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마음살림편지
"더위가 머물러있는 자리에 한자락 서늘한 바람이 들어서는 즈음"

마음살림편지
2020년 8월 23일 처서處暑 즈음

이즈음 꽃과 나무 

               뜨거운 여름에 전하는 청량한 안부, 옥잠화

 
                                                                        저녁노을 (윤선주, 한살림연수원장)

 사상 초유의 기후위기로 인한 긴 장마가 끝나니 기다렸다는 듯 무더위가 온 나라를 연일 달구고 있네요.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올 해는 배롱나무가 벌써 지고 있어요.  보통 아름다운 수형과 함께 초여름에 꽃분홍, 연분홍, 흰색, 보라색으로 어른 주먹만한 꽃송이를 가을까지 피워 더위를 이길 힘을 주곤 했는데  날씨로 몸살을 앓은 탓인가 싶어요. 나무둥치가 매끄러워 밑둥을 간지럼 태우면 위의 잔가지가 파르르 떤다고 아이들은 “간지럼나무”라고도 부르고 꽃이 백일을 핀다해서 백일홍나무라고도 하지요. 지자체마다 조경수로 심은 곳이 많아 여름 내내 눈 호사를  누렸는데  꽃이 시들해 섭섭한 요즈음, 나무그늘 사이로 청초한 하얀 꽃을 차례로 피워 올리는 옥잠화가 위로가 됩니다.

 옥잠화, 이름이 참 예쁘고 기품이 있지요? 그늘에서도 잘 자라고  꽃봉오리가 옥으로 만든 비녀를 닮아서 그렇게 부른답니다. 윤기가 흐르는 짙은 녹색 잎은 아래는  심장모양이고 끝은 뾰죽해 얼마나 예쁜지 꽃꽂이의 소재로도  많이 씁니다. 뿌리에서 잎이 모두 나오는 백합과의 외떡잎식물로 원산지는 중국이지만 추위에 강해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어요. 봄에 나오는 새 잎은 나물로 먹거나 쌈을 싸 먹기도 하고 꽃봉오리와 다 핀 꽃은 비빔밥에도 넣고 향기 은은한 차로도 이용합니다.

 대개 향이 짙은 꽃이 그렇듯 저녁노을이 질 때 쯤 활짝 피어나 다음 날 아침에 지는데 옥잠화는 긴 꽃대에 여러 송이가 달려 차례대로 피고 지지요. 작은 백합꽃 같은 순백의 아름다운 꽃은 향기도 짙어 한낮의 더위가 가실 무렵에 은은하고 상쾌한 냄새를 풍깁니다. 유리병에 꽂아두면 시원시원한 잎과 흰 꽃이 주는 청량감과 함께 짙은 향기가 온 집안에 넓게 퍼져 옥비녀를 꽂은 귀부인이라도 된 듯 기분이 좋아집니다.

 영동의 가공생산지인 옥잠화공동체는 그 넓은 마당이 온통 아름다운 꽃밭인데 곳곳에 옥잠화가 많이 있어요. 꽃이 지천이라 돌아오는 길에 항상 선물로 받는 꽃이 계절마다 다양해요. 해마다 요맘때 ‘옥잠화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 찾아가면, 갓 지은 밥에 갖은 채소와 옥잠화 봉오리를 몇 개씩 올린 비빔밥을 해주신답니다. 보기에도 아까워 한참을 눈과 코로 먼저 우리 몸에 모셔 들인 후에야 비로소 한 입 먹는 옥잠화의 맛이란! 부드럽고 아삭하며 포근포근하기도 하고 고소한 맛도 좋지만 입 안 가득 퍼지는 옥잠화 향기가 어찌나 좋은지요. 과하지도, 우쭐거리지도 않는 청초하고 시원한 냄새로 내 몸이 채워져 공기처럼 가볍게,  달빛을 타고 하늘에라도 오를 것 같답니다. 그런 까닭에 옥잠화를 보면 저는 언제나 옥잠화공동체를 가꾼 서순악 선생님의 따듯하고 고운 마음이 동시에 떠올라 행복해 집니다. 올 해도 꽃이 다 지기 전에 찾아 뵈어야겠어요. 
여러분도 혹시 옥잠화를 만나시면 몸을 숙여 향기를 깊게 마셔보세요. 아마 잠자리에 들 때까지 코끝에 향기가 맴돌아 등에서 날개가 돋는 꿈이라도 꾸지 않을까요?
이즈음 마음닦기

                                   '숨을 쉰다'는 것은...

