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스트리밍, 무단 이용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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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구운김입니다.


일정 금액만 내면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는 구독형 서비스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라떼 시절 웹 하드나 비트토렌트 같은 ‘어둠의 경로’는 사실상 자취를 감추지 않았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요. 얼마 전, 불법 사이트는 다른 모습의 해적판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최근 뉴스를 통해 이름을 알린 누누티비그리고 콘텐츠 불법 유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Piracy는 저작권 침해, 불법 복제, 해적 행위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불법 스트리밍, 불법 다운로드, 무단 사용 등 다양한 맥락을 고려하여 불법 유통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출처: Unsplash
👋 오늘의 에디터 : 구운김
양지에서 열일하는 콘텐츠 업계를 항상 응원합니다.
오늘의 이야기
1. 엥? 누누티비가 뭔데요?
2. 콘텐츠 불법 유통의 세계는 지금 – 수요 편
3. 콘텐츠 불법 유통의 세계는 지금 – 공급 편
4. 두 곡선, 움직일 수 있을까

엥? 누누티비가 뭔데요?

때는 3월 10일 금요일. 넷플릭스 ⟪더 글로리⟫ 파트 2를 기다리던 날이었습니다. “나 지금 되게 신나!”를 외치며 사전 공개된 예고편과 온갖 떡밥, 해석 영상을 살피던 중, 눈길을 끄는 한 트윗을 발견했습니다.


이 트윗의 내용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더 글로리⟫를 넷플릭스가 아닌 플랫폼을 통해, 넷플릭스의 공식 공개 시각보다 3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시청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위풍당당 유료 구독자인 저에게는 의미 없는 정보였지만, 불법 콘텐츠 유통이 여전히 활발하고 꽤나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깜짝 놀랐습니다.

출처: Twitter

제가 이 트윗을 통해 알게 된 ‘누누티비’는 드라마와 영화 등 영상 콘텐츠를 불법적으로 유통하는 사이트입니다. 판권사와의 정식 계약 없이 콘텐츠를 무단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토렌트를 통해 다운로드하는 불법 복제품(해적판)과 비슷해요. 하지만 파라과이, 도미니카 공화국 등 해외에 서버를 두고 주소를 우회하며, 누누티비라는 동일한 이름으로 불법 스트리밍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장르별 메뉴, 시청 기록 메뉴, 접속 주소 알림 팝업까지 두며 사용자 친화적인 플랫폼의 탈을 쓰고, 메인 배너와 영상 재생 창 주변에는 불법 온라인 도박 광고를 노출하면서 말이죠.

접속하지 않기로 약...속... (출처: 누누티비)

관련 대응을 위해 방송·영화·OTT 사가 공동 설립한 영상저작권보호협의체에서는 “누누티비로 인한 피해 규모가 조회수와 VOD를 단순 계산했을 때 4조 9천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추산일 뿐이지만, 누누티비 접속 주소 중 하나인 'noonoo28.tv'의 누적 방문자 수(2천900만 명)가 티빙(1천400만 명), 웨이브(1천만 명) 보다 약 2~3배 많은 수치이고, ⟪더 글로리⟫ 파트 2의 첫 에피소드가 불과 며칠만에 186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피해 규모에 대한 주장이 과언은 아닙니다. 게다가 ⟪더 글로리⟫ 론칭 전 한 달간 ‘누누티비’ 관련 구글 검색량이 20배 이상 급상승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며, 앞으로의 피해 규모에 대한 우려는 줄어들지 않고 있고요.

콘텐츠 불법 유통의 세계는 지금 – 수요 편

국내에서는 누누티비로 화제가 되었지만, 영상 콘텐츠 불법 유통(contents piracy)은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다시 떠오른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영향과 일상 복귀가 겹쳤던 작년, 2022년은 '피크 TV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근 10년 중 공개 및 방영된 프로그램의 수가 가장 많았습니다. ⟪탑건: 매버릭⟫, ⟪아바타: 물의 길⟫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흥행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고요.


