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2022년 7월, 나란히 섬 49
<이주민 이야기, 수수헌>

지난 주, 26일과 27, 수수헌에서 이웃들과 이주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센터로서는 위의 질문을 하기위해 자리를 가졌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첫 날인 금요일엔 이주 역사를 소개했습니다. 이주의 시작이라 여겨질 80년대 흔적을 찾아보고, 이후 산업연수제와 이를 이은 고용허가제를 설명했습니다. 그 가운데, 센터가 위치한 종로구 창신동을 찾은 네팔인들의 이주를 다음 날까지 다뤘습니다. 어떻게 첫 이주가 이어져, 오늘 이곳을 네팔 타운이라 불리게 되었을까요?


1990년, 후반 창신동 지역 봉제공장에 중국, 베트남, 몽골, 그리고 네팔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이 취업하기 시작합니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 불리던 80년대 말, 국내 3D 업종은 노동력 부족으로 몸살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와달리, 아시아 저개발 국가에선 저임금 노동자들의 산업화된 국가로 노동이주가 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입국하기 쉬었던 한국을 찾아, 손길이 모자르던 봉제 공장을 찾습니다.

1997년, 한 네팔 커뮤니티 회장과 그 친구들이 창신동으로 첫 이사를 하였고,

2000년, 초반 동대문역 주변 및 창신동에 네팔 식당과 상점이 등장하게 됩니다.

2007년 이후, 동대문 3번 출구는 네팔 사람뿐 아니라 한국에도 네팔 타운이라 불리게 됩니다.


<주간경향, 2008>

2017년, 서울특별시 도시재생센터에 따르면,
종로구 창신, 숭인동 전체 인구의 약 11%에 이르는 이주민 3,400명이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그 중 1,300명이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이는 미등록 이주민을 제외한 숫자로 대다수가 네팔 국적 이주민이었습니다.


   오늘도 주말과 휴일이면 동대문 3번 출구와 주변 골목 곳곳에서 네팔 이주노동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여기저기 네팔 국기가 달린 식당과 송금 업체 등을 찾습니다. 그곳에서 친구나 친척을 만나 음식을 먹습니다. 네팔 가족에게 물건을 보내거나 송금을 하기도 하지요. 여럿이 모여 공동체 회의를 열어 문화 행사나 스포츠 경기를 조직하기도 합니다. 네팔 민족 축제일을 기념하고, 네팔에서 유명인, 정치인, 연예인들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열기도 합니다. 언론에서는 동대문역 3번 출구에서 네팔 식당과 상점들이 모여있는 주변 골목 지역을 네팔 타운이라 일컫습니다. 그러나, 네팔리들은 3번 출구에서부터 낙산공원 꼭대기까지 자신들이 머무는 마을과 가내수공업 형태의 봉제 공장 밀집 지역까지 포함한 창신동과 충신동, 그리고 숭인동을 네팔 타운이라 여깁니다.

<동대문역 3번출구, 2017년 추석>

수수헌에 모인 이웃 가운데,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분들이 대다수 였습니다. 그러한대는, 요즘 우리가 옆집사는 이들에 관심없는 사정에 둘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네팔인들이 30년 동안 우리 곁에 머물렀는데 이 이를 우리가 몰랐다하면, 이들의 지역사회 참여가 없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우리 동네와 지역구, 그리고 서울시가 "모든 사람이 재산, 성별, 연령, 인종, 종교 등에 상관없이 도시 기획에 생산적이고 긍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소"(유엔 헤비타트)인 포용도시가 되려면 위의 말씀처럼 참여 구성원의 자발성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고용허가제가 제약하는 현실때문에 이주민의 자발성이 저하되지 않을까요?  체류의 임시성(410개월)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회, 문화, 정치적 주체가 되는데에 장애가 됩니다. 이들을 노동력으로만 취급하는 정책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족 동반이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현실에서 반증됩니다. 또한, 한국에 오기 전에 고용주와 계약하여 강제되는 숙소 생활은 이들의 사회 고립을 촉진합니다. 대부분 숙소가 도시로부터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이동성이 제약됩니다. 이들이 일을 하게 되면 이들의 일상까지도 노동력을 위해 통제되곤 합니다. 숙소 가까이 컨테이너에 머무는 이주민들의 일과는 끝나질 않습니다.

<공장 옆 컨네이너 숙소, 연합뉴스, 2020년>
<비닐 하우스 숙소 안, 경향주간, 2019 >

오늘을 소위 '관종의 시대'라 합니다. SNS나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유명해지려는 세태에 이주노동자라 그러한 욕구가 없을까요. 그러나, 버스를 타려면 40분을 걸어나가야 하는 외진 농장, 키우는 돼지 옆 컨테이너에 머무는 네팔리의 현실은 당장 유명과는 멀어 보입니다. 생리적 욕구도 위협받는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를 떠나, 어떤 이의 통제도 없이 내 말을 하고, 내 나라 음식을 먹고, 친구와 친척을 만나 관계를 이루는 곳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창신동을 찾습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앞에 떳떳이 드러납니다. 집이라 부르는 이곳이래야 꿈을 꿀 수 있겠지요.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이웃들은 동대문 네팔리들을 지역주민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웃 다음 붙는 사촌과 다름없는 관계가 되려면 이주민의 드러남, 자발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함께 관계를 나누기 위해 전제가 필요하겠지요. 오늘부터 우리는 이주민 이웃을 만날 때, 선주민 이웃이 전해준 질문을 전하려 합니다. 당신들에게 우리 창신동 선주민은 지역주민입니까? 그리고, 이웃입니까?

7월 후원자 명단
단체후원금
공덕교회, 삭개오작은교회, 서울제일교회 루터회, 아산에이전시, 우리정공, 청암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향린교회, 트립티

개인후원금

- 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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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장입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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