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꼭 가봐야 할 제주4·3 유적지

2020년 3월 ㅣ 관덕정 광장

'환희와 좌절' 제주 현대사의 앞마당, 관덕정 광장
73년 전 해방의 환희가 있었던 현장으로 갑니다. 일제 강점기에 고향을 떠났던 제주도 청년들이 해방이 되자 제주로 돌아왔습니다. 자그마치 6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제주에 돌아왔지요. 제주섬 사람들은 해방된 나라에서 새로운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1947년 3월 1일, 
누군가는 이날을 "제주현대사에서 분수령으로 기록될 만큼 역사흐름의 한 획을 그은 날"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날 제주시 삼도리의 북국민학교 운동장과 인근 관덕정 광장은 도민들의 목소리로 들썩였습니다. 제28주년 3·1 기념 제주도대회가 북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열렸기 때문입니다. 

"단선, 단정 반대한다! 통일정부 수립하자!" 기념대회에는 약 3만 여명의 도민들이 참석했습니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지요. 관덕정에 열린 기념대회와는 별개로, 제주도내 10개 면지역 곳곳에서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각 지역마다 수천명 씩이 모여 전체 참가 인원은 5만 여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사건은 기념대회가 끝난 오후 2시 경에 벌어졌습니다. 시민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두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제주북국민학교를 나온 행렬은 두 갈래로 나뉘어 한쪽은 미군정청과 경찰서가 있는 관덕정 광장을 거쳐 서문통으로, 다른 한 대열은 감찰청이 있는 동문통으로 향했습니다.

서쪽 행렬이 관덕정 앞을 빠져나갈 즈음 어린 아이가 기마 경찰의 말발굽에 치였지만 경찰이 아무런 조치 없이 가버렸습니다. 이에 격분한 군중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이에 대한 경찰의 발포로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3·1절 발포사건입니다.  해방 이후 미군정 하에서 친일 경찰들이 재등용되는 등 경찰에 대해 쌓여있던 분노가 폭발할 수 밖에 없었던 사건입니다. 사망자들에 대한 검안을 실시한 결과, 희생자 1명을 제외한 5명이 등 뒤에 총탄을 맞은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도민들은 이같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며 3월 10일 민관 총파업을 결의하게 되고 이는 4·3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한편 1945년 9월, 제주에서 건준청년동맹이 결성됐는데 그 현판이 관덕정 기둥에 걸렸었습니다. 건준청년동맹은 관덕정 정자를 사방으로 막아 사무실로 썼다고 합니다. 미군정이 제주에 주둔하자 건준청년동맹은 제주인민위원회 사무실(제주시 중앙로 53 일대)로 옮깁니다. 또 1949년 6월 6일에는 마지막 인민유격대 사령관 이덕구가 사망하자, 토벌대는 이덕구의 시신을 이곳 관덕정 광장에 전시했습니다.  

관덕정 광장 일대는 해방의 환희가 좌절로 뒤바뀐 제주 현대사의 현장입니다. 하지만 현재 관덕정 주변에는 당시의 건물들이 대부분 사라져 그날의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제주경찰감찰청, 제주지방법원 등 예전 관공서 건물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제주 목관아지와 관덕정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몇차례 보수공사가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3·1절 발포사건을 알리는 안내판 하나 없어, 시민들은 이곳의 4.3의 도화선이 된 역사의 현장임을 알 길이 없습니다.

🚌 찾아가는 길
     제주시 삼도2동 관덕로 19
     제주버스터미널 정류장 버스(444) 탑승 - 관덕정 정류장 하차
     서귀포버스터미널 정류장 버스(182) 탑승 - 제주시청(광양방면) 정류장 하차 후 버스(365)탑승 
- 관덕정 정류장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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