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행 뽐뿌오는 감미료 |

오늘의 주성분 : 여🧳🛫

고독의 끝판왕, 산티아고 순례길. 순례자 경력의 lo
고독에의 초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가 지은 '여행에의 초대(l'invitation au voyage, invitation to a journey)'라는 시가 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고독으로 초대하고자 한다. 


외노자 시절의 lo
  대학교 2학년, 1년을 폭풍처럼 겪은 후 아무런 준비도 없이 3학년을 맞았다. 주변 친구들은 교환학생이나 해외에서 경험을 쌓고 있었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체코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근데 한 달만에 그만두고 쭉 여행만 했다. 아무튼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외국에 있는 동안 매일 기록을 SNS에 올렸다. 그중 기억나는 일기가 있다.
  내년에 나는 어디에 있을까?

  이 물음을 곱씹으며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아르헨티나 교환학생을 결심한다. 근데 이게 또 어그러졌다(그러다가 이 시국...). 이 얘기도 중요한 게 아니긴 하다.


방랑자 시절의 lo
  약 5개월을 떠돌아 다녔다. 매일같이 자는 곳이 바뀌고, 다른 언어에 휩싸이고, 다른 날씨에다가 한번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나지는 않았다. 바뀌지 않는 것은 나였다. 머리가 길어지고 날이 추워졌는데도 '나'는 바뀌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나도 바뀌고 있었을 지도.


  여행을 소비하고 자랑하고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경험은 체화되지 않으면 아무리 해봤자 의미가 없다. 체험과 경험은 다르다. 여행이 지겨운 사람들. 단순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고개를 돌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는 당신에게 '고독해 질 것'을 권한다.

  고독한 가운데서, 모든 것이 바뀌고 흩어지는 순간에 내게 있는 것은 나였다. 나의 경험, 능력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나 하나였다. 

  나는 누군가의 관계로 정의된 내가 아니었고, 내 행동거지에 종속되거나 내 과거로 평가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나였다. 

  도피가 아니라 다른 배경에 나라는 캐릭터를 자꾸 배치시키는 과정이었다. 각기 다른 배경에서 독립적인, 고독한 나를 만나는 일은 내가 누구인지, 사람이 무엇인지, 왜 인간인지, 내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차근차근 알려주었고, 지금도 계속 깨닫는 중이다. 


나는 왜 고독해지고 싶어하는가? 
  성장을 원하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차분하고, 바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매우 활동적인 사람이다. 엄청 사교적이다. 하지만 가볍다는 것은 아니다. 

  지구에서 가장 큰 물질은 무엇일까? 나는 바다라고 생각한다. 
  바다는 온갖 것을 끌어안고 정화한다. 바다가 화를 내진 않는다. 멘틀이 화내는 거잖아.

  그렇게 깊고, 난류와 한류가 섞이는 곳에서 생명을 피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의 여행은 고독감으로 시작해서 고독행으로 종결된다. 
  모든 사람이 고독하다. 외롭다. 그걸 모두가 느낀다니 우습지 않은가?

  우리는 이것을 말로 표현하는 데에 한계를 느낀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어를 초월한 정서적인 유대로 삶을 이어나간다. 


여행은 삶의 중간이다. 
  아, 삶이 여행이라고? 그럼 삶은 여행의 사이다. 

  어쨌거나 나에게 여행은 고독에의 수행이다. 낯설고 수시로 변하는 환경에서 나를 지켜내는 것. 그러기 위해선 나를 오롯이 보아야 하고, 내가 바로 서 있지 않으면 안된다. 

  혹시 오해할까봐 남기는 말인데, 어디 틀어박혀서 혼자가 되어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어? 비혼주의를 장려하는 것도 아니다. 해외에 가야만 얻는 깨달음도 아니다. 

  나의 존재를 한 발짝 떨어져서 마주하라는 뜻이다.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와 당신이 같다는 것. 사람이 다 똑같다는 것. 우리가 다 똑같이 고독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진짜 고독하기 위한 여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고독 속에서 다른 고독한 존재를 끌어안는 것. 내 여행에 초대하는 것. 혹은, 내 삶에 초대하는 것. 

나는 당신에게 고독을 권하는 바이다. 


- 그래서 조용한 새벽을 가장 좋아하는 lo
'아끼다 똥 된다'

나의 유럽여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방학마다 비행기를 탔지만 우랄산맥을 넘지 않았던 건
두 번 다시 안 와도 될 정도로 흠뻑 즐기다 간다라는 여행관 때문이었다.