차고 넘치는 콘텐츠 공급과 함께, 불법 시청 수요도 덩달아 상승했습니다. 2022년 전 세계적으로 콘텐츠 불법 유통 웹사이트의 방문 횟수는 전년 대비 18% 상승한 2,150억 건을 기록했습니다. 영화 콘텐츠는 '21년 대비 36%('21년 204억 → '22년 278억 건), TV 프로그램은 9%('21년 916억 → '22년 996억 건) 상승했다고 해요.


단순 증가세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불법 시청의 실제 패턴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북미 시장 중심의 리포트와 기사로 관련 내용을 짚어 보았습니다.

  • '어떻게 보았나' - 불법 다운로드보다 불법 스트리밍
    최근에는 불법 시청에서도 '스트리밍'이 대세입니다. 관련 트래픽을 분석한 조사에 따르면, 2022년 불법적으로 유통된 TV 프로그램의 95%, 영화의 57%가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인상 깊은 것은 영화/TV 프로그램 재생으로 이어진 트래픽의 약 25%만이 서치 엔진에서 검색 후 연결되었고, 3분의 2 정도는 각 사이트에 바로 접속된 트래픽이었다는 점입니다. 무료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곳을 열심히 검색하기보다 각자가 '선호하는 불법 웹사이트'에 바로 접속한다는 것이죠.

  • '무엇을 보았나' - 인기인 듯, 인기 아닌, 유명한 것들
    인기 콘텐츠라면 무료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가설에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 같은데요. 적어도 콘텐츠 불법 유통에서는 맞는 말이기도,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 2022년 북미 기준 불법 시청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TV 프로그램은 엄청난 화제성을 자랑했던 ⟪왕좌의 게임⟫ 시리즈 프리퀄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OTT 오리지널 TOP 3 ⟪기묘한 이야기⟫, ⟪오자크⟫, ⟪웬즈데이⟫는 이 리스트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출처: Variety
    • 영화의 경우, 북미 박스오피스 순위권 영화가 불법 시청이 많이 이루어진 영화 상위 10편에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극장 중심 전략을 택했던 박스오피스 1위 ⟪탑건: 매버릭⟫의 불법 시청 순위가 의외로 낮고, 극장 개봉 이후 디즈니+로도 공개된 여러 마블 영화의 비중이 높습니다.
출처: boxofficemojo
출처: variety
  • 왜 보았나- 대답은 결국 접근성의 문제
    보고 싶은 콘텐츠를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점 말고,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한 합법적인 서비스가 아니라 불법 플랫폼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 조사에서, 콘텐츠를 불법 시청한 응답자의 30% 이상은 ‘콘텐츠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어서’, 또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볼 수 없어서’ 불법 시청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응답자 3명 중 1명은 2021년과 비교해서 TV 프로그램의 절대적 수가 많아진 2022년 불법 콘텐츠를 더 많이 봤다고도 대답했고요.
    다른 기관에서 진행한 조사에서도 불법 유통 콘텐츠 시청자의 약 54%가 합법적인 서비스를 동시에 이용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종합하면, 요즘 콘텐츠 불법 유통의 세계는 금전적/지역적 접근성 등을 이유로 원하는 콘텐츠를 볼 수 없을 때, 고정적으로 찾는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를 방문하며 활성화되는 것 같아요.


콘텐츠 불법 유통의 세계는 지금 – 공급 편

양지와 음지 사이, 평범한 우리들은 어둠의 경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레터를 준비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두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조금 얻게 되어 정리해 보았습니다.

출처: unsplash

먼저, 도대체 불법 스트리밍은 어떻게 무단으로 OTT 서비스의 콘텐츠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한번쯤 이름을 들어 보았을 디도스 공격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지만, 몇 년 전부터는 ‘CDN 리칭(CDN Leeching)’이라는 개념이 떠오르고 있다고 해요. CDN(Content Delivery Network;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은 단순하게 말하면, 콘텐츠 전송 속도를 높이기 위해 OTT 서비스의 원본 서버와 콘텐츠를 시청하고자 하는 사용자 사이를 매개하는 기술로,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스트리밍 기업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CDN 리칭은 승인되지 않은 유저가 CDN으로부터 콘텐츠를 얻을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공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격에 성공하면, 승인되지 않은 목적지로 콘텐츠가 연결됩니다. 때문에, CDN 리칭을 통해 불법 스트리밍을 운영하는 플랫폼은 서비스의 껍데기만 만들어 두고, 합법적 스트리밍 기업의 CDN을 이용해 콘텐츠를 제공하는데요. 이렇게 되면,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을 갖고 있는 방송사/배급사부터 서비스를 운영하는 플랫폼 기업까지, 콘텐츠 생태계의 합법적인 플레이어들은 모두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죠.


