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결

여성 재현의 윤리
역사 속 여성들이 적나라한 피해 이미지로 재현될 때, 그것을 보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타인의 고통은 우리를 폭력에 대한 비판, 공감과 인간애로 이끌까요, 아니면 관음증과 무감각을 조장할까요? 보여지는 것, 기억되는 것 그리고 호명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함으로써 우리가 잊은 것들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며, 아래 세 편의 글을 소개합니다.
🧶 당신의 이름은 / 이헌미

#비커밍아웃 #증언이후 #가라앉은자와구조된자
따옴표가 들어간 위안부라는 용어는 유보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따옴표 안팎에는 어떤 이름들이 있을까요? 정부 등록 피해자 240명과 피해 추산 20만명 사이에서, 어떤 이름들은 가라앉아 있습니다. 궁극적이고 완벽한 증인의 틀을 깨고 위안부문제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아래 글을 통해 확인해보세요.

증언 이후의 삶보다는 과거의 피해에 생존자들을 정박시키는 피해자라는 이름 또한 위안부라는 따옴표 쳐진 기표의 질적 대체물이 될 수 없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을 사회적으로, 국제적으로 인정하고 어떤 이름을 붙이든, 그들이 겪은 사건의 폭력성은 되돌릴 길이 없다.”
🧶 ‘시체 구덩이’의 응시와 ‘위안부’ 피해 기억의 재현 / 김한상

#재현문제 #이미지 #폭력
김진아 감독의 영화 <동두천>은 살해 현장의 흔적만을 VR로 보여줌으로써 1992년 주한미군 케네스 마클에게 살해당한 여성 윤금이 씨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영화에서 무엇을 보고, 어디를 볼지는 관객의 선택입니다. 시선의 독점에서 벗어나 보여주지 않음이라는 전략을 통해 피해자를 타자화하지 않으면서도 관객을 구덩이안으로 들어가게끔 만드는 재현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실패한 구출의 대상으로 타자화, 사물화된 시체 더미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 구덩이 밖에서 구출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누군가로 자신을 동일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는 재현, 그 구덩이 속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재현. 이것은 어쩌면 일본군위안부피해 기억의 재현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 대중매체를 통해 바라본 일본군위안부의 재현 <2> - '위안부'를 둘러싼 재현의 윤리, 어디까지 묘사하고 재현할 것인가 / 웹진 <결> 편집팀

#대중매체 #재현전략 #재현의윤리
영화, 작은 평화비, 크라우드펀딩을 비롯한 재현물은 점점 상품화되고 있습니다. 기억이 물질로 전환될 때, 주로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요? 재현 과정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드러나야 하는 것인 동시에,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쟁점화되기도 하고 그 강박은 보여주지 않음의 윤리로 치환되기도 합니다. 허윤, 권은선, 오혜진, 김청강의 좌담을 따라가며 이러한 논쟁을 깊이 있게 탐색하고 재현의 문제를 폭넓게 고민해봅니다
 
결국 우리는 왜 증언/재현을 물신화할 뿐, 그것을 가능케 한 역사적 조건을 사유하지 않는가. ‘위안부의 고통을 존중한다면서, 위안부의 고통을 재현하는 위치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는가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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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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