교환학생을 유럽으로 가서 반 년 동안 바람처럼 떠돌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한 마디로 뽕을 뽑기 위해아껴두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많이들 가고 여러 번 가는 친구들도 있어서 나도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번 교환학생 지원을 미뤘다.
한 번은 동아리 때문에. 한 번은 영어공부를 덜 해서. 한 번은 돈이 덜 모여서. 핑계도 다양했다.
그리고 드디어! 영어점수도 만들고 돈도 모아서 지원했고, 원하던 도시에 파견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2020이 되었다.
그리고 2020이 되었다.
그리고 2020이 되었다.
열심히 모은 내 총알은 몽땅 주식계좌에 들어가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스케일의 전염병과 제노포비아를 감당하기엔 내 배포가 그렇게 크지 못했다.
하지만 또 코로나만 탓하기엔 스스로 놓아버린 학기들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지. 덜 속상하게 주식이나 더 올랐으면 하는게 내 지금 심정이다.

난 좀 그런 경향이 있었다. 기껏 모아놓고 쓰질 않았다.
어렸을 땐 색색깔 반짝이펜을 필통에 모아놓고 전시만 하다가 잉크가 굳어버려서 결국 다 버린 적도 있고,
온라인 게임을 할 땐 게임 속 재화를 안 쓰고 야금야금 모았다가 쓰지도 못하고 게임이 질려서 접어버렸다. 바보같은 일이다. 캐시를 쓰면서 게임을 했다면 캐릭터 키우는 게 더 수월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래서 더 오래했을지도 모를 일인데.

아까워서는 아니다. 이 재화가 가장 잘 쓰일 수 있을 때, 효용이 극대화되는 그 타이밍에 사용하고 싶을 뿐.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앞서 언급한, ‘한 번 간 곳은 뽕을 뽑는다가 여행관이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지도.

그렇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이렇게 길게 지속될 지도 몰랐던 천재지변을 겪으며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고 하고 있다.
천성이 흥청망청 탕진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행동을 결정하는 기준치를 좀 더 너그러운 방향으로 조정해보려고 한다.
그 행동의 첫 번째는조금 더 저점에 매수하지 못하고 조금 더 고점에 매도하지 못한 주식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기가 될 것이다.
아무튼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아끼똥은 없을 것이다.

Vaccine 맞으면 Vㅏ로 Vl행기표 끊을 V
가끔 여행은 필연이다.

여행지에서 내가 나에게 쓴 편지는 두고두고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가끔 여행은 필연이다. Sometimes a journey makes itself necessary.
-앤 카슨, 빨강의 자서전

우리는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듯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발걸음을 지니고 있다. 같은 곳에 내리지만 너무나 다양한 표정과 발걸음을 하며 뿔뿔이 흩어진다. 목적지는 비슷할지라도 우리가 걷는 세세한 길은 참 다르다.

덜컹덜컹 버스나 기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넘어 본다.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 빛이 반짝이는 널찍한 플랫폼을 다시 볼 때까지. 그 사이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헛헛하고 설레는가. 창밖을 바라보면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너무도 빨리 지나쳐가고 저 멀리 산과 구름은 가만히 서있는 듯 보인다. 자동차도, 공장도, 마을도 장난감처럼 참 아담하다. 멀리 있는 것들은 그 자리 그대로 영원히 머물 듯이 보인다.

인생도 여행길과 비슷하다. 지금 이 순간은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이 엄청난 속도로 달아나버린다. 순간을 놓치는 와중에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는 과거나 미래의 것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과거도, 미래도 어차피 지나갔거나 지나갈 순간일 뿐인데. 왜 우리는 눈 앞에 놓인 길을 바라보는 것은 이토록 어려워하면서 저 멀리 있는 다른 순간을 좇으려 하는 것일까? 마치 멀찍이 떨어진 스크린을 통해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돌려보듯이 말이다.

여행을 떠날 때도 순간 그 자체에 몰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다음에 갈 곳을 위해, 최적의 선택지를 위해 동선을 머리에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이 여행이 마지막이라는 듯이 행동하는 것 같지만 정작 그 순간을 꼭 껴안지 못한다. 특히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여행보다 여행 너머의 것들을 신경 쓰다 보면 여행을 하며 마음이 오히려 복잡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때로 무작정 떠난 가장 우연한 여행이 필연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이 여행이 내 인생에서 꼭 필요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시기에 훌쩍 떠난 여행이 잊히지 않는다면, 그 여행을 통해 스스로가 새로 거듭난 느낌이 든다면 그 여행도, 당신도 서로를 필요로 했을지 모른다. 당시에는 세세히 파악이 되지 않았더라도, 느낌이 좋지 않았을 지라도 후에 돌이켜보면 그 순간의 당신을 힘껏 끌어안아준 여행. 혹은 아팠을지라도 그 아픔을 통해 껍질이 깨어지며 더욱 성숙해진 당신 옆에 그 여행이 서있다

당신에게 그런 필연의 여행이 있는가

From. Ja
🍯오늘의 감미료🍯
🍯책가Vang🍯
<더불어숲> 신영복

©신영복 아카이브 http://www.shinyoungbok.pe.kr
언제부턴가 문학과 멀어진 저지만, 이 책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자 수필집이랍니다.

