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여당의 그린벨트 '내로남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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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현 정치부 차장


'제 집에 마당이 생긴 건 박정희 대통령 덕분입니다.'

2016년 7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앞선 4월 재·보선 패배 이후 당시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문(親文)계와 비문(非文)계가 내분을 거듭할 무렵이었다. 당내 인사들과 두루 교분이 깊은 4선(選)의 원 의원은 문 대표를 비롯한 의원 70여 명을 경기도 부천 자기 집에 불러 모아 '화합' 만찬을 열었다. 그런데 일각에선 '70여 명이 모여 만찬할 수 있다니 얼마나 대궐 같은 집이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그러자 원 의원은 "산 중턱에 있는 20여 평의 흙집이고 마당이 있을 뿐"이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집은 크지 않지만 앞에 마당이 있는데 이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장 잘한 일이라 할 수 있는 그린벨트 정책 덕분"이라며 "원래 제 집 뒤쪽의 산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다"고 했다. 이어 "제가 학생운동으로 강제 징집당한 직후 그린벨트 말뚝이 집 아래로 내려왔는데 결과적으로 팔 수도 없고 개발도 안 되는 땅이 되어 집 앞에 좋은 마당이 생기게 됐다"고 했다. 민주화 운동 세력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탄압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면서도 그린벨트 정책만큼은 '잘한 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듯 민주당은 야당 시절 그린벨트 옹호에 관심이 많았다. 진보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환경'인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현 정부 들어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을 지낸 김진표 의원은 과거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 주택' 정책에 대해 "그린벨트를 풀어 30만 가구를 짓는다는 게 정부가 주장하는 '녹색 성장'이 아니라 '포클레인 성장'이란 비아냥이 있다"고 했다. 현 국토교통부 장관인 김현미 의원은 2014년 국회에서 '박근혜 정부 규제 개혁 진단' 토론회를 개최했고, 이 자리에서 참여연대는 역대 정부 규제 철폐 '워스트(worst·최악) 11'로 그린벨트 규제 해제를 꼽았다.

그러던 민주당이 정권을 잡자 이젠 당·정·청(黨政靑) 한목소리로 서울 근교뿐 아니라 시내에서도 그린벨트를 해제해 택지를 확보해야 한다며 태도를 바꿨다. 서울시는 반대 방침을 고수하고 있지만 힘이 부쳐 보인다. 현 정권을 지지한 환경 단체들도 "그린벨트 추가 해제는 정부 역할 포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린벨트를 훼손하지 않고도 택지 공급을 늘리는 방안은 많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린벨트가 '신성불가침'은 아닌 만큼 어느 정도 탄력적 운용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집값 잡기에 정신이 혼미해져 스스로 강조해온 후손에 대한 의무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지층마저 비판하는 또 하나의 '내로남불' 사례 같아 안타깝다.

[최승현 정치부 차장 vaida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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