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뭐읽지 #시사IN #황정은 #일기
💌   2021년 11월11일 79호
✏️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조남진     
"창작자라면 장르 불문하고 
 죽음의 영향을 받는다"
 등단 17년 만의 첫 에세이,
 <일기日記>를 들고 온 황정은 인터뷰
 
 
책을 출간할 때 ‘작가의 말’을 안 쓰기도 했는데 에세이집이라니 의외다.

나 역시 에세이를 쓰게 될 거라고 상상을 못했다. 제안은 전부터 있었는데 엄두가 안 났다. 모든 종류의 에세이가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종류의 에세이는 문장을 썼을 때 그것대로 살 수밖에 없다. 그게 내게는 많이 두려운 일이었고 그동안 삼갔다. 이번엔 적절한 순간에 청탁이 왔다. 쓰는 게 너무 두려워서 ‘내가 문장을 쓰지 못하겠구나’ 생각한 순간이 왔고, 지금 이 상태에서 (글쓰기가) 중단되면 두려움 때문에 중단한 셈이라 그러기 싫어 일단 뭐라도 쓰자고 생각했다.

 

경의선 철길이 보이는 창밖을 보며 지내던 팬데믹 시기에 대한 단상이 에세이집 초반에 나온다. 각종 혐오와 불신의 풍경을 목격하는 와중에도 인간의 선의와 희망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정말 믿어 의심치 않는 믿음이 있는 건 아니다. 꾸준히 묻고, 애쓰고 있다. 다행인 건 나만 애쓰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각자가 좋은 것들에서 눈 돌리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선의, 희망 이런 건 사는 동안 길게 지속되지 않고 너무 짧다. 어쩌다 그런 게 찾아와도 구별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좋은 거라는 사실을 못 알아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겪는 혐오와 불신은 개인의 차원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서 혼자 애쓴다고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구조를 잘 보고 내 언어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지금 사람들의 명(命)은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 구조되는 것이라고 하며 구의역 김 군, 김용균씨 등을 호명한다.

죽음이 자연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들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조건 자체가 자연화되었고 그에 압도적으로 영향을 받는 계층이 있다. 창작자라면 장르 불문하고 죽음의 영향을 받는다. 구조적 죽음은 매번 너무 마음이 상하고, 충격이다. 여수에서 사망한 현장실습생 홍정운 학생의 경우 너무너무 화가 나서…. 이런 죽음을 볼 때마다 예전에 봤던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영상이 생각난다. 새들이 외벽에 부딪쳐 많이 죽는데 세상에 회자가 안 된다. 조류학자 말로는 그 이유가 유리창이 깨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지지 않아 새들만 고요히 죽는다고. 그 얘기가 요즘 자꾸 생각난다. 한국 사회가 저출생을 걱정할 자격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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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새를 만나는 시간
이우만 지음, 웃는돌고래 펴냄
“안 보인다고 없는 건 아니지.”
 
친구와 공원을 걷고 있었다. 새 한 마리가 머리 위로 스치듯이 날아갔다. “직박구리네.” “어? 어떻게 알아?” “저 새는 나는 모습이 특이해. 울음소리도 날카롭고.” 친구는 덤덤하게 설명했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묘하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새가 이미 날아가고 없는 텅 빈 하늘을 바라봤다. 저 새도 이름이 있구나. 나는 모습이 특이하고 울음소리가 날카로운 작은 새의 이름을 나는 여태 모르고 살았구나. 그 뒤로 길을 가다 보이는 새를 유심히 쳐다보며 틈틈이 새 이름을 찾는 습관이 생겼다. 잠자기 전 한 장씩, 새 한 마리와 친구가 되는 기분으로 책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늘 보던 하늘이 매일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책 자세히 보기 >> 
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
강혜인·허환주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청년들이 더 많이 죽었다. 배달 시장과 플랫폼 노동에 대한 우리의 질문은 거기서 시작됐다.
 
