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저번에 소개해 드린 『지구를 가꾼다는 것에 대하여』에 이어서 오늘은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들고 왔어요. 제목에서 벌써 채식주의를 옹호하는 내용이리라고 예상되는데요. 저자 자신도 책을 쓰기 전까지는 그럴 줄 알았대요. 그런데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관해 쓰자니, 이건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에 관한 일임을 깨달았다고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첫 번째 논픽션은 최고의 요리사였던 할머니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어릴 때 할머니 댁에서 자주 주말을 보냈다. 도착하는 금요일 밤이면 할머니는 나를 숨도 못 쉴 정도로 꼭 껴안아 땅에서 번쩍 들어 올리곤 하셨다. 그리고 떠나는 일요일 오후에 또 한 번 나를 허공으로 들어 올리셨다. 몇 년이 지나서야 할머니가 내 몸무게를 가늠해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할머니는 맨발로 다니면서 썩어 가는 감자나 남은 고기 조각과 껍질, 뼈다귀나 씨에 붙은 것 등 남들이 먹을 수 없어 버린 것을 긁어모아 먹으면서 전쟁에서 살아남으셨다. 그래서 내가 점선을 따라 쿠폰을 오려 드리기만 하면 줄 밖에 서서 얼굴을 붉히고 있어도 전혀 상관 안 하셨다. 그리고 호텔 뷔페에 가면, 우리가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할머니는 샌드위치를 포개 냅킨에 둘둘 싸서 점심거리로 가방에 슬쩍 챙기셨다. 티백 한 개로 몇 잔이고 필요한 만큼 접대용 차를 만들 수 있으며, 사과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준 사람도 바로 우리 할머니였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오려 낸 쿠폰 중 상당수는 할머니가 절대 사지 않는 먹을거리들와 관련된 것이었다.)

건강도 문제가 아니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제발 콜라 좀 마시라고 성화를 하셨다.)
할머니는 가족들이 모여 식사할 때에도 절대 자리에 앉는 법이 없었다. 수프는 그릇마다 다 떴고, 솥단지를 더 젓거나 오븐을 살펴볼 필요도 없어서 할 일이 더 이상 없을 때에도 탑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 파수꾼(혹은 죄수)처럼 주방을 지키셨다. 아마도 할머니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셨던 것 같다.

유럽의 숲에서 할머니는 오직 살아남아 다음번에 또 먹을 기회를 얻기 위해서 먹었다. 50년이 지난 후 미국에서 우리는 입맛 당기는 대로 먹었다. 찬장에는 기분따라 산 음식들, 지나치게 비싼 식도락용 음식들, 필요하지도 않은 음식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유효 일자가 지나면 냄새도 맡아 보지도 않고 그대로 버렸다. 아무 걱정 없이 마음껏 먹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셨다. 하지만 할머니 자신은 절박함을 떨쳐 버리지 못하셨다.

어린 시절, 형제들과 나는 할머니가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최고의 요리사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음식이 식탁에 차려질 때면 그 말을 고대로 복창했고, 처음 한 입을 먹고서 또 한 번, 식사가 끝날 때 또 한 번 복창했다. “할머니는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최고의 요리사예요.” 하지만 우리는 진짜로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최고의 요리사라면 아마도 요리법을 한 가지 이상은 알 것이고, 최고의 요리법에는 재료가 두 가지 이상은 들어가리라는 사실을 알 만큼은 영악한 아이들이었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색이 짙은 음식이 색이 연한 음식보다 더 건강에 좋다든가 영양분은 대부분 껍질에 있다는 얘기를 해 주실 때 왜 할머니께 물어보지 않았을까? (주말의 샌드위치는 남겨 두었던 호밀빵 덩어리 끄트머리로 만들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자기보다 큰 동물은 몸에 아주 좋고, 자기보다 작은 동물은 몸에 좋고, (동물이 아닌) 생선은 몸에 이로우며, 다음으로 이로운 것은 (생선이 아닌) 참치, 그다음은 채소, 과일, 케이크, 쿠키, 소다 순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몸에 나쁜 음식은 하나도 없다. 지방도 건강에 이롭다. 양과 관계없이, 지방이라면 언제나 다 좋은 것이다. 설탕도 건강에 아주 좋다. 아이들은 뚱뚱할수록 건강한 것이다. 특히 남자아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점심 식사는 한 번으로 끝내서는 안 되고, 11시, 12시 반, 3시, 세 번은 먹어야 한다. 배는 항상 고프니까.

사실 할머니의 닭과 당근은 정말로 아마도 내가 먹어 본 것 중에서 가장 맛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요리했는지, 심지어 어떤 맛이었는지와도 거의 무관했다. 할머니의 음식은 우리가 맛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맛있었다. 우리는 할머니의 요리 솜씨를 하느님보다 더 열렬히 믿었다. 할머니가 주방에서 뽐내신 무용(武勇)은 내가 한 번도 뵙지 못한 할아버지의 간지(奸智)나 우리 부모님이 딱 한 번 했던 부부싸움처럼 우리 집안에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너무나 좋아했고, 그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를 정의했다. 우리는 싸움을 현명하게 택한 집안이었으며, 기지로 속박을 헤쳐 나왔고, 여성 가장의 음식을 사랑했다.

