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다_세이지 #이삶을다시한번 #외롭지않을권리

[주말에 뭐 읽지]  2020-12-11 #37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c)2003 by Toda Seiji, OHZORA Publishing.co  

당신의 인생은 '양파' 같군요

도다 세이지 지음, 조은하 옮김
애니북스 펴냄  

누구라도 한 번쯤은 신데렐라처럼 한 방에 풍요로운 인생이 펼쳐지기를 꿈꾼 적이 있을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성공한 사람들, 성공한 연예인들이 나와 쇼를 하고 그런 사람들이 선망의 아이콘이 되어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흔든다. 정작 우리 삶은 어떤가. 대부분의 사람은 그달 벌어 그달 생활하기에 바쁘고 젊은이들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우기 일쑤다. 핑크빛 미래를 상상했던 결혼 생활은 깨진 유리창처럼 산산조각 나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되어 외로운 도시의 늑대처럼 서글픈 밤을 맞는다. 하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일어서려 애쓰고, 이런 우리의 인생은 모두 소중하다.

〈이 삶을 다시 한번〉은 도다 세이지의 단편 30화로 이루어진 만화책이다.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준다. 심지어 몇몇 작품은 단 한 쪽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와 울림이 커 이 작가의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인생’이나 ‘가족’은 한 쪽짜리 만화다. ‘인생’은 양파에 빗대어 실체 없는 우리의 인생을 보여주고, ‘가족’은 노아의 방주에 빗대어 신이 우연히 만들어준 구성원과 한 가족이 된 이야기다. 우리는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가족(핏줄의 의미로서)을 선택할 수 없다. 그렇게 저절로 이루어진 가족, 그런 나의 가족도 타인과 마찬가지로 조금 더 이해하려 노력해야 행복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검정 1, 2’는 두 쪽짜리 단편이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인연이 되어준 고양이와의 만남을 건조하게 그렸다. 하지만 누구라도 함께하면 ‘가족’이 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이 책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삶, 죽음, 가족, 인연, 그리고 사랑이다. ‘검정’에 이어 계속되는 세 편의 이야기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작은 죽음’과 ‘2009년의 결단’에서는 죽음 앞에서 사랑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꽃’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성찰을 보여준다. 특히 만화가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듯한 대사가 눈에 많이 띈다. “창작이란 건 사실 마음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의 특권 아닐까.”

이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작가는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져가는 듯한 조용한 시간 속에” 서서히 죽어간다. 작가는 꽃을 못 피우게 하려면 물이랑 영양분을 충분히 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식물이 안심을 해서 꽃을 피우지 않는단다. 꽃이 피게 하려면 그 반대로 해야 한다. 영양분이 고갈된 식물이 죽어가면서 자손을 남기기 위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법이라고. 렇다. 우리의 삶도 고통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고 그런 고통을 견뎌야 진정한 꽃을 피울 수 있다.  

일본 인디 만화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 도다 세이지는 이 책이 데뷔작인데도 ‘단편의 귀재’답게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면면을 날카롭게 도려내어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개인 삶에 충실한 인간의 자세와 그런 작고 소중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그의 일관된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개인 홈페이지에 1999년부터 작품을 공개했는데, 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단행본을 엮기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를 만화로 처리한 것도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한다. 자잘한 재미와 감동이 있는 책이다.  

김문영(이숲 편집장)

시사IN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선거는 어떻게 대중을 유혹하는가
김지윤 지음, EBS BOOKS 펴냄 

“우리는 수고를 무릅쓰고 투표를 한다. 왜? 재밌어서.”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유명인이 커다란 이벤트에 맞춰 책을 펴내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급조된 함량 미달의 책이 아닐까 싶어서다. 이 책은 아니다. MBC 〈100분 토론〉 진행자로 얼굴을 알린 저자가 미국 대선 직전에 미국 정치를 다룬 책을 펴냈다. 미국에서 공공정책과 정치학을 공부해온 저자의 전공 분야다. 낯설고 복잡한 미국 정치와 선거를 쉽게 풀었다. 코커스와 프라이머리가 어떻게 다른지, 미국의 백인들이 어떤 불안감을 안고 있는지, 앞으로 미국 선거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칠 히스패닉 유권자의 표심이 어떻게 바뀔지, 2020 미국 대선을 흥미롭게 지켜본 이라면 어느 한 장 허투루 넘길 대목이 없다. 뜻밖에 저자의 발랄한 문체까지 더해져 아주 재미있기도 하다.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
최민아 지음, 효형출판 펴냄  

“다양한 건축적 특성을 지닌 집에 다양한 소득계층이 함께 사는 곳.”  

도시계획가이자 건축가인 저자는 7년간 프랑스에서 유학했다. 한국으로 치면 분당 같은, 파리 근처 신도시에 살았다. 단 한 번도 이사를 가지 않았다. 한집에 계속 살았다. ‘사회주택’이다.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10년간 일곱 번 이사를 다녔다. 프랑스 사회주택과 한국 임대주택은 같지만 다르다. 임대라는 형식은 비슷하지만 기원과 운영 형태가 다르다. 19세기 중반 철학자이자 공상적 사회주의자인 샤를 푸리에는 ‘노동자를 위한 베르사유 궁’을 구상했다. 여기서 비롯된 사회주택은 서민을 위한 주거시설이다. 하지만 한국 임대주택처럼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건축가와 예술가,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주변 인프라를 고려해 설계한다. 똑같은 사회주택이라도 사는 사람의 소득수준에 따라 임대료가 다르다.  


