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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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의 역사는 오래됐다. 고대 이집트와 중국 은나라에서 진귀한 짐승을 가둬 기르는 동물원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적 의미에서는 오스트리아 빈 쇤브룬 궁전 동물원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으로 꼽힌다. 1752년 프란츠 1세 황제가 황후를 위해 만든 황실 동물원이었다. 한국에서는 1909년 개원한 창경원 내 동물원이 처음이다. 일본은 순종의 처소인 창경궁에 코끼리·사자·호랑이 등을 들여와 궁궐의 모습을 바꿔버렸다. 망국의 뼈아픈 설움이 담긴 동물원이다.

동물원은 단순한 동물 관람뿐 아니라 멸종위기에 처한 종의 보존과 교육, 과학적 연구의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동물에게도 복지와 권리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각종 고통에 시달린다는 학대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2012년 서울대공원은 돌고래쇼와 홍학쇼, 바다사자쇼를 차례로 폐지했다. 2013년에는 서울대공원 해양관에 있던 남방큰돌고래 태산이와 복순이를 바다에 방류한 바 있다.

엊그제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퓨마가 우리를 탈출했다가 사살됐다. 사육사가 우리를 청소한 뒤 뒷단속을 소홀히 한 게 화근이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등엔 “꼭 사살했어야 했느냐” “퓨마가 불쌍하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참에 동물원을 없애 달라는 청원이 오르고 수만명이 동참했다.

퓨마는 고양잇과의 육식동물이다. 치타·재규어·표범이 다 고양잇과 사촌들이다. 시속 80㎞ 속도로 달리고 한 번에 5.5m 나무로 뛰어오르는 점프력을 갖고 있다. 동물원 바깥으로 나갔으면 무슨 불상사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실수를 그의 탓으로 돌린 데 대해 측은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이낙연 총리는 트위터에 “생포하기를 바랐지만 현장 판단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안타깝고 송구스럽다”고 했다. 시민에게 한 얘기이겠지만, 퓨마에게 그대로 전해도 될 것 같다. 어느 동물원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이란 팻말이 달린 우리가 있길래 가보니 거울이 놓여 있더라는 일화가 있다. 무서운 건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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