들게 되신 건가요?"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사용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N잡러라는 단어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냐고요. 재미 반, '나의 상태를 다른 이름(예를 들면, 투잡족)으로 설명하기엔 좀 부족하다'는 생각 반으로 만든 것이 N잡러라는 단어라고 대답을 하곤 했어요. 그런데 최근엔 이렇게 시작한 단어가 지금의 N잡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록 덕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개의 회사를 어떻게 넘나들며 일할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메모를 한 것이 기록의 시작이었어요. 제게는 '힘든 것 같다'는 감각을 넘어서 무엇이 저를 힘들게 만드는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당연하게도 이걸 저 말고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매일의 업무와 감정, 그리고 일이 끝나고도 일 생각이 계속 나는 상태가 왜 지속되는지 매일의 인사이트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늘 가지고 다니던 수첩에 간단히 적다가 일기처럼 브런치에 비공개('작가의 서랍'에 넣어두었어요)로 정리해보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프리랜서나 투잡족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을 발견했고, 제 일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N잡러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내 일에 이름을 붙이고, 실험이 끝날 때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을 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 개인적으로 회고를 하면서 한 주의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매일 팀과 공유하는 업무일지와 회고를 통해 매일의 성취를 확인하기도 하고, '나만 하는 경험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경험을 하면 일기를 썼어요.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을 때는 이 일기를 브런치에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이걸 통해 더 많은 기회, 그리고 새로운 기록의 방식(인터뷰나 팟캐스트 출연)과 연결되기도 했어요.

N잡러라는 단어는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제 일의 과정과 동료들과의 대화, 거기서 얻는 인사이트를 기록하고, 내가 하는 이 일이 어떤 맥락을 가지고 이어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설득 시켜 가면서요. 기록은 현재를 정리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기반으로 미래의 나를 상상할 수 있게, 때로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스스로 선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기도 했어요. 기록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만들어 놓은 N잡러라는 단어는 금방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빌라선샤인의 다음 시즌 주제는 '기록: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한 시대에 내가 나일 수 있는 힘, 그리고 미래의 나를 함께 상상할 힘을 '기록'이라는 주제를 통해 함께 생각해보려고 해요. 저 역시도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메모장과 브런치를 다시 열어보려고요. 아마도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뉴먼들의 다양한 기록들을 보고, 나의 것을 기록하면서, 불안보다는 기대를 더 가지게 되는 한 시즌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함께 기록하고, 서로의 참조점이 될 동료들을 기다리며,

홍진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