아주 먼 옛날 옛적, 너무나 선량하게 살았기 때문에 자기 삶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할머니에 대해서라면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딴 세상 얘기만 같은 할머니의 어린 시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던 일, 모든 것을 다 잃었던 일, 이주와 더 큰 상실, 동화(同化) 과정에서 겪은 승리와 비극. 언젠가는 그 일들을 내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해 주겠지만, 우리끼리는 그 이야기를 입에 잘 올리지 않았다. 할머니를 당연히 불러 드려야 할 칭호로 부르지도 않았다. 그냥 최고의 요리사라고 불렀다.

어쩌면 할머니의 다른 이야기들은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할머니가 스스로를 생존자보다는 나누어 주는 존재로서 자리매김하고 싶은 마음에서 당신의 이야기들을 추려 냈을 수도 있다. 할머니의 생존은 할머니가 나누어 준 것 속에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음식과 관련된 할머니의 이야기는 할머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다른 모든 이야기들을 다 아우른다. 할머니에게 음식은 그냥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포, 존엄, 감사, 복수, 기쁨, 굴욕, 종교, 역사, 그리고 물론 사랑이었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준 과일들은 항상 우리 가족 나무의 망가진 가지에서 딴 것들이었듯이.

“우리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늘 넉넉했단다. 목요일에 빵과 할라와 롤을 구우면 일주일은 너끈했지. 금요일에는 팬케이크를 만들었고, 안식일에는 항상 닭고기와 국수를 먹었지. 푸줏간에 가서 비계를 조금 더 얻어 오곤 했지. 기름기가 제일 많은 부위가 최상급이었단다. 지금하고는 달랐지. 냉장고는 없었지만, 우유와 치즈가 있었어. 채소를 가지가지 다 먹지는 못해도, 양은 충분했단다. 네가 여기에서 먹으면서 당연하게 여기는 그런 것들은……. 하지만 우리는 행복했단다. 우리가 아는 건 그 정도였어.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했지.

그러던 중 모든 것이 바뀌었지. 전쟁은 그야말로 지옥이었고,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단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우리 가족과 헤어졌어. 밤이고 낮이고, 쉬지 않고 달렸어. 독일군들이 줄곧 내 등 뒤를 바짝 쫓고 있었거든. 멈추는 날에는 죽는 거야. 먹을 것도 충분치 않았어. 나는 먹지 못해서 점점 더 병이 깊어졌단다. 뼈만 남은 정도가 아니었어. 온몸이 다 짓물렀지. 움직이기도 힘들었어. 몸이 너무 나빠져서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았단다. 남들이 먹으려 하지 않는 것을 먹었지. 제 입만이라도 해결할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어.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먹었지. 너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도 먹었단다.

최악의 시기라도 선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란다. 누군가 나에게 바지 끝을 묶으라고 가르쳐 준 덕분에 바짓가랑이에 감자를 가득 채워서 몰래 훔쳐 올 수 있었지. 그렇게 먼 길을 걷고 또 걸었어. 언제 다시 좋은 때가 올지 모르는 거니까. 한번은 어떤 사람한테서 쌀을 좀 얻어서, 시장까지 이틀을 가서 비누랑 바꾼 다음 다시 다른 시장으로 가서 비누를 콩하고 바꾸었지. 운도 따라야 하고, 직감도 있어야 해.

최악의 상황도 끝이 가까워졌단다. 많은 이들이 바로 그 끝이 다 왔을 때 죽었지. 내가 또 하루를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어. 한 러시아 농부가 내 꼴을 보고는 자기 집으로 들어가더니 나에게 줄 고기 한 조각을 갖고 나왔단다.”

“그 농부가 할머니 목숨을 살렸군요.”

“난 먹지 않았다.”

“안 드셨다고요?”

“돼지고기였어. 난 돼지고기는 절대 먹지 않아.”

“어째서요?”

“어째서냐니?”

“그게 코셔(전통적인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선택, 조제된 음식물)가 아니라서 안 드신 거예요?”

“그야 물론이지.”

“하지만 먹으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데도 안 드셨단 말이에요?”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다면, 지켜야 할 것도 없는 법이란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1977년 워싱턴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교에 진학한 후 철학과 문학을 전공했다. 1999년 대학 2학년생이었던 포어는 빛바랜 사진 한 장만을 들고 우크라이나로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은 2차 대전 당시 자신의 할아버지를 학살로부터 구해 주었던 한 여성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완성한 첫 번째 소설 『모든 것이 밝혀졌다』(2002)는 출판계에 화제에 뿌리며 포어에게 '분더킨트(신동)'라는 칭호를 선사했다. 두 번째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은 9.11 사건을 배경으로 아홉 살짜리 소년 오스카의 이야기를 넘치는 에너지와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다양한 방식의 시각적 효과를 동원해 그린 작품으로, 미국 문단에서 새로운 소설의 시대를 둘러싼 논쟁을 일으켰다. 포어의 첫 번째 논픽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2009)는 소설가의 예민한 감성과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육식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 주며, 발표 당시 많은 언론의 주목과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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