                                                      자상慈祥(정현숙, 마음살림연구위원장)
 
 드디어 우리가 알던 여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냥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햇볕에 숨이 턱 막히는……. . 그리고 더 이상 곰팡이가 생기지 않고, 빨래가 바짝바짝 마르고 이불도 뽀송하게 말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폭우가 남긴 엄청난 피해의 흔적은 상처가 되어 여기저기서 마주치지만, 50일 가까이 줄기차게 내리던 비와 그 비를 뿌리던 흐린 하늘의 기억은 벌써 기억 뒤편으로 밀려갑니다. 

 물러날 듯 물러날 듯 다시 다가오는 코로나19 속에 길게 내리던 비는 뭔가를 시도하거나 활동하는 것을 다 멈추게 하는 ‘위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빈둥거리면서 호흡-숨에 집중할 수 있는 멋진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밤새 내렸으면 그칠 때도 됐으련만 그칠 줄 모르는 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빗소리가 익숙해지고 덤덤해지자 나의 숨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온 세상이 비로 뒤덮여 사방에 비 내리는 소리만 가득할 때, 오로지 유일한 존재로 남아 숨을 쉬고 있는 나 자신을 만났습니다. 소파에 기대 앉아 숨을 쉬고, 좌정하고 앉아 숨을 쉬고, 누워서 편안하게 몸을 늘어뜨리고 숨을 쉬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병아리들을 바라보면서 멍 때리면서... .쉬지 않고 숨을 쉬고 숨을 바라봤습니다. 들숨과 날숨을 바라보고, 느끼고, 고요해지고, 그러면서 계속 숨을 쉬었습니다.
 누구나 언제든 숨을 쉬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요. 뿐만 아니라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잊고 삽니다. 내가 숨을 쉬고 있다고 느끼며 바라보는 순간, 숨은 나의 몸과 마음을 조율하는 도구가 되고 치유하는 힘이 되고,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수행이 됩니다. 어쩌면 숨을 쉬는 그 자체보다 내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숨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장마와 폭우 속에서 저는 숨을 만났고, 비가 그치며 들이닥친 폭염 역시, 숨만 쉬거나 숨 쉬는 ‘나’만을 느끼기에 좋은 여건이었습니다. 인도에서 더운 날씨와 우기 때문에 수행문화가 발달했다는 얘기가 실감나기도 했습니다.
 숨은 몸과 마음이 만나는 곳입니다. 가만히 놓아두고 관찰만 하고 있으면 숨이 스스로 바뀝니다. 저절로 깊어지고 가늘어지며 부드러워지고 더 즐거워집니다. 그리고 온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머리가 맑아지며 마음이 밝아집니다. 차츰 몸과 마음이 정화되면서 고요해지고, 편안해지고 한층 가벼워집니다. 흔히 알기로 숨은 생명활동에 필요한 산소를 들이마시고 불필요한 탄산가스를 배출하는 과정에 불과하지만, 좀 더 정밀하게 보면 숨은 신선한 우주의 생명에너지를 공급 받고, 몸 속의 탁한 에너지(기운)을 배출하는 과정입니다. 숨을 들이쉴 때 공기와 우주에너지, 즉 생기가 함께 들어오는데, 공기 중의 산소는 폐를 통해 심장으로 가고 우주에너지는 하복부로 가서 아랫배에서 생명에너지로 바뀝니다. 그래서 숨을 쉴 때마다 우리 몸의 피가 돌고 생체 에너지, 생명의 기운도 호흡과 함께 흐릅니다. 

