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테스형을 만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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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간 강혁진입니다. 

길게만 느껴졌던 연휴의 마지막 날 저녁입니다. 모두 많이 먹고 적게 찌셨나요? 저는 연휴 직전과 비교하면 몸무게가 딱 1kg정도 늘었습니다. 칼로리 고민없이 먹은 것에 비하면 적게 찐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드네요. 

5일간의 길었던 연휴동안 많은 음식을 먹고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번 연휴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예상해보건대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하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둘러앉아 미리 준비해 갔던 게임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젠가 게임을 하며 설거지를 할 사람을 정하기도 하고, 스피드게임을 하며 소정의 선물을 받을 사람을 정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흥미진진하게 게임에 빠져있을 때 즈음, 누군가 TV를 틀었습니다. 

연휴 내내 TV는 거의 보지 않았는데, 보기 어렵다는 ‘나훈아' 콘서트를 TV에서 한다기에 온 가족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게임을 하느라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잠깐씩 곁눈질로 보던 화면에서는 TV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퀄리티의 CG와 대규모의 공연이 구현되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공연을 보고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의 얼굴이 비쳐지기도 하고, 수십 명의 댄서들이 나와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국악과 영상 그리고 트로트가 합쳐진 콜라보레이션 무대가 준비되기도 했습니다. 찢어진 청바지와 하얀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열창을 하는 나훈아의 모습에서는 그야말로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백명이 넘는 마케터들이 함께 있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는 나훈아 콘서트 이야기로 순식간에 난리가 났습니다. 올레TV를 기준으로 70%까지 치솟는 시청률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트위터와 SNS에 올라오는 나훈아 관련 기사와 공연평을 공유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20~30대의 마케터들이 70대 가수의 열정에 감화되어 쉬지 않고 카톡을 쳐댔습니다.

공연을 보신 분들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제가 꼽은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나훈아가 신곡 ‘테스형'을 부르는 장면이었습니다. 공연 며칠 전 우연히 가수 나훈아가 신곡을 냈다는 소식을 접했고, ‘소크라테스'를 줄여 ‘테스형'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제목을 듣고는 조금 우스워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성이 ‘소크라’, 이름이 ‘테스’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천 년 전 철학자를 ‘형'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뭔가 어색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도대체 무슨 내용의 노래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방송에서 나훈아가 ‘테스형'을 부르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무대에서 옅은 웃음과 비장한 표정을 동시에 머금은 나훈아가 ‘테스형'을 찾으며 노래하는 모습을 본 순간, 제가 가진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온갖 산전수전을 겪고 인생의 참 뜻을 알 것만 같은 나이의 노가수가 부른 노래는 저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습니다. 트로트에 가미된 70대 노가수가 가진 삶에의 고민 그리고 그때 등장하는 소크라테스까지. 거기에 화려한 무대와 카리스마가 절묘하게 합쳐진 그의 ‘테스형' 무대는 조금은 감동적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젊은 가수가 이 가사와 제목을 가진 노래를 불렀다면 장난스럽게 들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의 세월을 가진 예술가가 멋진 무대에서 보여준 단 몇 분의 시간으로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편견들이 깨졌습니다. 나훈아라는 가수의 팬도 아니고 관심도 없던, 심지어 넘쳐나는 트로트 컨텐츠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제가 연휴 내내 ‘아! 테스형~’을 입에 달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 ‘테스형'이라는 제목을 듣고 우습게만 느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수개월을 준비해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전달하고 ‘증명'해낸 나훈아라는 사람의 삶이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며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더 많이 생각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겨우 40 언저리가 되었는데 말입니다. 나이가 70이 넘은 가수의 공연을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일과 말을 어떻게 세상에 제대로 펼쳐 볼 수 있을지 말입니다. 

나훈아의 말처럼,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나이를 먹어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월이 그리고 나이가 저를 먹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세월의 모가지를 비트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어쩌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세월의 모가지를 비트는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님도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고 나아가시길.
가끔 힘들면 테스형이 답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간 강혁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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