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들 합니다. 당신의 삶에 희망과 영감을 주고 동기부여 시켜주는 기분 좋은 말인 것은 맞지만아무나 영화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현실에선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현실 감각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칭호가 붙습니다다른 말로는 철없는 사람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놈영화 많이 보더니 내 그럴 줄 알았지현실 감각 잃고 영화 감각만 얻은 애.. 쓰다 보니 전부 제 이야기였네요첫글이니만큼 자기소개로 글을 시작해보려 했습니다안녕하세요이 글의 주인공 김철홍입니다.

 

[NO. 001]


주인공은 아무나 하나


2022년 3월 5일

 

김철홍은 그렇지만 이제는 현실 감각을 조금은 보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나이를 먹으며 세상의 진짜 주인공들을 여럿 목격해가면서어쩌면 나는 주인공이 아닌 것일지도..? 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된 상태에 있습니다아니 어쩌면 그 사실을 어느덧 인정해버린 걸지도 모릅니다어느덧인정해버렸다는 것이 무엇보다 슬픕니다뭔가를 크게 실패한 뒤 훅 깨달은 것도 아니고그냥 살다보니까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요마치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사실을 언제 깨닫게 되었는지를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산타클로스 얘기하니까 생각난 건데 제 엄청난 비밀 얘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누구한테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긴데 감사한 구독자 여러분께 첫 공개하는 겁니다..? 저는 엄마 이메일 계정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언젠가 엄마가 아빠에게 보낸 메일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저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을 중국 연길에서 보냈는데요마지막 1년은 아빠 홀로 한국에서 기러기를 하셨는데그땐 국제 통화도 비싸고 그래서 메일로 자주 안부를 전하곤 했고근데 엄마는 컴퓨터와 키보드가 익숙지 않아서 제가 대신 이메일을 관리했었던 것입니다.(= 비밀번호 알고 있었던 이유)

 

물론 그렇다고 매일 이메일을 들여다봤던 것은 아니구요잊고 지내다 나중에 스무 살도 넘은 어떤 시기에 엄마 업무를 도와주려고 메일에 들어가 보낸 메일을 확인하다가 호기심이 들어 엄마가 아빠에게 보냈던 메일을 읽은 것이었습니다그건 크리스마스 즈음에 보내진 짧은 편지였습니다엄마 혼자 타지에서 아들 둘을 키우느라 힘이 부쳤는지아직 14살 11살인 저와 동생에게 중국은 성탄절이 국경일이 아니기 때문에산타가 없고그래서 선물도 없다.”라는 말을 하고 선물을 스킵한 것을 아빠에게 고백하는 내용이었습니다그리고나서 덧붙여진 말이 재밌었습니다은철(동생)이는 믿은 것 같은데 철홍이는 반신반의인 것 같다고 적혀 있었거든요.

 

엄마는 아무래도 마음이 조금 걸렸나봅니다그래서 편지까지 쓴 거겠죠근데 저는 아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엄마가 나한테 거짓말을 한 기억도선물을 받지 못해서 서운했던 기억도 없습니다다만 나 자신에게 서운한건 제가 산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언제인지언제 철이 든 것인지그 기억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그냥 이렇게 특별한 이벤트 없이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구나영화 보면 안 그렇던데뭔가 깨닫는 순간이 항상 드라마틱하던데이런 생각들이 내가 주인공이 아니구나라는 생각과 곁들여져 가끔 저를 슬프게 했드랬죠,,

(서문이 길었네요 이제 영화 얘기 합니다)

 

만약 이런 저에게 누군가 나 너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어라는 말을 하면 저는 아마 거절할 것이 분명합니다제가 뭘 했다고저는 딱히 이룬 게 없는데요다큐멘터리 찍힐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하면서요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우린 주인공이 아니었으니까요그런데 얼마 전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바로 아티스트 칸예 웨스트가 주인공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니어스카니예 3부작>(JEEN-YUHS: A KANYE TRILOGY)입니다.