아무튼, 반려병
강이람 지음, 제철소 펴냄  

“건강이 내게서 멀어질 때 내가 느끼는 감각은 이긴다/진다가 아니라 ‘견딘다’ 혹은 ‘기다린다’에 가깝다.”  

‘근황’이 아픈 몸일 때 대화는 난망해진다. 건강을 ‘이겨서 쟁취’해야 하는 사회에서 아픈 몸은 어쩐지 매일 진다. 건강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16년 차 직장인으로 잔병치레 ‘전문가’인 저자는 “아픔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반응의 대상이라는 게 그간의 깨달음”이라고 담담히 쓴다. 살아 있어서, 살고 싶어서 몸이 보내는 신호(통증)를 성실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열나고, 붓고, 기침하고, 눕게 만드는 몸 역시 ‘건강해지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고맙기까지 하다. 한 번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 책의 당사자일지 모른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저자 목소리 위에 내 목소리를 포개보게 된다. 자, 저자를 따라 몸에게 인사를 건네보자. ‘고생이 많아, 잘하고 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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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동네약국 사용 설명서
늘픔약국 지음, 생각비행 펴냄  

“약국을 ‘약 파는 곳’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올봄에는 마스크를 사러 일주일에 한 번씩 약국을 방문했다. 역 근처 약국들은 대기 행렬로 붐비는 탓에 동네 여기저기로 찾아다녀야 했다. ‘이런 골목에도 약국이 있구나.’ 늘 지나던 골목길에 약국이 있단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공적 마스크를 공급하는 기관이 약국이 된 데는 뛰어난 접근성 때문이었다. 약국은 약만 파는 곳이 아니다. 마스크부터, 동물 약, 때 비누를 팔고, 때로는 금연 클리닉으로 운영되며, 지역 주민들이 밤낮없이 건강 상담을 하러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과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늘픔약국’의 약사 여섯 명이 쓴 책이다. 10년간 약국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국이 가진 지역사회 안전망 기능에 주목한다. 우리가 알던 것보다 약국의 역할은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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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겨 왔던 시대가 끝나간다. 
생활동반자법이 새로운 대안이 되어줄 수 있을까? 
누구에게든 원하는 사람과 행복한 삶을 꾸릴 권리가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2020년이 지나기 전에 꼭 한 번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꼼꼼히 고르고 정성껏 추천"했다는 나머지 49권 리스트 또한 함께 살펴보시길요. 올해 내가 읽은 책 또는 눈여겨 본 책이 몇 권이나 리스트에 들어 있나 세어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합니다😄

돌이켜보니 성인이 된 뒤 가족과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낸 적이 있나 싶습니다. 일주일에 두세 끼 함께하기도 힘들었던 가족이 재택령만 내렸다 하면 삼시세끼출연진마냥 온종일 붙어 지낸 지 일 년이 다되어 갑니다. 텃밭 대신 택배로 식량을 조달받으면서요.
 
덕분에 사이가 좋아졌다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웬수가 된 가족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중학생 아들을 둔 제 지인은 자식과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더군요. 재택 기간중 온라인 수업 대신 게임에 빠져 사는 아들과 싸우다 지쳤다면서요. 부모-자녀뿐 아니라 부부간, 형제자매간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이들도 적지 않죠. 미국에서는 Covidivorce(코로나 이혼)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죠? Covid19(코로나19)divorce(이혼)의 합성어라는데, 실제로 팬데믹 이후 이혼율이 증가한 것은 만국공통의 현상인 것 같습니다.
 
인류의 운명 못지 않게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게 된 한 해. 사유리씨의 비혼 출산 소식에 대해 환호하는 젊은 세대를 보면 꼭 팬데믹 때문이 아니더라도 뭔가 거대한 흐름이 바뀌고 있음을 예감하게 됩니다. <공부란 무엇인가> 저자인 김영민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회에는 가족, 젠더, 번식 등 제반 영역에서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는 크고 깊은 것이어서, 새로운 삶의 조건에 발맞추어 스스로를 계몽하지 않으면, 사회든 개인이든 자멸의 길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한다(<외롭지 않을 권리> 추천사 중에서)."

그러고보면 2020년은 새로운 가족에 대한 상상과 열망이 분출된 한 해로도 기록될 것 같습니다출판계에서도 지난해 출간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필두로 올 한 해 <외롭지 않을 권리> <비혼 1세대의 탄생> <셋이서 집 짓고 삽니다만> 같은 책들이 잇달아 출간돼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서로를 위하는 귀한 마음이 '정상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꺾여버리는 비극은 이제 코로나와 함께 종식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황두영 작가의 말마따나 '필수적인 모임'만 해야 하는 시대, 우리에게 '필수적인 관계'는 무엇일까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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