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소환된 아버지의 기억
지금을 읽고 싶은 사람들의 미디어 이야기, 어거스트

안녕하세요. 에디터 식스틴입니다.


얼마 전 제 마음 깊이 새겨진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애프터 썬⟫입니다. 11살 여자아이와 31살 아버지의 여름휴가를 담은 영화 ⟪애프터 썬⟫은 2023년 탄생한 가장 아름다운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심지어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 오늘의 에디터 : 식스틴
아름다운 영화를 보면 일주일이 즐겁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1. 사연 없는 집은 없다
2. 사연이 담긴 얼굴. 영화 <애프터 썬>
🏠 사연 없는 집은 없다
(출처: Unsplash)

고등학생 시절, 시골에 위치한 기숙학교를 다녔습니다. 마을에 하나뿐인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가 230분에 한 대씩 정차했습니다. 그 정도로 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이 시골 마을은 이 작은 학교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작은 공동체였던 것이죠. 


기숙학교의 특성상 학생들은 기쁘고 슬픈 일들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싸우기도 하며 마치 형제와 같은 정을 나누었습니다. 서로의 약한 점들을 고백하고, 비밀스러운 가정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는 폭력, 거짓, 불륜, 희생이 들어있었고 비극의 소재는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들은 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며 고등학생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사연 없는 집은 없다’고들 합니다. 사연은 사건을 계기로 해서 만들어집니다. 사연은 영어로 story로 번역되고 한문을 풀어쓰면 ‘일의 앞뒤 사정과 까닭’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사연은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는 내러티브입니다. 사건은 내 몸과 마음에 새겨져 사연을 만들죠. 우리가 꺼낸 비밀스러운 가정사들 그러니까 폭력, 거짓, 불륜 그리고 희생의 사건들은 우리에게 새겨져 사연이 됩니다.

🌅 사연이 담긴 얼굴. 영화 ⟪애프터 썬⟫

<애프터 썬> 1차 예고편

영화가 시작되자 누군가가 찍어 놓은 불특정한 캠코더 기록들이 상영됩니다. 캠코더를 들고 녹화 중인 것처럼 보이는 장면들. 캠코더를 들고 있는 것은 여자아이인 듯합니다. 아이는 한 남자를 찍고 있습니다. 이 남자를 향해 질문을 던집니다. 


“아빠가 11살 때는 어떤 사람이 될거라고 생각했어?”


11살 여자아이와 31살 아빠의 여름휴가 이야기 ⟪애프터 썬⟫. 소피와 그녀의 아버지 캘럼은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튀르키예에 도착했습니다. 화려한 휴가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값싼 패키지여행이 분명해 보이는 관광버스는 소피와 캘럼을 3성급쯤 되어 보이는 리조트에 내려줍니다. 리조트에는 조악한 워터파크, 디너쇼 등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소피의 부모는 소피가 어렸을 때 이혼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소피와 캘럼은 이번 여름휴가처럼 비정기적으로 만나는 듯합니다. 


영화 ⟪애프터 썬⟫은 소피와 캘럼의 튀르키예 여름휴가를 기록한 영화입니다. 영화에는 반복적으로 캠코더 기록물들이 등장하는데, 어느 때는 아빠 캘럼이 캠코더를 들기도 또 어느 때는 딸 소피가 캠코더를 들기도 합니다. 영화는 캠코더의 기록물들과 함께 튀르키예의 한 리조트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부녀를 조망하듯 비춥니다.

⟪애프터 썬⟫ 2차 예고편

영화의 분위기는 잔잔하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은 그 반대일 듯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전, 마치 제가 그들의 곁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무미건조하지만 분명한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캘럼의 표정을 살피고, 오랜만에 만난 아빠가 신경 쓰이는 소피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숨죽여 집중하게 됩니다. 마치 어렸을 적 엄마, 아빠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신경쓰는 아이처럼 말이죠. 


영화는 캘럼이 처해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지만, 관객은 그가 삶에 허덕이고 있다는 점은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아빠가 11살 때는 어떤 사람이 될거라고 생각했어?”라는 소피의 질문에 캘럼은 답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캠코더를 치우라고 답합니다.


영화 ⟪애프터 썬⟫ 속에는 ‘사건'이 없습니다. 사건은 이미 일어난 뒤죠. 소피와 캘럼에게 사건은 이 둘이 헤어지게 된 일, 부부의 이혼일 것입니다. 이 사건은 소피와 캘럼에게 사연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소피와 캘럼 부자는 계속해서 카메라를 통해 상대의 얼굴을 기록합니다.


영화는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사건을 통해 생긴 사연이 담긴 그들의 얼굴을 비춥니다.

출처 : 씨네21

영화 ⟪애프터 썬⟫은 스코틀랜드 출신 감독 샬롯 웰스의 데뷔작으로, 감독이 실제로 겪었던 아버지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감독의 사연은 스토리가 되어 영화로 새겨진 것이죠. 사연 없는 집이 없는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날 하나쯤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건을 중심으로 쓰여지지 않은 영화 ⟪애프터 썬⟫은 관객들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것도 같습니다. 사건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 후 스스로 어떤 사연을 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요.


영화는 칸 비평가 주간을 통해 처음 관객들과 만났고 현재는 독립예술 영화관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씨네21 전문가 평점의 평균 4.5 점에 이르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출처 :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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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식스틴>의 코멘트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처음 알려진 작품 ⟪CLOSE⟫. 루카스 돈트 감독의 두번째 장편 영화는 청소년 주인공의 성적 정체성, 혼란을 아름답고 유려하게 표현합니다. 2022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작 ⟪CLOSE⟫는 이번달부터 국내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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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by  Zoe • 한새벽 • 구현모 • 후니 • 찬비 • 구운김 • 식스틴 •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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