칸예 웨스트는 반박의 여지없이 세계 최고의 뮤지션 of 뮤지션입니다자기 자신도 그 사실을 완전히 믿고 있는 사람이며심지어 그는 자기 자신을 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할 정도입니다뿐만 아니라 2020년엔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으며다음 대선에도 역시 출마할 것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그래서 저는 이 다큐가 나온다고 했을 때분명 칸예 웨스트의 엄청난 자뻑이 들어간자신이 이뤄낸 대단한 업적들을 기리거나 혹은 자신을 신격화하는 그러한 다큐멘터리를 예상했었습니다그래서 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었죠.

 

그런데 이 다큐는 예상과 달랐습니다일단 이 다큐멘터리는 칸예의 시선이 아닌칸예의 오랜 친구 쿠디의 시선으로 진행됩니다쿠디는 칸예가 아직 유명하지 않을 때 칸예의 능력을 알아보는데요그래서 칸예가 어디까지 성공할지 그 과정과 끝을 담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칸예를 따라다닙니다재밌는 것은 아직 첫 앨범도 내지 않은 덜 유명한 칸예’, 말하자면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아직은 다큐멘터리를 찍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 칸예가 그걸 승낙하고 항시 카메라를 따라다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에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카메라 뭐 하는 거냐고 묻는 다른 사람들의 질문입니다그중엔 진짜 그 용도가 궁금해서 묻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몇몇은 마치 대스타처럼 카메라를 대동하고 다니는 칸예가 우스워서 비꼰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약 지금의 칸예였다면 아무도 이걸 왜 찍는 거냐고 묻지 않았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칸예는 그런 질문과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칸예가 자신의 첫 앨범 <칼리지 드랍아웃(The College Dropout)>을 발매한 것은 2004년인데요. 3부작 중 절반은 칸예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투자를 받기 위해 여러 음반 제작사의 관계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랩을 하는 등의 셀프 홍보를 하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습니다지금의 그 건방진 칸예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으면서동시에 나도 진짜 열심히 나 자신을 홍보하고 다녀야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뉴스레터 첫 연재에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칸예 웨스트 다큐 이야기를 다룬 까닭이 있습니다칸예의 2001-2004년의 모습이 지금의 제 시기와 겹쳐보였기 때문입니다누군가는 어딜 감히 칸예랑 너를 비교하냐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그래도 언젠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 이제 막 무언가를 시작한 상태인 것만큼은 같으니까요그렇지만 여전히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칸예 웨스트는 남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끝까지 믿고 카메라를 계속해서 켜두게 했다는 것입니다.

 

철홍은 반면 그동안 자기 자신을 믿지 못했습니다자신의 말과 글이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일까 신경쓰느라 아무 도전을 하지 않은 채 많은 시간을 낭비했었습니다그러나 누구나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해낸 칸예를 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이제 나를 믿고 나를 찍어보려 합니다그런 의미에서 이 뉴스레터는 사실 편지가 아니라 카메라입니다더 정확히는 아무도 안 찍어줘서 내가 나를 찍는 셀프 카메라입니다.

 

다시 한 번 안녕하세요. 김철홍입니다.
매주 여러분께 김철홍의 일주일을 보내드립니다.
부디 저의 쿠디가 되어 저의 활약을 지켜봐주시기를.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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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는 말씀 

1. 원래 원데이 원무비 제목의 유래에 관해 쓰겠다고 말씀드렸는데어차피 크게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아서 바꾸었습니다아마 다음주 아니면 다다음주언젠가 꼭 쓸게요,,


2. 최근 재밌게 본 영화는 <더 배트맨>과 <레벤느망>입니다. 다음주는 두 영화에 대한 이야기 혹은 2월에 본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쓸 것 같습니다. (변동 가능성 多)


3. 최최근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는 <소년심판>(넷플릭스)과 <석세션>(웨이브)입니다. 둘 다 1화만 봤는데 앞으로 계속 더 볼 것 같네요. <소년심판>은 유명해서 어차피 다 보실 것 같아서, 더 같이 보자!고 하고 싶은 작품은 <석세션>입니다. <왕좌의 게임> 이후 HBO의 최고작이라는 소문이.


4. 구독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특히 커피 두 잔 마시라고 가입비를 훌쩍 넘는 금액을 넣어주신 몇 분들께.. 그분들 이름 언급하고 싶지만 허락을 못 받았기 때무네.. 허락해주시면 다음 메일에라도 다시 한 번 감사인사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5. 엄마한테 비밀 지켜주세요. 꼭이요~


sti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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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