 마음이 조급하면 숨이 급해지고 마음이 불편하면 숨이 얕아집니다. 우울하고 화나는 어두운 마음으로 명상을 하거나 숨 쉬기에 집중하면 그 쪽의 에너지가 더 강해지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마음을 밝게 가지도록 합니다. 마음이 평화로울 때 좋은 호흡이 이루어집니다. 숨에 밝은 마음이 잘 모아지면, 숨조차 잊고 맑게 갠 상태에서 고요함에 잠깁니다. 이때 아주 깊고 풍부한 호흡이 이루어지며 생명력이 정화됩니다. 지극히 고요해지고 가늘어져서 숨이 거의 끊긴 것 같은 상태에 이르면, 굳이 집중하려는 의식도 버리고, 인위적인 의도와 긴장을 풀어 자연스럽게 맡깁니다. 아니, 처음부터 이렇게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숨을 제대로 쉬면, 행복하고 평온하고 기쁩니다.

 낮은 불볕인데 이 산골은 그래도 간간이 부는 바람이 시원합니다. 밤이면 환한 별빛 속에 소나무숲을 거친 서늘한 바람이 쏴아 불어옵니다. 그 바람 속에 한 줄기 가을 소식도 있습니다. 아마 다가오는 가을도 숨 쉬고 숨을 바라보기 좋은 계절일 거라 생각합니다.
 
 몸과 마음을 살리는 숨쉬기, 지금 바로 시작해보세요 ->
     -> 숨바라보기 https://youtu.be/9LWcL9qkNB8 (6’45”)
     -> 숨명상 https://youtu.be/sUNeW77wQok (15’22”)
이즈음 마음살림 소식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네 번째 생일 
                              
                                                             보더기(백송희, 원주 살림행공 소모임지기)

 시간이 참 빨라요. 벌써 9월 7일이면 만 4년 네 번째 생일을 맞이하네요. 거슬러 세어보니 2017년 9월 7일이 첫 모임이었어요.

 처음엔 ‘살림행공이 무엇일까’ 낯설어 했어요. 요가나 기공, 국선도 비슷한 건가보다 했던 것 같아요. 한살림에서 하는 행공이니까 살림행공인가보다 정도로 이해했을 거예요. 혼자 공부를 해나갈 자신이 없어서 덜컥 모임을 만들긴 했는데 사람들의 궁금함을 풀어 줄 능력이 안돼서 미안하고 답답해하던 참에 정말 구세주처럼 학산선생님이 원주로 와주셨어요.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선생님의 강의는 처음 들으면 ‘분명히 한국말인데 왜 알아들을 수 없지?’ 여러번 들어도 처음 듣는 것 같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는데 그 날도 그랬죠. 우리는 마음 속에 수 많은 물음표와 머릿속엔 별들이 빙빙 돌면서도 어설프게 따라한 동작들이 몸에 희미한 느낌으로 남았다랄까요. 더 이상한 것은 잘 못 알아듣겠는데 감동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한 발 한 발 더 함께 가보기로 했습니다.

 ‘살림행공은 생명의 작용력이 일어나는 세 번째 밭을 중심으로 두 번째 밭과 첫 번째 밭을 다스려 나가는 농사법입니다.’ 
4년 동안 행공농사를 지었으면 초보 농부는 되었겠죠. 어떻게 지어 왔는지 돌아볼까요? 우선 제일 잘한 것은 ‘잘 먹었어요’ 두 번째는 서로를 ‘잘 돌봤어요.’ 세 번째는 ‘잘 이어왔어요.’ 아직도 우리는 하고 싶은 모임이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고 만날 때 무엇을 먹을지 의논을 열심히 해요. 행공은 언제 하냐고요? 아... 그건 기본이죠. 어떤 때는 정말 기본만 하기도 하고요. 모여서 차 한 잔하며 마음을 여는 이야기를 나누고 행공을 하고 밥을 먹어요. 또 차를 마시며 <살림행공> 책자를 읽기도 하고 그 외의 공부 자료를 읽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눕니다.
세 번째 생일즈음에 선생님께서 또 한 번 강의를 해주셨어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고, 선생님 강의 후 나눈 이야기는 한 층 더 깊어졌어요. 두 번째 교재 <마음살림살이> 속의 행공편을 읽으며 복습도 하였답니다.

 코로나로 자주 못 만나는 요즘은 '각자 하루 20분 행공하기를 실천하자'며 온라인으로 모임을 이어가고 있지만, 하루 빨리 만나서 함께 행공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지금처럼 모두들 탈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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