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혹시 위키드와이프에서 수명을 줄여가며 촬영한 엄청난 페어링영상시리즈를 클래스101과 제작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그때는 가로수길 매장을 성수로 이전하는 막바지 겨울이라 정말 그렇게 혹독하고 고되게 영끌혼끌하며 잘 만들어놓고 홍보를 하나도 제대로 못했던 것 같아요(억울 😅) 오늘 글을 올리는 이유는 동영상을 홍보해 부자가 되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때 영상을 다시 보니 주제각도를 정말 잘 설정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당시 제가 추구했던 제목은 (1) 떡볶이와인을 찾는 모험 (2) 살면서 알아두면 좋은 포도품종 20가지 였습니다.  와, 정말 끝내주게 힙하고 위키드라는 브랜드는 초지일관 같은 목소리로 몇년을 성장해오지 않았나요? 싶습니다.... (죄송해요 새해에는 나를 아껴주고 칭찬 많이해주기 😎) 그때 포도품종 20가지만 알면 사는데 아무지장 없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그게 정말 그렇습니다. 게부르츠트라미너 몰라도, 비오니에 몰라도 괜찮아요. 샤르도네만 있으면 평생 마실 화이트와인은 충분합니다. 물론 지적 호기심으로 넘쳐나는 분들에게는 한 가지가 부족하니 다섯가지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오늘 2023년 계묘년 특집은 지난 2년간 내보냈던 청포도 중, 기본기 포도 세 개입니다. 벌써 신이 나네요! 

연극계에는 '천의 얼굴'이라는 단어가 존재합니다. 한 사람이 다양한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소화할 때 쓰는 단어지요. 우리는 샤르도네가 그런 포도라고 생각했어요. 기후에 따라, 지역에 따라, 생산자에 따라 너무도 다양한 천의 얼굴을 보여주는 샤르도네. 지역에 따라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져요.

• 🌷서늘한 지역의 샤르도네 : 프랑스 부르고뉴, 특히 샤블리의 샤르도네는 깨끗한 레몬과 짭짤한 광물성 맛을 주는 '미네랄 뉘앙스' 말고는 그다지 소란스럽게 설명할 형용사가 없어요. 단순하고, 깔끔하고, 산도는 날카롭습니다. 그런데 왜 그토록 복잡다단하고 미묘한지, 이 부분이 바로 미스테리??
• 🌿 따뜻한 지역의 샤르도네 : 늦봄의 살구, 이른 가을의 장호원 복숭아. 이탈리아 북부 알토아디제나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에서 만드는 샤르도네는 핵과일을 품은 둥글둥글, 맛있는 단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콤한 산미를 잃는 법도 없고요. 언제 어디서나 맛있게 누구든지 즐겨요! 
• 🍍 더운 지역의 샤르도네 : 캘리포니아, 특히 나파밸리 샤르도네를 통해 파인애플과 망고, 리찌의 향연을 감상해보세요. 오크통에 숙성됐던 샤르도네라면 버터, 바닐라, 화이트초콜렛 향도 당연히 함유하고 있습니다. 날씨 레벨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다양한 매력을 드러내는 샤르도네를, 오늘 WKD레터를 통해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를 가져보세요!

소비뇽블랑 단어사전에는 구즈베리, 잔디, 고양이오줌 같은 단어들이 튀어나옵니다. 사랑스러운 과일향은 맞는데 어딘지 모르게 찌릿하고 강렬한 향, 알프스소녀 하이디가 잔디밭에서 뛰어놀 때 신발굽에서 뭉개진 신선한 잔디와 허브의 향이 나는 맑고, 깨끗하고, 선명한 청포도예요. 뉴질랜드 말보로에서 재배될 때는 더 강렬하고, 원조인 프랑스 루아르에서는 더 섬세하고 차분하게 표현됩니다. 종종 같은 포도 맞는지 의문을 갖는 분들도 있는데, 일란성 쌍둥이가 각각 프랑스와 뉴질랜드 문화권에서 유학한 느낌? 상처받은 적 없는 해맑은 넌 참 맛있다 :)

만약 와인에도 연애의 기술이 적용된다면? 이런 방법을 한번 써보세요 ☺ 위키드와이프 뉴스레터를 독파하고 그동안 외운 포도품종 이미지를 기억한 뒤, 만나는 사람에게 'ENTP야?'라고 묻는 대신 '리슬링같으시네요?' 해보는 거죠. 어이 없으셨다면 죄송합니다... 🙈 하지만 이게 진짜 먹히거든요! 리슬링은 영롱한 신맛청포도구슬사탕같은 포도입니다. 알맹이가 작고, 조금 늦게 익는 포도예요. 리슬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와인의 스타일은 지역별로 정말 다양한데요, 혹시 저렴한 단맛나는 리슬링에 대한 편견을 갖고 계시다면 그건 일부 지역의 일부 스타일에 국한된 것이니 빨리 선입견을 버리고 리슬링의 다양한 매력을 경험해보세요.

1. 프랑스 알자스 : 날카로운 산미, 약간의 주유소 가스(페트롤향, 긍정적인 표현)향이 느껴지는 군더더기 없는 매력 만점 리슬링을 만들어요. 심플한데 왜 섬세할까? 그게 미스테리!
2. 독일 모젤, 라인가우 : 여러분이 알고 있는 단 맛 리슬링은 보통 독일 리슬링입니다. 재밌게도 독일은 와인등급을 당도로 구분하는데, 카비넷- 아우스레제-슈페트레제 - 베른아우스레제- 트로켄베른아우스레제- 아이스바인으로 점점 더 달콤해지고, 점점 더 값비싸져요. 카비넷 등급 리슬링은 가격도 가장 합리적이고, 매운 김치찜이나 불닭에 페어링하기 좋은 최고의 한식 매운음식 친구!
3. 호주 남서부, 에덴밸리 또는 미국 워싱턴주 : 위의 1번 2번이 극과 극의 스타일을 보여준다면, 이 곳의 리슬링은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럽고 낭창낭창합니다. 꽃향기를 포함한 감미로운 아로마를 기본으로 피크닉 갈 때 들고가기 딱 좋은 밸런스 화이트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