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창과 깍지를 껴주는 너희를 부른다는 것

〈잃어버린 외장하드를 찾는 이상한 모험〉

복기하자면 그랬다. 나의 청소년기와 그 안의 애틋한 친구들은 가늠을 딱히 예습하지 않았다. 하려 들지도 않았다. 우리의 울대를 열렬히 두드리던 노래, 야간 자율 학습을 빼고 코가 찡긋거릴 만큼 시고 달고 약간은 떫게 놀던 심야. 그들과 있으면 우려가 낄 겨를이 없었다. 무모한 놀이와 순서여도, 아무도 앞서 무모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친구가 나의 유일한 심지였고, 끝이었고, 진득하게 사랑하던 당시가 그립기도 하다. 〈성적표의 김민영〉을 보면서 처음 운 장면도 친구들이 점프하고, 엉켜가며 노는 신이었다. 영화엔 우리의 유쾌가 철저히 우리로부터 작동하던 시절이 잘 녹음되어 있다. 민영, 정희, 수산나 덕분에 그때의 왁자하던 마음으로 나도 잠시 입장할 수 있었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정희의 시점으로 삼행시 클럽을 소개한다. 결연히 운을 띄우고 응원해주던 습작 모임은 수능으로 인해 해체가 선언되고, 이후에도 재개는 어려워진다. 정희는 수산나와 민영의 사이에서 무엇의 운이라도 다시 트게 하고픈 인물이다. 이에 정희라는 인물의 성정이 튼튼한 구심점이 된다. 정희는 시절에만 여과되는 사이로 남지 않도록, 왜 꺼끌거리는 마음이 앞서는지 친구의 불순을 들으려 애썼다. 정희는 최선을 다한다. 공간에 상상력이 있었으면 한다는 테니스 왕자(정일)의 말에, 트리 장식을 욱여넣어 온다. 민영의 방에 초대되자 교내에선 하지 못했던 민영의 소망을 지켜주고자 다 싣는다. 경단 떡을 굴릴 햇반과 고무 동력기와 퍼즐까지. ‘너’의 갈증을 모아 기꺼이 화답하는 정희만의 방식이 무척 귀여웠다. 이 영화는 우리가 간직해온 장래 희망을 일일이 꼽아가며 ‘알아준다’. 그것도 섣부르지 않게, 쌀을 동동 굴려 빚는 정도의 조심스러운 세기로 말이다. 정희의 손짓을 가만히 내 마음에서도 굴려보다 생각난 영화가 〈잃어버린 외장하드를 찾는 이상한 모험〉이었다.

〈잃어버린 외장하드를 찾는 이상한 모험〉은 미숙이 친구인 이 감독의 노란 외장하드를 방에서 잃으면서, 방을 샅샅이 뜯길 거듭하는 영화이다. 아무리 잰 몸짓으로 숙이고 복기해도 발견되지 않는다. 심지어 안에 든 영화가 이 감독의 보증금과 대출까지 포함된 것임을 알게 된 미숙은 이를 깍 깨문다. 이 영화는 염려를 유쾌하고 속도감 있게 등장시키다가, 미숙이 벽에 난 구멍으로 낙하하는 기점으로 느린 숨을 고른다. 그곳은 ‘잃어버린 세계’였다. 누끼를 딴 듯이 방에서 흘린 사물들이 매달려 있었다. 의외로 미숙이 기념품으로 받아온 건 〈은행 강도의 최후〉라는, 본인이 집필한 각본이었다. “직관을 믿어라!” 문구가 쓰인 각본을 얼결에 받아든 미숙은 그 세계로부터 퇴장한다. 이어 외장하드의 백업을 무사히 끝내 이 감독에게 준다. 동시에 “나 다시 영화할까?”라는 질문도 사과를 깎듯 도르르, 올린다. 이 감독은 미숙의 영화에 평해졌던, 삐로로 처리된 욕을 나열한다. 그럼에도 나는 좋았다고, 그건 ‘너만 할 수 있는 영화’라고 미숙의 영화에 멋진 네임택을 달아준다. 난 그것이 이 감독이 잘 곳이 없다는 단일한 이유로 한 아양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무 솔직해서 귀가 얼얼하게 밉기도 하지만, 나의 소망을 막연하지 못하게 쥐여주는 친구. 아무래도 폐기할 수 없던 열망의 봉합을 죄 뜯어주는 친구. 그들을 시절로부터 호명해오고 싶다면 〈성적표의 김민영〉과 〈잃어버린 외장하드를 찾는 이상한 모험〉을 관람하길 바란다. 당신의 정희와 이 감독이 등을 팡! 두드리며 농담을 걸 것이다. 분명히!

인디즈 김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