경제학자이자 문학가, 그리고 철학자였던 故신영복 교수가 처음으로 세계여행을 하며 보고 느낀 감상을 남긴 수필집인데요, 편지의 문체로 작성되어 해외여행을 하는 친구가 보낸 엽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 도시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세심하고도 따뜻하게 관찰하고, 그를 통해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체가 가져야 할 자세를 제시하는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출간된 지 20년이 다 된 책이지만, 20년의 세월도 꿰뚫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죠.
그리고 세계 방방곡곡 누비는 작가를 보며, 여행 뽐뿌도 정말 많이 오는 책이기도 합니다!

+) 서치하다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의 제목이 더불어민주당 당명의 모티브라고 하네요. 신영복 교수도 진보성향이 강한 학자였지만, 이 책은 정치색은 거의 없다는 점 덧붙입니다.
🍯lo등 책방🍯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이미지 클릭 시 지대넓얕의 저자, 채사장이 읽어주는 싯다르타를 들을 수 있습니다.
"진리는 가르칠 수 없다는 것. 
이 깨달음을 나는 일생에 꼭 한 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다.
그 시도가 바로 싯다르타다."
- 헤르만 헤세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의 이름과 같은 주인공 싯다르타는 브라만(승려) 집안에서 태어나 브라만이 되기 위해 수행하는 젊은이다. 

그런데 싯다르타는 다른 젊은 수행자와 달랐다. 남들이 말하는 진리는 진리가 아닌 것 같다. 
스승들의 가르침에서 배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는 숲으로, 속세로, 쾌락으로, 돈으로, 또 다시 자연으로, 그리고 혈연으로 진리를 찾기 위해 여행한다. 

싯다르타를 통해 헤세가 말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진리는 어떻게 진리가 될 수 있는지, 
존재와 진리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의 여행에 동참해보자. 

(소근)얼마 전, lo가 올해 읽은 책 중 1위에 등극했다. 

🍯JA의 플레이리스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 - Einaudi: Seven Days Walking

Ludovico Einaudi의 Seven Days Walking 중 Low Mist (Day 3)
여행을 할 때 저에게 빠질 수 없는 건 음악입니다! 특히 버스나 기차를 탈 때 풍경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 것을 매우 좋아해요. 여행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 그 음악을 다시 들으면 그날 보았던 풍경과 나의 감정들이 하나하나 다시 그려지더라구요. 음악만큼 우리의 경험과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존재도 없을 것 같아요. 저는 길을 걸을 때 음악을 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바깥 소음을 차단하는 동시에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어서 참 좋아요. 

현대 클래식 음악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곡들은 잔잔하고 평화로우면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장엄한 풍경을 마주하는 것처럼 그의 곡들을 듣고 있으면 거대한 협곡이나 맑은 호수를 바라보는 것처럼 마음이 풍성해져요. 특히 제가 여행길에, 산책하며 듣는 곡 중 "Seven Days Walking" 시리즈를 아주 좋아해요. 실제 에이나우디가 1월 한 달 동안 알프스 산을 걸으며 느꼈던 영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앨범입니다. 1일차부터 7일차까지 반복과 변주를 오고가는 하루하루를 감상하며 구독자님도 오늘 하루를 차분히 마주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사실 여행이란 게 별 거 없잖아요. 막다른 골목길을 산책하는 것도 충분히 여행이니까요. 

p.s. 이 앨범 시리즈의 곡들 중 'Low Mist (Day 3)''Golden Butterfly(Day 1)'는 영화 "노마드랜드(Nomadland)"의 주제곡이랍니다. 이 음악이 수많은 여행자들, 특히 노마드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 참고로 제 최애곡은 'Golden Butterfly(Day 5)'입니다!

Seven Days Walking 6시간짜리 전곡 들으러가기! 👉 🚶💚
여행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도전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게도 여행이라는 비일상은 
단조로운 일상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됩니다.

여행은 우리의 시야를 넓게 터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얼마나 작고 좁은 세계만을 맛보고 살았는지
스스로를 겸손하게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공간에서 더 넓어지는 경험을 하고 계신가요?

구독자님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 경험을 나눠주세요!
요즘엔 다른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만 들어도 설레지 않나요?

또, 이 사태가 누그러진다면 어느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지도 궁금해요!


여러분의 열렬한 피드백 부탁드려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셔도 되고, 주성분 추천, 아쉬웠던 점과 개선책 제안 등
어떤 종류의 피드백도 환영합니다!
일상성분표 13호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지인들에게 일상성분표를 소개해주세요!😍

맛보기로 아카이빙 담벼락에 데려가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