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고양이에 맡긴 그린벨트 생선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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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구찬 논설위원
개발·보존가치 이해상충 불구
국토부 독주 견제장치 없어
내셔날트러스트식 기금화하고
관리·해제권한 이관 검토해야

[서울경제] 9·21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 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이 담긴 것은 조금 뜻밖이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던 정부가 아닌가. 30만가구 공급 계획은 앞서 발표한 ‘9·13대책’에서 예고했지만 100만평 규모의 신도시 4~5개 건설은 분명 깜짝 카드다.

국토교통부가 30만가구를 짓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10년 정도의 장기 계획을 토대로 수도권 변두리에 숫자 꿰맞추기 정도 아닐까 생각했다. 1년 전 ‘8·2대책’이 발표됐을 때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의 설명을 떠올리면 그렇다. 참여 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를 설계한 김 수석은 “최근 3년간 단군 이래 최대로 주택이 공급됐다”며 공급병행론을 일축했다. 그는 “불이 나 진화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 자리에 집을 짓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며 “지금은 불을 끌 때”라고 강조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기름을 끼얹겠다니.

더 놀라운 것은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집착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공급 확대책을 발표하면서 직권 해제 가능성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김 장관은 “(서울시와) 협의가 잘되지 않으면 우리 부의 물량을 활용할 것”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김 장관이 솔직한 입장을 밝힌 것은 좋다만 나가도 너무 나갔다. 그는 경기도 그린벨트만 풀고 서울은 안 풀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했다. 3기 신도시에 반영될 경기도 그린벨트 ‘독박’ 해제는 곤란하다는 것인데 참으로 편리한 잣대다. 뒤집어 얘기하면 서울이 안 된다면 경기도도 불가하다는 말인가.

그린벨트가 언제까지 죄다 성역일 수는 없다. 도시와 도시의 연담화를 막을 완충 녹지로의 기능이 충분하다면 보전하되 그렇지 않으면 재산권 제약을 풀고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순서다. 앞선 세대가 남겨준 땅이라면 그 활용은 보전과 관리의 분명한 청사진이 나온 후에 검토하는 것이 순리다. 치밀하고 담대한 활용 계획이 없다면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차라리 낫다. 주택 부족은 없다고 하더니 돌연 역사의 유물이 된 신도시 카드를 꺼내 들지 않나 그린벨트를 풀겠다지 않나 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국토부는 서울 용산에 일부라도 임대주택을 짓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 단칼에 안 된다고 했다. 주한미군 기지라는 역사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린벨트는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감 해소를 위해 풀어도 되고 용산은 안 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지방분권과 적폐 청산을 내건 이 정부는 뭔가 다를 줄 알았다. 참여 정부 집값 폭등 때 판교와 파주 등의 2기 신도시를 조성했지만 서울 그린벨트는 손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서민주택 건설에 필요하면 그린벨트도 활용하겠다고 공약하기는 했다. 그래도 이렇게 쉽게 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꺼내 들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적어도 관리 방안을 수립하고 그에 맞춰 해제 방안도 체계적으로 마련될 것으로 기대했다. MB 정부 시절 보금자리를, 박근혜 정부 때 뉴스테이를 각각 구실로 콘크리트숲으로 바꾼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20년 전 DJ 정부가 전국의 그린벨트를 일괄 해제할 당시 온전히 보전한 땅이라면 그만 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현 정부가 전 정부처럼 그린벨트를 파헤치면 차기·차차기 정부에서도 훼손하지 못할 명분이 없다.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파먹다 보면 도시의 허파가 사망선고를 받는 것은 시간문제다.

역대 정부마다 삽질하면서 생채기를 내다보니 남은 땅조차 보전가치가 저절로 낮아졌다. 편리한 해제 구실이 생기는 것이다. 더 이상은 곤란하다. 조자룡이 헌 칼 쓰듯 함부로 해제권을 휘두르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내셔널트러스트운동 같은 기금화 정책이 필요하다. 땅값 차익에서 나오는 개발이익금을 그린벨트 관리 및 보전에 전액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함부로 해제하지 못한다. 개발부처인 국토부에 그린벨트를 맡겨야 하는지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거덜 내기 전에 말이다.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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