코로나19 이후 피자집이나 치킨집 앞에서 대기하는 배달원들이 더 늘었다. 그들의 얼굴은 대체로 앳되어 보였다. 오토바이에는 종종 그 세대에 인기 있는 캐릭터 인형이 달려 있었다. 혹여 음식이 식을세라 ‘죽음의 질주’를 하는 청년들의 삶은 안녕할까. 어느덧 도시의 풍경이 된 청년 배달원의 모습을 그저 스쳐가는 질문으로 두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강혜인 〈뉴스타파〉 기자와 허환주 〈프레시안〉 기자가 함께 취재했다. 18~24세 청년 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 통계를 찾아보다가 당사자들을 만났고 직접 배달 노동에까지 나섰다. 플랫폼 노동의 다양한 얼굴을 들췄다. 책 자세히 보기 >>
여성노동자, 반짝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지음, 나름북스 펴냄
이것은 노동자인 자기 존재를 긍정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의 여성 조합원은 약 1만명이다. 전체 조합원 18만명 중 약 6% 수준이다. ‘여성’이자 ‘노조 조합원’인 이들이 겪어낸 이야기는 남성 조합원들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모두가 함께 겪는 부당함 외에도 동료 남성 조합원의 부당한 요구, 여성이기에 겪는 직장 내 차별에도 맞서야 했다. 세대, 지역, 직무가 다름에도 겹쳐지는 69명의 목소리는 한국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걸어온 길을 보여준다.
이 책 출판을 담당한 금속노조 부위원장 권수정은 후기에서 “무엇보다 우리의 역사가 이야기이길 바랐다”라고 썼다. 자주 잊혀 찾아보기 힘든 여성들의 귀한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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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그리고 가정
클라우디아 골딘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펴냄
아이에게는 시간이 많이 든다.
 
20세기 여성이 커리어를 갖지 못하게 제약한 건 대체로 명시적인 차별이었다. 노골적인 차별의 증거는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왜 성별 소득격차는 사라지지 않는 걸까?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질문을 던진다. 미국 사회의 대졸 여성은 커리어 없이 가정만 있는 삶에 만족하지 않고, 가정을 포기하고 커리어를 추구하는 삶에도 만족하지 않는다. 임금격차는 대체로 아이가 태어나고 시작된다. 근본적으로 시간의 문제다. 누가 집(과 학교 등)에서 온 긴급 호출에 지체 없이 대응하는 임무를 맡을 것인가. 오늘도 갑작스러운 호출에 발을 동동 구르는 가정과 그런 미래를 염려하는 여성들에게 권하고 싶다. 책 자세히 보기 >>
시사IN과 동네책방이 함께하는
2021 읽는당신×북클럽 오프닝 북토크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강연 하이라이트
"인류 멸종을 막고 싶다면
 선거에 참여하세요"
 
기후위기와 종의 다양성 감소라는 선행지표를 이미 겪고 있는 인류가 여섯 번째 멸종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희망은 있다.” 기후변화는 인간이 초래한 것이기에 인간이 바로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프레온가스 사용을 금지한 뒤 남극 오존 구멍이 5분의 1 크기로 줄어든 경험을 상기시킨 그는 “개인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을 넘어 정책으로 기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개인이 고기를 덜 먹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식의 실천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전면적인 에너지 전환을 통해 기후위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서울시 대중교통 전면 무료화’ 같은 혁신적인 정책이 나올 수 있게끔 시민들이 정치인을 압박해야 한다.
 
황정은은 <일기>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씁니다. "이미 있는데 하필 왜 있느냐고 물어 멈추게 만드는 질문을. 누가 내게 그렇게 물으면 나는 일단 그를 의심한다. 개수작 마, 하고 실은 생각한다." 그럼에도 저는 오늘 뉴스레터의 제목을 문학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으로 달았습니다. 당신에게 도착한 질문이 만들어낼 파문이 궁금합니다. 한편으로는 당신에게 문학이 아무 것도 아닐까봐 겁도 납니다. 
 
"문학이 무슨 인권 보고서입니까? 문인이 무슨 인권 활동가입니까? 물을 수도 있겠지요. 그럼 문학이, 문인이 대체 그런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계간 <문학과 사회> 2016년 가을호, '견본세대 2', 김현) 
 
등단 17년 만에 첫 에세이집 <일기>를 출간한 소설가 황정은의 인터뷰를 읽는 동안, 저는 2016년 김현 시인이 계간 <문학과 사회>에 발표한 위의 글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요, 문학은 그런 것이고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저는 여전히 믿습니다. 
 
황정은은 이번 인터뷰에서 <디디의 우산> 이후 '정치적이라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죠. "정치가 모든 일의 해결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참사로 궁지에 몰린 개인의 처지에선 정치가 대단히 영향을 미친다.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하는 건 알고 싶지 않다는 말이고 그런 태도가 대단히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그걸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다."
 
정치의 계절입니다. 매일같이 대선후보 동정이 주요뉴스로 보도됩니다. 그런데 어쩐지 그들의 말과 행동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 정치는 너무 중요하죠. '우리보다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쉽게 절망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또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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