두 번째, 콘텐츠를 불법적으로 유통하는 이유, 그 수입원과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요?

미국 비영리 단체 Digital Citizens Alliance(DCA)의 추산에 따르면, 영상을 포함한 콘텐츠 불법 유통 플랫폼은 구독과 광고료로 연 23억 달러(약 3조원) 이상을 벌어들인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악성 소프트웨어, 랜섬웨어, 개인 데이터 판매 등을 통한 수입은 포함되지 않았고요. 역시, 이유 없는 공급은 없습니다.

두 곡선, 움직일 수 있을까
출처: unsplash

콘텐츠 불법 유통에 대해 한바탕 알아보다 보니,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절묘한 위치에 누누티비 같은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가 위치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만나지 말아야 할 점이기에, 영상 업계와 관련 당국은 두 곡선을 움직이기 위해 다양하게 노력하고 있어요.


레터 초반부에도 언급했지만, 국내 영상업계는 저작권 침해와 무단이용을 근절하기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방송·영화·OTT사가 공동으로 영상저작권보호협의체를 구성하고, 다가오는 9일 누누티비를 형사 고소할 예정이라고 해요. 신설된 협의체에는 글로벌 불법복제 대응조직 ACE(Alliance For Creativity and Entertainment)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ACE는 올해 초만 해도 유럽 영상 업계와 협업하여, 프랑스 유명 불법 사이트 Extreme-Down을 폐쇄시켜, 더욱 적극적인 대응이 기대됩니다.


얼마 전, 누누티비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공식 보도도 있었습니다. 누누티비 접속주소는 제가 처음 인지했던 시점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 차단과 재생성을 반복했지만, 끊임없이 대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직접적인 대처 외에도 콘텐츠 서비스에 대한 접근방식을 달리하는 시장의 움직임도 존재합니다. 북미 시장에서 최근 지속 성장하고 있는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TV(Free Ad Supported Streaming TV)로 과금에 대한 부담이 없는 상품이 시장에 지속 소개되고 있고, 국내에는 애그리게이터 성격의 구독형 멤버십 상품도 제공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디즈니+, 유튜브, 요기요 등 여러 플랫폼의 구독권을 할인받을 수 있는 유플러스의 유독이 대표적이에요.


제가 참고했던 버라이어티지의 리포트 ‘콘텐츠 불법 유통의 새로운 얼굴(The Face of Content Piracy)’에서는 시청자들에게 콘텐츠 정보를 알 권리와 자율적으로 볼 수 있는 자율권이 필요하다는 신선한 주장도 있었고요.

조사를 하다가 알게 된 개념인데, 온라인상에서 어떤 정보를 숨기거나 삭제하려다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어 오히려 그 정보의 확산을 가져오는 것을 스트라이샌드 효과라고 하더라고요. 이번 누누티비 이슈도 경찰 수사로 전환되면서 비슷한 효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냐는 비판 아닌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레터를 쓰면서, 유난히 문장 하나, 단어 하나가 조심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스트라이샌드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현황을 소상히 설명하는 것이 누군가를 정당화하거나 비난하는 일이 될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이번 레터가 여러분에게 불법 콘텐츠는 무료 콘텐츠가 아니라 무단으로 사용된 콘텐츠라는 기억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의 콘텐츠 추천

Kitbull | Pixar SparkShorts

에디터 <구운김>의 코멘트
이번 주제가 '어둠의 경로'였기에, 콘텐츠 추천만큼은 제작사에서 무료로 공개한 합법적인 영상을 소개합니다. 픽사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영화 상영 전 공개되는 숏 필름 'Pixar SparkShorts'를 무료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상을 가져왔어요. 손바닥보다 작은 아기 고양이와 핏불의 사랑스러운 우정, Kitbull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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